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트컴 장군의 부산 사랑

'군인은 전쟁에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은 주둔하는 지역의 주민들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한다'
지금의 부산은 위트컴 장군 덕분이다.
물론 위트컴 장군한테 진 빚이야
지금도 대한민국 전체가
갚아야 할 현재진행형이지만,
부산은 지명을 '위트컴시'로
바꾸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우선 부산대학교.
부산대학교는 위트컴 장군이
이승만 대통령을 설득해
지금의 50만 평 땅을 무상으로 받았다.
부산대학교의 건설자금 25만 불은
원조로 해결하면서도
진입도로와 부지조성 공사는
미 공병대가 직접, 무상 시공했다.
부산의 도로도 기본은
미공병부대를 움직인 장군 덕분이다.

1953년 엄동설한의 한겨울,
부산역 근처에 큰 불이 났을 때
위트컴 장군은 군수물자를 풀어
피난민들한테 먹을 것과 덮을 것,
의약품까지 아낌없이 풀었다.
그래서 미 의회로 불려가
청문회를 당하기도 했다.
그때 그가 남긴 유명한 말:
'군인은 전쟁에서 이겨야 하지만,
미군은 주둔하는 지역의
주민들 마음부터 어루만져야 한다'
의원들이 모두 기립박수를 쳤다는
일화는 언론사와 전사에도 나온다.

유명한 메리놀병원과
성분도병원도 직접 건설했다.
병원은 장병들에게 월급의 1%로
한국사랑 기금으로 내놓자고 하면서
직접 두루마기에 갓을 쓰고 다니며
모금운동을 벌이기도 했다.

수많은 전쟁고아들을 돌보고 전국에 고아원을 세우면서 만난 한묘숙 여사와 부부의 연을 맺을 정도로 위트컴 장군의 한국 사랑은 끝이 없었다. 끝없이 깊고 넓었다.

오늘 오후 UN평화기념관에선
위트컴 장군에 관한 세미나가 열렸다.
내가 부산에 내려온 진짜 이유다.
묵념이야 11시에 맞춰서
세계 어디서든 해도 되지만
한묘숙 여사와의 진하고 짙은
인연의 고리가 나를 부산으로 불렀다.

부산에 오면 늘 들르는
위트컴 장군 부부의 묘.
1, 2차 세계대전에 이어
한국전에도 참전하고
그리곤 부인의 조국,
찾지못한 부하들의 유해가 있는
한국 땅에 자진해서 묻힌 장군,
위트컴 Richard S. Whitcomb.
죽어서도 뵙고싶은 분이다.
한묘숙 여사님이랑 같이.
부부의 부하찾기 프로젝트는
다음 기회에 또 말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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