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진한' 몽상가의 변명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다. 현실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어떤 종말이 가까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몽상가의 변명>

결혼을 하고 사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아내로부터 참 여러 가지 별명을 얻었다. 결혼 초 아내와 함께 여행을 하다가 할머니들이 흥얼거리는 노랫말 속에 ‘나무기둥을 부여잡고’라는 부분을 함께 들었다. 아내는 탄복을 하면서 자기가 바로 그런 심정이라고 말했었다. 아내에게 나는 나무기둥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점검해 보았다. 법을 공부해 오면서 나의 감성이 죽었거나 잠들어 있는 게 분명했다. 막대기로 잠들어 있는 감성을 쿡쿡 눌러 깨우고 싶었다. 감성이라는 놈이 아주 죽어버렸으면 어떻게 하나 고민을 했었다.

내게 붙여진 두 번째 별명이 ‘지지리 궁상’이었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나는 쩨쩨했다. 남은 물론이고 가족에게도 베풀거나 나눌 줄을 몰랐다. 개천 쪽에서 흙수저로 자라난 사람은 궁상 속에서 살면서 궁상을 느끼지 못한다.

아내와 결혼하고 쪽방에 살았다. 그 방이 아내에게는 지옥이었고 내게는 천국이었다. 어느 순간 아내의 욕하는 범위가 넓어졌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 출신들을 싸잡아 비난했다. 이기주의자고 좁쌀 같은 놈들이라고 했다. 기분은 좋지 않지만 그 말도 일리가 있었다. 경상도의 ‘우리가 남이가’와는 달리 이기주의적 성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좁쌀이라고 불리는 것은 다른 면이 있다는 생각이다.

명문이라고 불리던 고교의 선배나 동기들을 보면 디테일에 강했다. 명품이 별 게 아니었다. 디테일한 마무리를 잘하는 것이다. 공정을 위한 거절을 이기주의로 오해할 수도 있었다. 개인을 욕하는 건 감수하지만 출신학교를 욕하는 아내는 이해할 수 없었다. 고칠 수 있으면 고치려고 했다. 그러나 타고난 천성이 고쳐지는 건 아니었다.

나는 몽상가였다. 남들은 철저히 계산을 하고 현실적인 성취를 거머쥐는 데 데 비해 나는 불가능한 걸 추구해 왔다. 매일 성경을 읽고 여러 경전과 정신세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면서 세상 저쪽의 완전함을 추구했다. 그런 길은 끝이 없고 구름을 잡고 바람을 동이려는 것이었다. 이재에 둔하고 무관심해서 내 손으로 주식을 사 본 적도 없다. 집을 산 것도 모두 아내였다.

관심이 있는 분야가 있긴 있었다. 문학이었다. 사무실에 틀어박혀 고전을 읽다보니 동키호테 같은 인물이 되는 것 같았다. 아내는 수백 년 전에 있지 말고 현실로 돌아오라고 했다. 그리고 사회통념을 따르라고 했다. 미련하게 살다가 보니 사회의 채찍을 맞고 멍이 든 적도 많았다.

한 신흥 재벌 회장에 대해 시사잡지에 글을 썼다가 고소를 당하고 법정에 섰었다.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고 분노하면서 글을 썼었다. 잡지사 편집장이 증인으로 불려 나왔다. 치열한 법정신문이 끝날 무렵 재판장이 증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피고를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어떤 인간인지 공식적으로 질문이 던져진 자리였다.

편집장은 과묵한 성격의 원로 언론인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다가 그가 이렇게 말했다.
“순진한 사람이죠.”
그건 칭찬이 아니었다. 어리석은 나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 같았다. 매를 자청해서 얻어맞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고소인은 어떤 사람으로 보십니까?”
재판장이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가 잠시 방청석 앞에 부하들과 앉아있는 신흥 재벌회장을 보면서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아주 약아빠진 나쁜 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신흥 재벌 회장은 대단히 영리한 사람이었다. 시행사를 하면서 그리고 주식가격을 조작하면서 천문학적인 돈을 거머쥔 사람이었다. 그의 뇌물에 정치인 검찰총장이 놀아나기도 했다. 대통령도 그의 돈을 썼다. 그는 세상의 현실적 성취를 이룬 사람이었다. 그는 나를 비웃었다. 나는 그에게 패배하고 온 몸에 멍이 들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현실에서 세상이 말하는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칸막이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를 하고 같은 해 고시에 붙은 사람이 대통령 후보가 되어 언론 보도의 주인공이 되고 있다. 사법연수원 시절 옆줄에 앉았던 얌전한 소년 같았던 친구는 민정수석이 되고 스타 국회의원이 되어 뛰었다. 아쉬운 건 요즈음 그가 시행사로부터 아들을 통해 오십억원을 뇌물로 받았다는 보도였다. 법무장교 시절 보던 동료는 특별검사로 대통령을 수사해서 구속하면서 이름을 날렸다. 안타까운 건 그도 시행사로부터 백억을 받았다는 신문기사가 나는 점이다.

같이 사법연수원에서 공부하던 사람들이 대법원장을 하고 거물급 정치인으로 국회를 장악하면서 이 나라를 이끌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래도 나는 그들이 부럽지 않다. 현실적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보면 어떤 종말이 가까운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나는 시인처럼 몽상을 하는 사람이다. 불가능한 것들을 소망한다. 그 덕분에 몸은 늙었지만 마음은 청년이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