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매를 벌까

벌을 받아보면 막상 힘들지 않았다. 비난과 비웃음을 받고 고소를 당해도 마음속에는 평화와 기쁨이 있을 때가 많았다. 살인범이 있었다. 변호사로서 그의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가 범한 또 다른 잔인한 살인을 알게 됐다. 아는 체 해야 할까 침묵하고 넘어갈까 혼란이 오고 의무의 충돌이 생겼다. 변호사는 업무상 알게 된 비밀을 유지할 법적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양심이 아팠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여인의 영혼이 내게 절규하고 있었다.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폭로했다. 나는 업무상 기밀누설죄로 고소를 당했다. 죄를 인정하고 처벌하라고 했었다. 그 쪽이 마음이 편했다. 살면서 그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교도관 몇 명이 한 밤중에 한 사람을 때려죽이고 야산에 암매장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적이 있었다. 권력은 그 사실을 철저히 은폐했다. 나는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렸다. 서민인 가족은 힘 앞에서 두려워했다. 나는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그러나 어떤 언론도 보도하지 않았다. 진정성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권력에 협조한 것이다. 나는 계속 떠들었다. 권력으로부터 협박이 왔다. 한 검사는 당신 변호사 계속 할 거냐고 겁을 주었다. 정의와 인권을 위해야 할 검사가 그 반대의 일을 하고 있었다. 장관은 교도관 전체의 명예를 위해 입을 다물어 달라고 했다. 회유도 있었다. 그걸 거부하니까 역공격이 왔다. 공명심에 들뜬 경박한 변호사라는 비난 기사가 일간지 사회면 박스 기사로 나왔다. 방송뉴스 시간 앵커의 비웃음 섞인 멘트가 비수가 되어 나의 가슴을 찔렀다.

진실을 외쳐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들을 글로 써서 한 시사잡지에 남겼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게 생겼다. 그 위원회에서는 나의 글을 근거로 의문사 일호를 탄생시켰다. 진실을 밝힌다는 게 참 힘이 들었다.

사법고시 면접관을 한 적이 있었다. 당국은 면접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에 대해 비밀을 유지해 줄 것을 요구했다. 면접관이 되어서 보니까 판사나 검사가 되어서는 안 될 설익은 인격의 소유자들이 걸러지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은 공부만 잘하는 악한 품성의 좀비들을 가려내 주기를 바랐다. 그런데 그게 현실에서 어려웠다. 인간의 품성은 만져지지도 보여지지도 않고 수치로 나타낼 수도 없었다. 면접관들은 불공정을 의심받지 않기 위해 또 항의를 받지 않기 위해 그냥 성적순으로 통과시켰다. 나는 불량품 판사나 검사가 탄생하는 과정을 글로 발표했다. 관계자로부터 항의 전화가 왔다.

“그런 행동은 불법 아닙니까? 비밀유지 서약을 하셨잖아요”
“맞습니다. 불법입니다. 긴 말 하지 않겠습니다. 벌 받겠습니다.”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 벌 받겠다는 말에 전화 저쪽에서 그는 어이가 없어 하는 것 같았다.

눈 감으면 모든 게 편안한데 왜 평생 수시로 매를 벌며 사는지 나도 의문이었다. 나는 투사가 아니었다. 속이 좁고 두려움 많은 나약한 존재였다. 그런데도 엉뚱한 일들을 자주 벌였다. 도대체 왜 그럴까.

나는 나를 조용히 관찰해 보았다. 치열하게 싸우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니었다. 내면에 있는 어떤 존재가 나를 도구로 사용해서 그렇게 하는 것 같았다. 세상과 마주치게 하고 그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존재는 나의 속에서 생각과 양심을 지배했다. 어떤 생각이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순간순간 양심을 찜찜하게 만들어 나를 제어하기도 했다. 그 존재한테 붙잡히면 벗어나기는 불가능한 것 같았다.

성경 속 세례요한은 왕비의 잘못을 얘기했다가 목이 잘렸다.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수많은 예언자들이 하기 싫고 피하고 싶은 말을 했다가 고통을 겪었다. 무당이 신들리듯 나도 속에 있는 어떤 존재에게 들씌운 것 같다. 내게 십자가는 ‘벌 받지 뭐’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벌을 받아보면 막상 힘들지 않았다. 비난과 비웃음을 받고 고소를 당해도 마음속에는 평화와 기쁨이 있을 때가 많았다. 그 분의 영(靈)이 마음 안에서 작용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매를 버는 인생이 ‘십자가의 도’를 추구하는 인생일지도 모른다. 그 이면은 세상을 체념하지 않고 한 단계 정신적으로 성장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소망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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