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작은 일들이 있을 뿐.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월요일에 서초동에 있는 법정에 나갔다. 화요일에도 인천의 문학동에 있는 법원으로 갔었다. 둘 다 아주 작은 사건이었다. 월요일의 사건은 버스 안에서 시비가 붙어 상대방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민 사건이었다. 화요일의 사건은 새로 산 집의 인테리어를 트집 잡아 전에 소유하고 있던 사람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이런 사소한 일 때문에 법원에 가야 하는 회의가 들었다. 삼십 년이 넘는 경력의 변호사 시각에서는 작은 일이었다. 살인사건에 비하면 손가락으로 상대방을 밀었다는 건 코미디였다. 물론 당사자들의 감정은 그게 아닐 것이다. 새로 산 아파트의 인테리어가 마음에 안 든다고 바쁜 판사를 괴롭히는 것도 납득이 되지 않았다. 한 개인의 욕심과 비틀어진 심성이 여러 사람을 괴롭혔다.
손가락으로 남의 이마를 민 청년은 아들의 친구이기 때문에, 다른 사건은 이사한 여동생 때문에 대신 법정에 나가게 된 것이다. 삼십 년이 넘게 작은 분쟁들의 해결을 위해 대신 법정에 나가는 일로 밥을 벌어 먹고 살았다. 변호사를 하던 초기에는 남들의 돈계산을 대신 해 주면서 회의가 들었다. 이런 작은 일들을 평생 하려고 법을 공부했나라는 회의가 들었었다.
법원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어떤 판사는 재판을 하다 보니까 하는 일이 늘 남의 곗돈과 이자만 계산해 주는 것 같다고 했다. 검사들도 불평이 많았다. 허구헌 날 좀도둑, 교통사고, 술집에서 멱살잡이하고 싸우는 폭행만 처리하고 있다고 했다.
한 대법관이 세미나에서 하는 얘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대법관이 몇십만 원짜리 사건에 매달려야 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변호사의 일에 회의를 느꼈던 나는 삼십대 중반 무렵 잠시 대통령 직속 기관에서 공무원으로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위대한 일을 하는 듯한 대통령의 이십사 시간은 어떤가 보았다.
내 눈에 대통령은 연기자였다. 촘촘하게 정해진 스케줄에 따라 움직이는 인기배우같이 화장을 하고 무대의상을 입고 카메라를 앞에 대해야 했다. 의전행사에 참여해서 비서가 써준 연설문을 읽었다. 필요에 따라서는 사석에서도 미리 비서가 적어준 대사를 표정 연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풀어내야 했다. 매스컴은 그런 대통령의 연기를 위대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았다.
대통령이 집무실로 돌아오면 수많은 결제서류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에서 비행기를 사 오는데 비싼 것인지 싼 것인지 성능이 어떤 것인지 상식적인 지식만 가진 대통령으로서는 알 수가 없다. 실무자들은 항상 비슷한 안건 둘을 만들어 대통령에게 최종선택을 요구했다. 대통령은 늘상 오엑스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같은 입장인 것 같았다. 장관임 명도 일번 이번 삼번 대상자를 올려 음식점 메뉴처럼 대통령이 고르게 했다. 그게 큰 일을 하는 대통령의 모습이었다.
공무를 수행한다는 것도 실제는 아주 작은 일이었다. 개개의 공무원은 기계에 쓰이는 작은 톱니바퀴 같았다. 그들은 극도로 세분화된 아주 작은 일을 맡아가지고 서류를 만드는 사람 같았다. 한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물방울 같이 작은 일들이었다. 그런 물방울들이 모여 개울을 이루고 개울과 개울이 만나 여울을 이루고 강이 되는 게 세상인 것 같았다. 학교에서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에 끼어들어 잘 돌아가는 톱니바퀴 역할을 하도록 교육을 받았다. 유통기간 동안 기능을 잘 하다가 사라지는 게 성공한 인생이기도 했다.
그게 다일까. 기능적 측면으로 보자면 망치는 못을 잘 박으면 된다. 그런 면에서는 일개미나 꿀벌이 인간보다 한 수 위다. 삶의 의미가 뭘까? 삶에는 굳이 의미가 있어야 하는 것일까.
솔제니친의 '암병동'이라는 소설에서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환자들에게 묻는다. 어떤 사람은 혁명을 위해서 산다고 했다. 예수는 작은 일에 충성하라고 했다. 목마른 이웃에게 냉수 한 잔을 주라고 했다. 마더 테레사 수녀는 이 세상에 큰 일은 없다고 했다. 위대한 작은 일들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성인들은 표현은 조금씩 다르지만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남에게 잘해주라고 했다. 나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사랑을 담은 작은 일들이 오히려 큰 일인 것 같다. 어쩌면 감추어진 작은 선한 일들이 겉으로 나타난 위대한 업적보다 훨씬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큰 일은 없다'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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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8-25, 19: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