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교양영어 (49)
"The statesman who should attempt to direct private people in what manner they ought to employ their capitals, would not only load himself with a most unnecessary attention, but assume an authority which could safely be trusted to no council and senate whatever, and which would nowhere be so dangerous as in the hands of a man who had folly and presumption enough to fancy himself fit to exercise it."―Adam Smith.
The common features of all collectivist systems may be described, in a phrase ever dear to socialists of all schools, as the deliberate organisation of the labours of society for a definite social goal. That our present society lacks such "conscious" direction towards a single aim, that its activities are guided by the whims and fancies of irresponsible individuals, has always been one of the main complaints of its socialist critics.
In many ways this puts the basic issue very clearly. And it directs us at once to the point where the conflict arises between individual freedom and collectivism. The various kinds of collectivism, communism, fascism, etc., differ between themselves in the nature of the goal towards which they want to direct the efforts of society. But they all differ from liberalism and individualism in wanting to organise the whole of society and all its resources for this unitary end, and in refusing to recognise autonomous spheres in which the ends of the individuals are supreme. In short, they are totalitarian in the true sense of this new word which we have adopted to describe the unexpected but nevertheless inseparable manifestations of what in theory we call collectivism.
〈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민간인들이 자본을 사용함에 있어서 민간인들을 지도하려고 시도하는 정치인은 가장 불필요한 일을 떠맡을 뿐 아니라 어떤 지방의회나 국회에게도 안전하게 위임할 수 없는 권위를 취하려고 하며 그리고 그 권위가 자신이 그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환상할 만큼 충분한 어리석음과 뻔뻔스러움을 가진 사람의 손에 있는 것 보다 더 위험한 것은 없다.”
―Adam Smith.
모든 집단주의 제도의 공통된 특성은 모든 학파의 사회주의자들이 애호하는 어구인, 명확한 사회적 목표를 위해서 사회가 가진 노동력의 의도적인 조직화, 라고 기술할 수 있겠다. 현재의 우리 사회는 단일 목표를 향한 그런 "의식적인" 지도가 결핍되어 있다는 것과, 사회의 활동이 개인들의 무책임한 변덕과 생각에 의해 이끌어 지고 있다는 것이 항상 사회주의 비평가들의 주된 불만 중의 하나였다.
많은 면에서 이것은 기본적인 이슈를 선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자유와 집단주의 사이에 갈등이 일어나는 곳으로 우리를 즉각 안내해 준다. 공산주의와 파시즘 등의 다양한 집단주의는 그들이 사회운동을 이끌어 가려는 목표의 성향에 있어서 다양하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 단일 목표를 위해서 사회전체와 사회의 모든 자원을 조직화하기를 원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개인의 목적이 최고가 되는 자치적인 영역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하고는 다르다. 간단히 말해서 그들은 이론상으로 우리가 집단주의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한 예상하지 못하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분의 징후를 묘사하기 위해 우리가 채택한 새로운 단어의 진정한 의미에서 보면 전체주의적이다.
* 해설
이중사고(doublethink)
Oceania 사회는 궁극적으로 Big Brother는 전지전능하고 당은 無謬(무류)라는 신앙에 의존한다. 그러나 실제로 Big Brother는 전능하지도 않고 당이 무류일 수도 없기 때문에 사실의 취급에 있어서 수시로 융통성을 발휘해야 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 二重思考(이중사고)라는 사고체계가 도입된다. 이중사고는 속임수의 광대한 체계이다. 이중사고는 상호모순적인 신념을 동시에 믿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다. 논리적인 것과 비논리적인 것을 동시에 의식하고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서 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믿으면서 동시에 당이 민주주의의 수호자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이다. 당이 요구하면 흑이 백이라고 충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상황에 따라 흑을 백이라고, 또 백이 흑이라고 동시에 확신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리고 상호 모순적인 것을 믿었었다는 것을 망각할 수 있는 능력도 의미한다. 이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실을 지속적으로 조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중사고 능력은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서 體得(체득)하게 된다. 훈련을 통해서 모순이 자연스럽게 상호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훈련과정은 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훈련과정이 정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無의식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져오게 되고 그러면 罪의식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중사고는 오세아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의 바로 심장부에 놓여 있다.(계속)
노예에의 길―Ⅴ, 오웰(George Orwell)의 ‘1984’-2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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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2-28, 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