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기적 별일 없는 하루’의 저자가 말하는 '마음 퍼주기'
지리산에서 십일 년째 독특한 수도 생활을 하는 도사와 죽이 맞아 그의 차로 섬진강가를 지나갈 때였다. 저녁 노을이 강물을 물들이고 지리산 뒤로 넘어간 해의 잔광이 봉우리들의 윤곽을 희미하게 비치고 있었다. 강 길에 엷은 어둠이 안개같이 퍼지고 있었다. 턱수염을 기른 도사인 구 선배가 이런 말을 했다.
“한번은 저녁이 어스름한 무렵 이 길을 가다가 깜짝 놀란 적이 있어. 커브를 도는데 강이 내려다보이는 길 옆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는 거야. 귀신이거나 헛것을 봤다고 순간 생각하고 지나쳤지.”
“그래서요?"
내가 되물었다.
“백미러로 보니까 아무도 없는 어두운 차도 옆에 앞에 뭔가 놓고 있는 할머니가 시름없이 앉아 있는 실루엣 같은 게 보이는 거야. 이상해서 차를 돌려서 다시 그곳을 가 봤지. 그랬더니 할머니 한 사람이 앞에 복숭아 서른 개 정도를 놓고 있는 거야. 어두운 그 시간에 그게 팔리겠어? 말도 안되지. 그래서 내가 그 복숭아 전부 얼마냐고 물어보니까 만 원만 달라는 거야. 그래서 내가 만 원짜리 한 장 더 드리고 복숭아를 전부 산 적이 있지.”
도사 선배의 경전이나 참선에 대한 얘기보다 그 잔정이 있는 행동이 더 좋은 설법 같았다. 도사 선배는 하루 전에 처음 본 내게도 과분할 정도로 마음을 퍼주고 있었다. 지리산에 도사가 산다는 말을 듣고 호기심에 만나자고 했었다. 칠십 고개를 맞은 그는 기존의 인연도 정리하는 판인데 굳이 만날 필요가 있느냐고 시큰둥한 반응을 전해왔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거절하면 악착같이 만날 이유는 없었다. 이해관계나 앞날을 계산해서 사귈 그런 나이들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이미 인생의 밤이 다가온 사람이었다.
스쳐 가는 무심한 인연이었는데도 우리는 만났다. 만나자마자 도사 선배는 자신의 마음을 막 퍼 주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묵고 있는 숙소에 아침 일찍부터 자신의 차를 몰고 와서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태우고 지리산과 섬진강 일대의 경관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시간을 그대로 주고 있었다. 그는 관념이나 추상이 아니라 행함으로 도를 닦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수필집 ‘가장 큰 기적 별일 없는 하루’에서 이런 부분을 읽었다.
‘대개의 사람들은 마음을 퍼 주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고 마음을 받는 것에만 정신이 팔려있다. 자기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퍼주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따지고 보면 세상이 이처럼 거칠고 삭막한 이유는 퍼주는 사람보다 받기만 원하는 사람의 수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받는 쪽보다 마음을 퍼줄 줄 아는 쪽의 비중이 더 커질 때 비로소 세상은 더 밝아지고 살 만한 곳이 될 것이다. 더구나 마음이란 신통한 화수분 같아서 아무리 퍼주더라도 닳거나 부족해지지 않는 법이다.’
그는 처음 보는 나에게 넘치도록 마음을 퍼주고 있었다. 입에 발린 말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모든 것을 그냥 주고 있었다. 그가 이런 말을 했다.
“평생 단 한번밖에 주어지지 않는 인생길에서 훗날 자기 자신이 살아온 모습을 되돌아 볼 때 베푼 일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 사람의 마지막은 무척 허탈하고 쓸쓸하지 않을까?”
말을 들으면서 그와 대비되는 냉랭했던 한 기억이 세월 저편에서 떠올랐다. 아이들을 유학시키기 위해 캐나다에 처음 갔을 때였다. 고교 선배라는 인연을 고리로 한 사람을 만났었다. 그는 일방적으로 만날 커피점을 정했다. 내비게이션이 없던 시절 길치인 내가 초행에 렌트카를 가지고 그곳으로 가는 건 정말 힘들었었다. 그는 시간을 내 주는 게 아주 아까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내 자기 자랑만 늘어놓았다. 그 마음의 각박함에 섭섭했었다. 그게 우리들의 사는 모습이기도 했다.
지리산 도사는 강가의 복숭아 파는 할매에게 돌아가서 그걸 다 사주었다. 자비라고 부르는 또 다른 사랑의 표현은 그런 작은 행동이고 선일 것이다. 지리산 도사에게서 풍기는 향기가 옆에 있는 나에게도 은은히 배어든 아름다운 저녁이었다.
저녁 어스름, 강(江)가 커브길에서 만난 할머니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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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01, 08:48












엄변호사남 님의글은 늘상 제호만흝어 보고 읽지는못햇읍니다 늘상 제호를 보면 지금이시대에 꼭 필요없는이야기더이다 좀 피부에 와닿는 글좀 올려주시기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