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으로 모시던 두 변호사 이야기

"정직하면 다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누가 일을 시키면 꼭 그 댓가를 받아야 해" <나는 뭘 가르쳐야 할까?>

로스쿨을 졸업하고 변호사가 된 사람이 내게 수업료 격인 돈 봉투를 들고 찾아온 적이 있었다. 로스쿨에서 법학이론만 가르쳐 주지 변호사의 정신이나 실무에 대해서는 전혀 가르쳐 주지를 않았다는 것이다. 아예 교수들이 변호사가 뭔지 모르는 것 같더라고 했다. 그는 내게 도제식으로 변호사의 일을 배우고 싶어했다. 변호사 생활이 오래되고 나이를 먹다 보니 이제 나도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아니라 알려주어야 하는 입장이 된 것 같다.

그를 보면서 삼십칠년 전 스승으로 모시던 두 변호사가 떠올랐다. 냉기가 조금씩 녹아내리고 꽃망울이 트던 봄이었다. 나는 정동 이화여고 건너편의 한 빌딩의 변호사 사무실 창가에 붙은 작은 철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옆에는 아버지 나이 또래의 작달막한 김정규 변호사가 자기 책상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스승격인 그의 일상을 보고 얘기를 듣는 게 나의 수업내용이었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판사를 했었는데 시국사건을 맡았어요. 그런데 정권에서 어떤 판결을 하라고 압력을 가하더라구요. 그래서 판사를 그만두고 나왔어요. 처음 사무실을 차렸을 때 동료들은 다 내가 굶어죽을 거라고 했어요. 내가 소심하고 사람들을 사귈 줄 모른다고 말이죠. 그렇지만 세상은 겉으로 보는 예측과 다릅니다. 정직하면 다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옆에서 보면 그는 수도승같이 조용한 분이었다. 나를 제자로 여기지 않고 상전같이 모시는 것 같았다. 그는 내가 찾아보아야 할 판례까지 직접 찾아 견출지를 붙여놓았다가 내가 출근하면 건네 주었다. 점심시간이면 건물 옆의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좋은 음식을 사주었다. 월말이 되면 돈 없는 내 사정을 짐작했는지 봉투에 얼마간의 용돈을 넣어 주었다.

변호사인 그는 판사들에게서도 존경을 받았다. 그가 일을 하는 모습을 보면 뒷짐을 지고 창가를 뚜벅뚜벅 걸으면서 깊은 생각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책상 앞에 앉아 종이 위에 글을 썼다. 한 패러그래프 정도의 짧은 글이 담긴 한 장이 그가 작성하는 법률서류였다. 그런데 판사들은 그의 글을 신뢰하고 좋아했다. 그의 주장과 이론을 그대로 판결문에 삽입한다고 했다. 그는 법률이론에 최고의 대가 수준이었다. 변호사 스승인 그는 내게 몸으로 겪은 역사도 알려 주었다. 어느 날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일제시대 학병으로 끌려가 중국 남쪽에 있는 소주까지 끌려 갔었어요. 그러다 해방을 맞아 거기서 현지 제대를 하고 서울까지 그 먼 길을 걸어왔어요. 도중에 죽어 나간 수많은 시체들을 봤죠. 그 처참한 광경과는 다르게 봄날 소주 항주의 정말 아름다운 광경도 봤어요. 서울에 돌아와서도 옷이 없어 일본 군복을 입고 군화를 그대로 신고 다녔어요. 그때 다시 공부해서 고시를 치고 판사가 됐죠. 학병 때 느낀 건 사람은 약하더라도 자기 나라를 꼭 가져야겠습디다. 나라가 있어야 해요. 정의가 지켜지는 올바른 사람들의 나라 말이죠.”

그 몇 달 후 나는 변호사가 되어 또 다른 스승 변호사를 모시며 일하게 됐다. 그의 생활에서도 잔잔한 감동을 받았다. 그는 아침에 출근하면 암자의 뒷방같이 조용한 사무실에서 책을 읽었다. 법서가 아니라 문학과 철학 역사 같은 인문학에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는 그 책들에 공부하듯이 집중했다. 법률만 공부하면 기형이 된다는 걸 알았다. 점심시간이 되면 가까이 있는 레스토랑에 가서 같이 스테이크를 먹기도 했다. 변호사업을 처음 할 때 그는 내게 이렇게 가르쳤다.

“변호사는 일을 하는데 대한 품삯을 정확하게 제대로 받는 것부터 배워야 해. 누가 일을 시키면 꼭 그 댓가를 받아야 해. 피땀 흘려 힘들게 한 공부야. 그 지식과 시간을 값없이 공짜로 주지 말아. 귀한 거야.”

자기의 이마에서 흘리는 땀으로 자기의 빵을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지식노동자란 관념을 얻은 셈이다. 스승으로 모셨던 변호사 두 분의 죽음도 귀한 가르침이 됐다. 칠십대 중반까지 두 분 다 평생 해오던 자기의 일을 평소같이 하다가 저세상으로 갔다. 두 분 다 감기기운 같이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가서 일주일 정도 입원해 있다가 조용히 저 세상으로 건너갔다. 세월이 흐르고 이제 내가 후배 변호사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됐다. 나는 뭘 가르쳐야 할까? 돈 대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날마다 그분이 맡긴 직업을 성실하게 수행해나가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