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고 처먹으면서 남의 피나 빠는 기생충이 더럽지 내가 벌어서 먹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이언주 씨의 “대통령 부인의 자격이 되는 직업이 따로 있었나?”란 글이 조갑제닷컴 대문에 있다. 이언주가 옳은 말을 했다. 山도 앞서 말했거니와 결혼 전의 직업이 왜 문제가 되며, 결혼 후의 직업이라할진대 하나도 문제될 것이 없다. 놀고 처먹으면서 남의 피나 빠는 기생충이 더럽지 내가 벌어서 먹는 게 왜 문제가 되나? 설사 돈을 위해 그런 것이 아니라 도락을 위해 그렇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물론 김건희가 쥴리라는 말은 아니다. 쥴리니 뭐니 하는 것들이 천하 없는 저질이기에 하는 말이다. 김대중은 일평생 제 손으로 돈 벌어 보지 않았다.
사람은 왜 사는가? 철학적으로 말하면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이를 철학은 증명하고 있다. 예를 들어보자.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잘하기를 원한다. 공부를 잘하면 뭐하는가? 일류 대학에 갈 수 있다. 일류 대학에 가면 뭐하는가? 좋은 직장과 좋은 아내를 얻을 수 있다. 좋은 직장과 좋은 아내를 왜 얻으려는가? 행복 말고 달리 뭐라고 대답하겠는가. 그래서 사람이 사는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이다. 부처도 공자도 하다 못해 얼마 전에 작고한 정진석 추기경도 “여러분 행복하십시오”란 말을 남기고 떠났다.
이 ‘행복’을 장기표는 ‘자기실현’으로 표현했다. ‘자기 실현’과 ‘행복 추구’는 표현만 다를 뿐 같은 내용이므로 더 말 안 하겠다. 백보 양보해서 김건희 씨가 설사 쥴리였다 하더라도 그건 자기 실현을 위한 것이요. 자기 도락을 위한 것이요. 자기 삶을 보람되게 살고자 한 것이다. 거기에 자기 행복이 있었기에 그 일을 했을 것이다. 여기에 왜 잡것들이 시비짓이냐? 그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해서 거품 무는 것인가.
山이 어려서 이웃집에서 “월간중앙”을 빌려 읽은 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라 읽기가 어려웠다. 그때 읽은 한 구절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미국에서는 장관의 딸이 길거리에서 찌짐을 구워 팔아도 누가 쳐다 보지도 않는다”였다. 근 반 백년 전에 읽은 교훈이다. 우리는 아직도 ‘쥴리’에 머물러 있다.
우리는 아직도 쥴리에 머물러 산다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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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7-12, 18:38












이래서 民度가 뒷받침되지 않는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衆愚政治가 될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