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 담당 공노비(公奴婢)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고급 관료는 귀족이 아니다. 높은 자리에 있으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가을을 알리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젖은 도로 위에 물이 괴고 있었다. 법무차관이 비 속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었다. 차관의 어깨 뒤로 우산을 받치고 있는 팔이 보였다. 하급자인 듯한 공무원이 빗물이 괴인 도로에 무릎을 꿇고 차관에게 우산을 받쳐주고 있었다. 그건 공무원이 아니라 공노비의 비굴한 모습이었다. 법무차관은 인간을 존중해야 하는 직업인 판사 출신이라고 했다. 그런 대접에 익숙한 듯 개념도 없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이었다. 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오는데 낯익은 얼굴이 다른 통로를 통해 입구로 나오는 게 보였다. 군에서 같이 법무장교 훈련을 받던 동기였다. 땅바닥에서 같이 기고 진흙탕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검찰의 고위직 간부가 됐다.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의 옆에 있던 남자가 자동기계같이 우산을 펼쳐 들어 그에게 씌워주었다. 자신은 빗방울을 맞으면서 그를 수행해서 관용차까지 갔다. 그 공무원은 관용차의 뒷좌석 문을 열고 나의 군 동기인 검사장이 타는 걸 보고 공손하게 문을 닫았다. 하급자가 왕같이 모시는 태도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는 모습이었다.

내가 아는 다른 부처 차관의 재판을 하고 나란히 법원 문을 나올 때였다. 그때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차관의 보좌관이 번개같이 우산을 펴서 차관의 머리 위에 받쳐주었다. 차관과 나란히 걸어가던 나는 갑자기 머쓱한 기분이 되어 비를 맞았다. 이해가 가지 않았다. 상황이 그러면 차관은 자기도 우산을 쓰지 말아야 예의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역시 현실을 의식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사람이 나쁘거나 인격이 모자라서가 아닌 것 같았다. 고위 관료들의 의식 깊숙이 박힌 원형질 같은 어떤 권위의식이 분명 있었다.

오십년 전 중학교 일학년 때의 일이 떠올랐다. 같은 반 뒤에 앉은 친구는 아버지가 경찰서장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아버지를 표현하던 말이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그 친구는 이렇게 말했었다.

“우리 아버지는 우산을 들어주는 사람이야. 박정희 대통령이 아버지 관내에 왔을 때 보니까 아버지가 우산을 들고 대통령 옆만 졸졸 따라 다니더라구.”

열다섯 살 소년의 눈에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렇게 비쳤던 것 같다. 권력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한 법정에 출석했던 재벌 회장은 자신의 회사 직원들을 머슴이라고 표현했다. 십 여년 전 한 일간 신문사 사주 가족의 장례식을 담당하던 언론사 간부로부터 이런 얘기를 들었었다.

“장례절차의 진행을 맡아 식장에 문상 온 분들의 구두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비서가 무릎을 꿇고 신발을 신겨주는 사람들이 보이더라구요. 전직 대통령과 재벌 회장이었죠.”

그들의 머리 속은 이미 왕(王)이었다.

오래 전 대통령이 골프를 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어느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땅에 있는 공을 청와대 직원이 주워서 대통령에게 공손하게 주는 모습이었다. 운동을 나와서도 굳이 그렇게 해야 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경호원들의 불평을 들었다. 영하 십도를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도 자기들은 대통령의 눈길이 갈 수 있는 곳마다 장승같이 서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대통령이 기분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경호가 아니라 그건 의전이라고 자조하면서 말하기도 했다.

고전인 삼국지를 보면 사마의라는 신하가 조조가 걸어가는 앞길의 흙먼지를 옷소매로 쓰는 장면이 나온다. 조조가 말을 탈 때 그 앞에 엎드려 등을 밟고 올라가게 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추운 겨울에 상전의 신발을 가슴에 품고 따뜻하게 했다. 봉건주의는 그런 굴종과 인내를 요구했다. 왕과 측근의 귀족계급만이 사람이었다. 그들은 신분과 힘을 배경으로 백성들의 영혼과 몸을 마음대로 지배했다. 그런 나쁜 유전자가 유독 대한민국에 유전되어 오는 것 같기도 하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은 걸어가다가 비가 오자 우산을 펴들고 비서들과 어깨동무를 한 채 가는 사진을 봤다. 당연하다는 듯 온화한 표정이었다. 바이든 대통령이나 보리스 영국 총리 찰스 영국 왕세자가 비가 떨어지는 식장에서 직접 우산을 든 모습이 찍힌 사진을 봤다. 트럼프나 러시아의 푸틴은 장대비가 쏟아지는 날 비를 직접 맞으며 연설을 하는 연기력을 과시했다. 북한의 김정은도 직접 우산을 들었다. 과도한 껍데기 대접으로 높은 의자를 확인하려는 허위의식이 사라져야 할 것 같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고 고급 관료는 귀족이 아니다. 예수가 말한대로 높은 자리에 있으려면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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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白丁 2021-09-06 오전 1:17

    참, 사는 게 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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