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교양영어(55)
It is the price of democracy that the possibilities of conscious control are restricted to the fields where true agreement exists, and that in some fields things must be left to chance. But in a society which for its functioning depends on central planning, this control cannot be made dependent on a majority being able to agree; it will often be necessary that the will of a small minority be imposed upon the people, because this minority will be the largest group able to agree among themselves on the question at issue. Democratic government has worked successfully where, and so long as, the functions of government were, by a widely accepted creed, restricted to fields where agreement among a majority could be achieved by free discussion; and it is the great merit of the liberal creed that it reduced the range of subjects on which agreement was necessary to one on which it was likely to exist ina society of free men. It is now often said that democracy will not tolerate "capitalism". If "capitalism" means here a competitive system based on free disposal over private property, it is far more important to realise that only within this system is democracy possible. When it becomes dominated by a collectivist creed, democracy will inevitably destroy itself.〈Friedrich Hayek, The Road to Serfdom〉
의도적 통제의 가능성이 진정한 합의가 존재하는 분야에 한정되고, 어떤 분야는 일을 우연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가 치르는 대가이다. 그러나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 중앙계획(통제)에 의존하는 사회에서는 이런 통제는 다수의 동의에 의존할 수가 없다; 소수의 의지가 다수에게 부과되는 것이 종종 필요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소수가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에 합의할 수 있는 최대의 집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광범위하게 용인된 신념에 의해서 다수간의 합의가 자유토론에 의해서 성취될 수 있는 분야로 정부의 기능이 한정되는 곳에서 민주적 정부는 성공적으로 작동하였다. 그리고 합의가 필요한 주제의 범위를 자유인들의 사회에 존재하는 범위까지 축소하였다는 것이 자유 신념의 큰 장점이다. 지금 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자주 언급된다. 여기에서 자본주의가 사유재산에 대한 자유로운 처분에 바탕을 둔 경쟁적 제도를 의미한다면 이런 제도 안에서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 집단주의 신념에 의해서 지배당할 때 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파괴하게 된다.
* 해설
수령의 신격화
북한의 독재자 김일성은 神의 자리를 차지하고 인민들 위에 군림하고 있다. 그의 신격화 수단은 기만과 폭압이다. 그는 자애로운 어버이 수령으로 말하고 행동하지만, 그리고 당의 모든 선전매체는 '어버이 수령의 하늘같은 은혜'를 찬양하지만, 〈고발〉의 주인공들은 모두 하나같이 김일성을 '붉은 유령' 또는 '늙은 마귀'라며 노골적인 비판을 하고 있다:
〈한 경희는 가슴에 뜨거운 물김 같은 것이 왈칵 터져 나오려 했다. 허나 이내 그것을 틀어막는 그 무엇이 있었다. 곁에 앉은 보위원의 칼끝 같은 눈초리였던가, 아니면 ‘정신 차렷!’ 하고 외치듯이 번쩍이는 정무원 청사 지붕 위의 저 장식등 불빛이었던가. 무심코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한 경희의 두 눈에 문뜩 환하게 조명을 받은 광장의 두 초상화가 확 들어왔다. 면상이 온통 털 속에 묻힌 마르크스와 매섭게 입을 다문 김일성의 초상화였다. 그 두 붉은 ‘유령’은 지금 한 경희에게 분명 이렇게 호령하고 있었다.
“나가라면 찍소리 말구 나갈 거지 무슨 허튼 생각이야. 이게 내 도시지, 네 도신 줄 아니?”
‘유령’들의 서슬 푸른 그 독설이, 가차 없는 그 주먹이 이 시각 가슴에서 터져 나오려는 한 경희의 설움마저도 여지없이 틀어막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합치면 구천에도 차고 넘칠 그 고통의 아우성은 다 어디로 사라지고 밖(확성기)에선 지금 저처럼 ‘행복의 웃음’ 소리만이 누리를 울려대고 있는 것이냐! 그것도 결국은 양쪽 손톱을 동시에 뽑히는 듯한 고통을 당한 오 씨(중학교 역사교사로 은퇴한 할머니)를 선창자로 하는 ‘행복의 웃음’ 소리가! 세상에 이런 일도 있을 수 있을까? 그 어떤 잔학한 마술의 힘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뭇사람들의 고통의 울부짖음을 ‘행복의 웃음’으로 둔갑시킬 수 있단 말인가.
오 씨는 별안간 몸서리를 쳤다. 불시에 그 잔학한 마술을 부리고 있는 마귀의 영상이 눈앞에 확 떠올라서였다. 유들유들한 살집이 엄청나면서도 그 행동거지가 매우 여유로웠던 눈앞의 늙은 마귀! 그 마귀는 금방 능란한 솜씨로 오 씨를 대상으로 하는 ‘행복의 웃음’이라는 마술을 끝낸 데 이어 이번엔 산원에서 해산한 오 씨의 딸을 대상으로 또 한 차례 같은 내용의 마술을 준비하느라 이리 어기적 저리 어기적하고 있었다. 오 씨는 또 다시 한번 몸서리를 쳤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오늘까지 바로 그 마귀의 마술 속에서 진실과는 판이한, 완전히 전도된 삶을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노예에의 길 ―Ⅻ, 북한작가 반디의 '고발'-2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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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06, 10: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