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명치산업혁명유산(明治産業革命遺産)을 향한 구질구질한 모습

입장을 바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昌德宮)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강제노역당한 당시 백성들의 피와 땀을 확실히 설명해놓으라!’고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면 기분이 어떨 것인가? 1505년에 연산군(燕山君)은 창덕궁(昌德宮)의 뒷뜰(後苑)에 '서총대(瑞蔥臺)'라는 연회용(宴會用) 건물을 짓도록 명령했다. 경복궁(景福宮) 부속 경회루(慶會樓)와 비슷한 컨셉이었다. 연산군일기(燕山君日記)에는 서총대(瑞蔥臺)와 관련해 이렇게 나온다.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고, 龍을 아로새긴 돌로 난간(欄干)을 만들었는데, 1천 명은 앉을 만하고, 높이는 10길이나 되었다. 이름을 서총대(瑞蔥臺)라 했다. 감독자가 1백 명이고 勞役者는 수만 명이 되어 호야(呼耶, 여러 사람이 일할 때 합쳐 호흡 맞추는 소리) 하는 소리가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고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연산12년 1월21일)

건물뿐 아니었다. 주변에 거대한 인공 연못까지 조성하게 했다.

‘서총대 앞에 못을 파는데 깊이가 10길이 되게 하여 큰 배(船)라도 다닐 수 있도록 하고, (中略) 심지가 근검하고 제집 일 같이 奉公할 사람을 골라 공사를 감독하게 했다.’(연산12년 2월3일)

노역(勞役)에는 일반 백성뿐 아니라 軍人까지 징발(徵發)되었다.

‘서총대(瑞蔥臺)를 쌓을 전라도 지방 軍人 960명 중 780명이 오지 않았으니, 인솔하여 온 장성현감(長城縣監) 이중식(李仲植)을 문초(問招)하게 했다.’(연산12년 8월1일)

혹독한 노역(勞役)이 1년 이상 지속되었으며, 건설 자금 조성을 위한 稅金 징수 또한 가혹했다. 당대 문집인 '소문쇄록(謏聞鎖錄)'에는 이렇게 나온다.

‘臺를 쌓을 때 忠淸·全羅·慶尙道의 軍人과 백성을 강제로 동원하여 고역(苦役)을 하게 했으며, 베(布)를 공출함이 너무 많아서 백성들이 능히 감당하지 못하여 옷 속에 든 솜까지 꺼내어 베(布)를 짰으니, 그 빛깔이 거무죽죽하고 절었으며 자수(尺數)도 짧았다. 이로 인하여 품질 나쁜 무명베(布)를 의미하는 서총대포(瑞蔥臺布)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서총대(瑞蔥臺) 공사는, 중종반정(中宗反正, 1506년)으로 연산군(燕山君)이 폐위됨에 따라 중단되었다. 중종(中宗) 때 연산군(燕山君)의 죄목(罪目)을 기록한 글에는 이렇게 나온다.

‘높이가 1백여 척이나 되는 누대(樓臺)를 쌓고 이름을 서총대(瑞蔥臺)라 하였다. 그 위에는 1천여 명을 앉힐 만하였으며 그 아래에는 못(淵)을 팠다. (中略) 거기에 동원된 역부(役夫)의 수를 헤아려 보니 50만 명이나 되었다. 수리도감(修理都監), 축성도감(築城都監), 도제조(都提調, 자문역), 부제조(副提調), 낭관(郎官), 감역관(監役官) 등이 2백여 명이나 되었는데 이들이 백성들을 몹시 가혹하게 침탈하였다.’

공사가 중단된 서총대(瑞蔥臺) 건물은 1507년에 철거되긴 했지만, 화려하게 조성된 주변 경치와 부지(터)는 이후 왕실(王室)의 연회(宴會)나 무술시험 등의 장소로 쓰였다. 이러한 서총대(瑞蔥臺)를 간직한 창덕궁(昌德宮)은 1404년(太宗4년)에 최초로 공사가 시작되어 1년 만에 궁궐로서의 기본 기능을 갖춘 건물로 완성되었고, 以後로 장기간에 걸쳐 증축이 이루어졌다. 금천교(錦川橋), 진선문(眞善門), 인정문(仁政門), 인정전(仁政殿), 선정전(宣政殿), 희정당(熙政堂), 대조전(大造殿), 낙선재(樂善齋), 부용지(芙蓉池) 등 여러 부속 건물 내지 시설들이 추가되었다. 정문(正門)에 해당하는 돈화문(敦化門)의 경우 1412년에 완성되었다.

1592년에 창덕궁(昌德宮)은 전소(全燒)되었다. 왕실(王室)의 비겁한 모습에 대한 분노한 백성들이 불태웠다는 설(說)과, 日本軍이 불태웠다는 설(說)이 존재한다. 1605년(宣祖38년)부터 재건(再建)을 시작한 창덕궁(昌德宮)은 1610년(光海君2년) 완공되었다. 1623년에는 인조반정(仁祖反正)으로 창덕궁은 또 소실(燒失)되었다가 이후 再建을 시작하여 1647년(仁祖25년)에 완공되었다. 1833년(純祖33년) 대화재(大火災)로 또다시 소실(燒失)된 창덕궁(昌德宮)은 1868년(高宗5년) 再建되었다.

