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정보기관 도청 내용도 이학봉씨의 증언 뒷받침.
<두 대통령에게서 직접 들은 말들>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이 한 달 사이를 두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들의 죽음을 보면서 이십육년 전 그들이 나란히 법정에 섰을 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세상의 모든 악과 불행의 원인이 그들 두 사람한테 덮어 씌워져 있었다. 역사가 법정에 올려진 정치재판이라는 생각이었다.
나는 그 재판을 처음부터 끝까지 꼭 지켜보고 싶었다. 재판은 하루에 여덟 시간씩 삼십일 동안 계속됐다. 나는 두 전직대통령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방청석에 앉아 가지고 간 공책에 적었다. 언론은 자기들의 희망대로 사실을 만들어가는 것 같기도 했다. 검찰은 오전에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뿌렸다. 기자들은 그 자료를 보고 기사를 썼다. 살아있는 현 정권의 입김이 미치는 검찰은 그들이 구상하는 사실이 있기 마련이다.
오후 두세 시가 되면 마감시간이 닥쳐왔다면서 기자들이 썰물같이 빠져나갔다. 정작 중요한 대통령의 진술들은 이상하게도 기자들이 없는 오후 늦은 법정에서 쏟아져 나왔다. 길고 긴 재판이 끝난 후 나는 방청기를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내가 쓴 것과 신문이나 방송과는 다른 게 많았다. 아까운 역사자료였다. 어떤 출판사도 책을 만들기를 거부했다. 이미 몇 달 동안 신문지면을 가득 메운 내용이기 때문에 단 한 권도 팔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나는 나의 돈으로 책을 몇 권만이라도 만들어 두기로 결심했다. 이삼십년 후의 역사학자나 정치학자들을 위해 자료로 남기고 싶었다. 만들려는 책은 독자가 없어도 상관없었다. 나중에 내 아들 딸만 봐도 된다는 생각이었다. 우연히 한 출판사 사장을 통해 그 원고에 대한 내용을 전해들은 외국의 시사잡지 편집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나의 원고를 자기네 나라 말로 번역해서 내는데 허락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진실을 발표하는 것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잡지였다.
국내에서 갑자기 나의 원고가 관심 대상이 됐다. 내가 출판사에 보냈던 초고 내용이 퍼졌다. 반응이 예민했다. 전두환의 최측근 참모인 이학봉씨가 내게 “각하가 자기를 나쁘게 쓴 것으로 인식하시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내가 자기를 묘사한 부분도 오해하고 있었다. 사실 나는 그의 모습을 적장에게 잡힌 당당한 장수의 모습으로 그렸었다. 그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노태우 대통령의 아들도 직접 찾아와 항의를 했다. 법정의 진술은 비밀사항이 아니었다. 나는 방청객으로 보고 들었던 사항만 적었다. 따지고 보면 법정에서 두 전직 대통령의 실질적인 변호를 한 셈이기도 했다. 그들이 한 생생한 자기 변호들이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원고를 읽은 재판장도 항의하며 한 줄을 빼달라고 했다. 자기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공책을 다시 찾아보았다. 재판장은 분명 그렇게 말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나는 그 한 줄을 삭제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재판장의 기억이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나는 그들이 오해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들마다 각자 자기의 주관적 해석이 다르기 때문이다. 시각이 다른 사람에게는 변명이 필요없다.
그런데 당시 진실을 알아보려는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전두환 대통령의 측근이던 이학봉씨는 5·18의 시위가 험해지자 전두환 사령관이 겁을 먹고 어쩔 줄 모르더라고 했다. 출근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수염이 거뭇하게 자란 채 모든 걸 포기하고 물러나려고 했다고 했다. 나는 이학봉씨의 말이 진정성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우연히 정보기관에서 오랫동안 도청을 담당했던 중견팀장의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기술국 직원인 그는 5·18 당시 자기 마음대로 전두환 사령관의 전화를 도청했다고 했다. 기술국의 도청담당 직원은 전두환은 드라마에 나오는 것 같이 그렇게 늠름하지 않았다고 했다. 5·18 때 겁먹고 바짝 쫄았던 도청 기록이 발표된다면 코미디일 것이라고 했다.
아쉽게도 관련자들은 세상을 대부분 떠났다. 지금 나의 말도 이 시대가 어느 정도 배경 속으로 후퇴해야 할 때라야 들려질지 모른다. 그냥 들었던 걸 일기같이 적어두는 셈이다. 인물에 대해서 생존 중의 평가가 있고 내세의 평가가 있고 역사의 평가 세 가지가 있는 것 같다. 생존 중에는 악인도 영웅처럼 보일 수 있다. 그 반대도 있다. 생존중의 평가가 가장 판단하기 힘들고 정확하지 않을 것 같다. 지금쯤 저 세상으로 간 두 전직 대통령은 양인지 염소인지 위선자인지 참 애국자였는지는 정확히 판단되었을 것이다. 하늘이 하는 일이니까. 역사의 평가도 미래의 평가이기 때문에 진실에 가까울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전두환, 5·18 시위 험해지자 물러나려 했다"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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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08, 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