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먼드 버크(Burke), the supreme conservative-Ⅰ, 영국의 登天(등천)(1)

FREEDOM 교양영어:(62) 〈Because in a developed society tradition embodies the accumulated wisdom and experience of many generations it is likely to be a more reliable guide to action than any one person's opinion.〉

Edmund Burke (1729-97) was born in Ireland, into a family of modest means, and brought up a Protestant. He was educated at Trinity College, Dublin, and then at the lawcourts in London, though he never became a practicing lawyer. Instead he worked as an author and journalist, then entered the House of Commons at the age of 37. A speech he made to his electors in Bristol is the classic statement of the principle that a Member of Parliament is a representative but not a delegate―in other words, an MP's vote cannot be mandated, because his duty is to vote according to his own judgement. His best-known book, “Reflections on the Revolution in France”, was published in 1790, the French Revolution having been broken out the previous year. Although he never held material office, the sheer quality of the content of his public speeches and his journalism made him one of the influential figures of his day. He has been regarded since as the classic expositor of the conservative position in politics.
〈Bryan Magee, The Story of philosophy〉

〈발전된 사회에서는 전통은 많은 세대(긴 세월)의 축적된 지혜와 경험을 구현하기 때문에 그것은 어떠한 한 개인의 의견보다는 더 신뢰할 수 있는 행동지침이 될 수 있다.〉

Edmund Burke는 아일랜드의 중류가정(modest means: 중간 정도의 재산)에 태어나서 신교도로서 양육되었다. 그는 Dublin에 있는 Trinity College에서 교육을 받았고 그 후 왕립재판소에서 교육을 받았지만 개업 변호사는 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작가와 언론인으로 일하였고 그 후 37세 때 하원에 들어갔다. 그가 Bristol에서 그의 선거구민들에게 한 연설은 의회의 의원은 대표자(representative)이지 대리인(delegate)은 아니다―달리 말하면, 의원의 의무는 자기 자신의 판단에 따라 투표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원의 투표는 다른 사람에 의해서 명령받을 수 없다―라는 원칙에 대한 고전적 진술이다. 그의 가장 유명한 책 '프랑스 혁명에 대한 소견'은 프랑스 혁명이 발발한 1년 후인 1790년에 출판되었다. 그는 실질적인 직책을 가진 적은 없었지만 그의 공식 연설과 신문 기고문의 내용만으로도(sheer quality) 그를 당대의 가장 영향력이 많은 인물 중의 하나가 되게 하였다. 그는 이후 정치에서 보수적 입장의 고전적 설명자로서 간주되어 왔다.

* 해설

계몽시대(1500~1700년)에 들어서면서 서부 유럽에서는 특히 영국에서는 상상이나 비현실적인 환상에서 나오는 관념적인 지식이나 사상보다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서 입증 가능한 과학적 지식과 사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학주의적 문화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사물에 대한 진실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지상에서 감각적 경험으로부터 파생되는 것이어야 했다. 모든 진실은 경험에 비추어 검증을 받아야 하였다. 어떤 지식이나 사실도 성역이 될 수 없었다. 그리스-로마의 고전의 지식도 검증을 거쳐야 하였다. 진리나 지식과 사실의 판정은 국가나 神이나 聖人(성인)이 아닌 과학의 영역이었다. 과학적 실험과 관찰로 검증된 지식만이 참이고 사실이 되었다. 관념적 지식보다는 유용한 지식(useful knowledge)이 선호되었다.

그래서 공리공론보다는 물자를 생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실용적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존경받고 권위를 누리는 문화적 전통이 깊게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역사, 철학, 詩, 군사기술뿐 아니라 수학이나 물리, 화학 등 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국민적인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지배층의 귀족가문 출신들이, 과학기술 분야에 투신하는 것이 유행이 되었다. 과학자나 기술자들이 顯職(현직)에 오르기도 하였다. 천재 수학자이며 현대물리학의 아버지인 뉴턴은 생전에는 하원의원과 왕립학회 회장 등을 역임하였고 사후에는 국왕에 버금가는 장례식이 거행되었고 그의 유골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안치되었다.

18세기 인류 역사의 돌연변이라고 할 수 있는 산업혁명이 영국에서 일어나게 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16세기부터 축적되어온 이런 과학정신이 18세기에 와서 물자를 인력이나 畜力(축력)이 아니고 기계로 생산하는, 그래서 물자의 천문학적 대량생산이 가능한 산업혁명의 결과를 빚어낸 것이다. 자연과학이 빚어낸 기계는 인간의 삶에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오는 마법의 물건이 되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의 동력기계의 발명으로 인해서 경제가 폭발적으로 발전하게 되어 영국은 1840년대는 세계의 공장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부유하고 가장 큰 나라를 건설하게 되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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