1404년의 최초 공사 시작부터 1868년 再建까지 460여 년에 걸쳐 소실(燒失)과 再建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집중적으로 공사가 진행된 期間만 따져봐도, 전부 합하면 수십 년은 족히 될 것이다. 수백 년에 걸친 창덕궁(昌德宮)의 건설 및 再建으로 인해, 백성들이 겪어야 했을 고역(苦役)과 고통은 충분히 짐작이 간다. 아울러, 공사 기간 中 적지않은 백성이 죽거나 다쳤을 것이다. 이렇게, 창덕궁(昌德宮)은 朝鮮時代 백성들의 고통스러운 노역(勞役) 위에 건설되었다. 만약 백성들의 노역이 아니었다면 창덕궁(昌德宮)은 존재할 수 없었다. 따라서, 오늘날 韓國人들은 창덕궁(昌德宮)을 바라볼 때, 그 웅장함이나 화려함뿐 아니라 당시 동원된 백성들의 피(血)와 땀이 어린 노역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창덕궁(昌德宮)은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홈페이지에는 등재된 역대 세계유산 리스트와 함께 각각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창덕궁은 ‘Changdeokgung Palace Complex’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다. 그런데, 요약(Brief Synthesis), 등재기준(Criterion), 완전성(Integrity), 진정성(Authenticity), 보존 및 관리 체계(Protection and Management Requirements) 등으로 이루어진 해당 세계유산(昌德宮) 설명 내용의 어디를 봐도, 창덕궁 건설에 동원된 당시 朝鮮 백성들의 처지(고통과 어려움)를 언급하는 부분은 안 나온다. 한 줄도 없다.

최근 언론과 많은 韓國人들이, 日本을 향해 명치산업혁명(明治産業革命) 세계유산(軍艦島 등)과 관련해 '朝鮮人들이 강제노역당한 점을 제대로 설명하라'며 비난을 퍼붓는다. 1944년 以前에 軍艦島 등 탄광에서 근무한 朝鮮人은 전부 자발적으로 건너간 케이스에 해당한다. 징용(徵用)의 적용을 받은 경우는 마지막 1년 남짓 기간뿐이다. 징용은 당시 朝鮮人뿐 아니라 日本人에게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동서고금 징용은 합법이다. 마치 당시 朝鮮人만 강제노역 당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또다른 왜곡(歪曲)이자 날조(捏造)다.

日本을 향해 그런 요구를 하려면, 그 以前에 창덕궁(昌德宮)에 대한 설명부터 똑같은 방식으로 해놓아야만 최소한 말이 된다. 자기는 안 하면서 남에게만 강요하면 ‘내로남불’이다. 다 떠나, 명치산업혁명(明治産業革命) 유산은 그 성격이, 과거의 잘못을 교훈 삼자는 취지의 것(例, '아우슈비츠 收容所')이 아니라, 자랑스러운 것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한 취지의 유산이다. 그런데, 거기다 ‘강제노역’ 같은 이야기를 해놓으라고 요구하는 것이 과연 상식적(常識的)인가?

입장을 바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창덕궁(昌德宮)에 대해 다른 나라 사람들이, ‘강제노역 당한 당시 백성들의 피와 땀을 확실히 설명해놓으라!’고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면 기분이 어떨 것인가? 지금 韓國이 보여주는 모습은, 남의 집 잔치에 고춧가루 뿌리려고 덤비는 구질구질한 모습에 더도덜도 아니다.

https://youtu.be/qmUoqW-J4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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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답과오답 2021-07-14 오전 6:59

    맑은 마음씨 우리 민족에게 끼친 해악이 이루 말할수 없이 잔인하고 악랄 하다는대
    뭐가 그런건지 하나라도 구체적 예를 제시할수 있으십니까 ?
    거짓의 무고 사기 위증 고발이 우리는 일본에 비해
    사건화 된것만 이백수십배라는거 아십니까 ?
    우리 민족은 거짓말이 일상인 민족이란거 혹 아신다면
    귀하가 아는 일본의 잔인하고 악랄하다는게
    몽땅 거짓일수 있다는거 어찌 생각 하시는지..

  • 맑은마음1 2021-07-13 오후 10:51

    좁은 소견이지만ᆢ
    왜놈들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해악은
    이루 말할수없이 잔인하고 악랄하다.
    임진왜란 7년 침략과 약탈 어찌 작은 일인가.
    일제식민지 36년 착취와 강압, 회유와 겁탈이
    어찌 작은 일인가.
    당연히 왜놈의 만행에 분개하고 치를 떠는게 정상이다.

    그렇다고 우리 조상들 특히 양반놈들이
    제 백성을 악랄하게 수탈 착취하며
    호의호식 떵떵거리며 산것도 작은 일이 아니다.

    공의라는 세계 보편적 큰 기준으로,
    밖이던 안이던 냉철하게 비판하고
    불의 불법에는 분개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참고로 우리 조상들이 수백년 신봉했던 유가에선
    남에겐 관대하고 자신에겐 엄격하라고 가르쳤다.

  • 정답과오답 2021-07-13 오후 9:03

    왜 우리는이토록 광적으로 반일을 하는지 이해가 어렵습니다
    나라의 수장 대통령까지 몰상식에 가까운 반일을 자랑하는것은
    누구던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해야 할거 같은대 그런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은 뭔가 정상에서 한참 벗어난거 같이 보입니다
    이글에 욕질 뎃글을 다는 자유님의 행동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뭔가 개인적으로 일본에게 크나큰 손해 본적이 있는거 같지도 않은대..

    더군다나 공공의 게시판에 시궁창 문자를 마구 쓰는것은
    누가 봐도 자신의 인격을 걸래로 만든다는거 조차 모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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