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가 일본 순사한테 눈 한번 흘긴 뒷집 할매도 독립유공자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펀드빌더 님의 글을 읽고>
펀드빌더 님의 글.《'봉오동 전투'가 勝戰? 日本軍 공식 사망자는 단 1명에 불과》를 읽고 이어서 하고 싶은 말씀입니다. 펀드빌더 님의 저 글 결론 부분에 이런 구절이 있다.
<우리 독립운동사는 신화에 가까울 정도로 과장이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요. 때로는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신화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겠지요. 그러나 과장과 인위적인 조작을 통해 과거사를 미화시키는 작업에서 벗어날 때가 된 것 같아요. (중략) 과장하는 만큼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이잖아요? 이제는 역사와 전설을 구분해도 좋을 만큼 이 사회가 성숙하지 않았습니까?〉대단히 옳은 말씀이다. 이영훈 교수의 저서를 읽는 듯하다.
이영훈 교수의 저서에 의하면 한국의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는 하나같이 신화와 역사를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고 쓰고 있다. 미개하다는 말 말고 여기에 어울리는 단어를 찾기 어렵다. 정말 이젠 신화와 전설을 역사와 구별해야 한다.
불과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는 중국의 황하문명이었다. 그러나 고고학과 고증학 등을 통해 황하문명이 아니라 고조선과 만주를 포함한 요하문명임이 증명되었다. 그래서 중국은 엉뚱하게도 요하문명을 자기네 것인 양 선전하는 것을 넘어 요하문명이 세계 최초의 문명발상지라 자랑하고 있다. 저 허풍쟁이 중국마저 과학과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도리어 점점 더 신화 속으로 빠져드는 미개성을 보이고 있다.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와 우리의 광복군을 비교하면 우리는 차라리 졸렬하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이 졸렬한 것으로 칠 수는 없고 그렇게 치는 나라도 없다. 그렇다면 과장할 것도 없다. 미국이 위대한 문명 발상지라서 일등국가가 아닌 것처럼 말이다.
山이 가까이 지나는 선배가 한 명 있다. 이 이의 아버지가 독립운동 유공자(정확한 명칭은 모름)로 등록되었고 연금도 받고 있다. 그 전에 수 년 동안 신청을 해도 되지 않았는데 그의 아들이 검사가 되고 나서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독립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왜 유공자가 되었나? 설명한다.
우리는 전통적으로 손님이나 누군가가 내 집에 찾아오면 그가 돌아갈 때 차비조로 얼마쯤의 돈을 쥐어준다. 선배의 말에 의하면, 선배의 아버지 친구가 독립군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선배의 아버지 집에 하루 묵고 갔다. 갈 때 여비조로 돈을 조금 주었던 모양이다. 이것을 갖고 독립군에 군자금을 댄 것으로 포장하여 유공자가 된 것이다. 5.18 유공자가 자꾸 불어나듯이 독립운동 한 사람도 자꾸 불어난다. 이러다가 일본 순사한테 눈 한번 흘긴 뒷집 할매도 독립유공자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 더러운 문재인 독재에도 들고일어나는 사람이 없는데 당시에 세계 최강급이었던 일본에 그렇게나 많은 독립운동가가 있었다는 게 신기하다.
손님에게 여비 쥐어준 것을 군자금 댄 것으로 포장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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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13, 22:15












‘사지 않습니다, 가지 않습니다’, ‘신에게는 아직 5000만 국민들의 응원과 지지가 남아있사옵니다’ - 일본 패망 7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온 국민이 항일독립투쟁중인 광복군의 나라이니 전 국민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함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