한반도 분단에 대한 슬픈 과거 역사얘기를 다시 들고 나온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 주자 이재명과 광복회 회장 김원웅의 맹꽁이같은 역사인식이 여론의 도마 위에서 난도질당하고 있다.
광복회 회장 김원웅은 고등학생들을 위한 화상 강연에서 "(해방공간에서) 남한에 들어 온 미군은 점령군이고, 북한에 주둔한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주장했다. 이재명도 지난 1일 안동 '이육사기념관'에서 이육사 시인의 딸 이옥비 여사를 만나 대화하는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의 정부수립단계와는 좀 달라서 사실은 친일청산을 못하고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하고 합작해 다시 그 지배체제를 그대로 유지했지 않았나"라고 말했다.
이재명의 이같은 발언에 대해 야권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은 "상식을 파괴하는 세력이자 역사단편만 부각해 맥락을 무시하는 세력"이라고 규정했다. 또 "국민성취에 기생해서 대한민국을 잘못된 이념을 추종하는 국가로 탈바꿈시키려 한다. 우리 미래를 갉아먹는 일이며 이념에 취해 국민의식을 갈라치고 고통을 주고 있다"고도 비판했다. 고려대학교 최장집 명예교수도 "현 정부의 조야한 역사인식이 드러난 것이다. 민주화세력이 한국 현대사를 정의롭지 못한 역사라 주장하고 있다"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판했다.
김원웅의 주장대로 "미군은 점령군이요, 소련군은 해방군"이라고 백보 양보해서 그렇다고 치자. 그 결과는 과연 어떻게 되었는가? 미군은 자유민주주의의 대한민국을 건국하는 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일단 철수했다가 김일성의 남침으로 대한민국이 위기에 놓였을 때 UN군의 일원으로 6·25 한국전에 다시 참전하여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한 우방이요, 동맹이 됐다.
그러나 소련군은 해방군이기는커녕 소련의 붉은 군대는 약탈군이 되어 북한주민들의 피를 빨아 먹었지 않았는가? 그리고 김일성 일족들에게 자자손손 권력을 누리며 국민의 피를 빨아 먹는 세습왕조 전제군주국가를 세우도록 협력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오늘날 북한의 2500만주민은 김일성 일족들의 흡혈귀(吸血鬼)들로부터 온갖 고초를 당하고 있지 않는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다 인권이 여지없이 짓밟히고 있는 인간지옥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 아닌가?
소련군이 약탈군이란 사실은 1945년12월29일 소련군 중좌 '페드로프'가 소련군 진주 후 북한의 황해도와 평안남북도 등 3개도를 방문조사한 뒤 만든 13쪽 보고서에 소련군의 약탈상이 소상하게 기록돼 있다. 당시 이 보고서는 연해주 군관구 정치담당부사령관 칼라시니코프 소련 군중장에게 보고됐고 이듬해 1월11일엔 연해주 군관구군사위원인 스티코프 상장에게도 전달됐다. 소련군이 직접 쓴 "조선인 약탈보고서"엔 "우리 소련군의 비도덕적 작태는 실로 끔직한 수준이다. 사병 장교할 것 없이 매일 곳곳에서 약탈과 폭력을 일삼고 비행(非行)을 자행하는데도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페드로프 중좌는 당시 붉은 군대의 만행을 이같이 기술했다. "우리 부대가 배치된 시나 군 어디서나 밤에 총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고 부녀자를 겁탈하는 범죄도 만연해 있다. 대낮에도 거리에서 술에 취한 소련군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고 신의주 시내 70곳 이상의 여관과 공공건물에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다." "북한에서 소련군이 한 약탈과 관련해 조선인들의 봉기가 일어난다면 조선사람 절반을 교수형에 처하겠다"고 치스코프 사령관이 공언하기도 했다. 258소총사단장 드미트리예프 대좌는 "조선사람은 35년간 노예로 있었다. 좀더 노예로 있게하자"는 말도 남겼다.
약탈과 배고픈 정복자의 악랄함을 덮어두고 "해방군"으로 미화시킨 김원웅의 시각과 정신세계는 정상인가? 이 보고서에 대해 북한대학원대학교 신종대 교수는 소련군의 북한진주 초기 소련군의 비행과 풍기문란이 심각했음을 잘 보여주는 문건 이라고 말했다(동아닷컴 자료인용).
자기 편리한 자료만을 일방적으로 부각시키는 맹꽁이같은 역사인식은 공동체 사회를 오염시키고 국가의 미래를 암담하게 할 것이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맹꽁이는 낮에는 땅속에 있고 밤에만 나와 거미 ,지렁이, 모기 등을 잡아먹는 양서류 동물"이다. "맹꽁이 결박한 것 같다" "맹꽁이 통에 돌 들이친다"는 속담도 있다. "말이나 하는 짓거리가 답답하고 융통성이 부족한 사람"을 "맹꽁이"라고도 부른다. 고지식하고 일방적이고 완고한 사람을 "맹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련군 중좌의 말은 내 경험을 확실하게 입증해 준다.원인은 모르겠다만 웬일인지
당시 개성은 38선 이남인데도 소련군이 약 힌달동안 진주 했다. 당시 14살인 내 기억
개성시내에선 로스케가 총을 들고 사람들에게서 시계를 삐앗았다. 그것도 하나뿐이
아닌 두개 세개 양쪽 팔에 차고 다니다가 움직이지 않으면 내던지고 다른 사람들의
시계를 빼앗았다. 글구 얼마후 개성시내엔 목욕탕 문이 잠겼다. 총을 갖고들어와
여자들을 강간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다른 코큰 군인들이 들어왔다. 트럭에서 내리더니
어린 우리들을 부르더라. 겁먹은체로 "따라가니 옷 소매안으로 하얀 가루를 뿌리더라,
글구 집 안으로 들어오더니 역시 흰 가루를 뿌린다. 글구 그날 이후 벼룩이 빈대 이가
살아졌다. 다음날 또 트럭에서 내리더니 우리들에게 무슨 자루 하나씩 주더라 집에
가서 펴 보니 황설탕이더라. 쏘련군이 점령군인가? 미군이 점령군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