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교양영어(64)
Governments have to deal with people as they are, extremely unequal in talent and ambition yet each a mixture of good and bad. The public are likely to prosper more under the administration of practical-minded men who are used to carrying responsibility for their others in their day-to-day affairs than they are under theoreticians, even though the theoreticians may be clever as individuals. It is not intellectual brilliance that is called for in government but a sound understanding of people and the ways of the world, steadiness of character, common sense―plus perhaps a dash of flair. This combination is more likely to be found among people born to wealth and responsibility than among clever people who have made their way up from humble backgrounds―though a few of the latter may with advantage be admitted into the governing class of each generation.
The whole attitude is woven from the coming together of particular leading strands: affection and respect for existing social reality, and for the past out of which it has developed; a cautious attitude to change, and a desire to see it take place gradually; acceptance of the mixed character of human beings and their motivations, and a firm disbelief in their perfectibility; rejection of equalitarianism; a dislike of intellectualism in politics, that is to say a scepticism about the applicability of grand ideas, ideologies and "isms," to the lives of flesh-and-blood human beings, and also about the motives of those who advocate them. There are different kinds of conservatism, even within a society so tradition-bound and continuous as that of Britain, but Burkean Toryism is one of the most civilized and most rationally arguable, and perhaps for that reason tends to be respected even by its opponents.〈Bryan Magee, The Story of philosophy〉
정부는 재능이나 야망에서 지극히 불평등하며 그러나 각각은 선한 것과 나쁜 것의 혼합물인 민중을 있는 그대로 다루어야 한다. 대중은 이론가들이 개인으로서 똑똑하더라도 이론가들의 治下(치하)에서보다는 그들의 일상의 일에서 그들의 다른 업무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에 익숙한 실용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의 통치하에서 더 많이 번영할 가능성이 있다. 통치에 요구되는 것은 지적인 뛰어남이 아니고 민중과 세상 물정(ways)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실한 인격과―아마도 소량의 직감을 보태서―상식이다. 이런 합작품은 미천한 가정 배경으로부터 출세한 똑똑한 사람들보다는 재산과 책임이 있는 집에 태어난 사람들에게서 더 많이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비록 후자(가난한 가정 출신) 중의 이점을 가진 소수가 각 세대의 지배계급으로 영입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태도는 개개의(particular) 주도적인 끈을 함께 모아서 짜진다:현재 존재하고 있는 사회적 실재에 대한 애정과 존중, 그 실재를 배출한 과거에 대한 애정과 존중;변화에 대한 조심스런 태도, 그리고 그 변화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기를 보려는 바람;인간과 인간의 동기의 복잡한(mixed) 성격을 수용하는 것, 그리고 그것들의 완벽성에 확고한 불신, 평등주의의 거부, 정치에 있어서 主知主義(주지주의)를 싫어하는 것, 즉(that is to say) 피와 살로 된 인간의 삶(현실적인 삶)을 위해서 원대한 사상과 이념과 '主義(주의)'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서 회의하는 것, 그러한 것들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동기에 대해서 회의하는 것(이다). 다양한 종류의 보수주의가 있으며 영국 사회처럼 전통으로 묶여 있고 영속적인 사회에서도 다양한 보수주의가 존재하지만 Burke의 보수주의는 가장 문명되고 가장 합리적으로 논증할 수 있으며, 그래서 아마도 그 이유 때문에 그것의 반대자에 의해서도 존경받는 경향이 있다.
* 해설
계몽시대 중국의 경제는 서부유럽과 비슷한 수준에 있었다. 중국도 영국 못지않게 자본주의적 시장경제가 발달되어 있었다. 사유재산권도 보장되어 있었다. 관료제도도 발달하여 국가의 통치기능은 영국에 비해 손색이 없었다. 그리고 국민의 문자해득률도 영국과 비슷하였고 서적의 생산도 활발하여 북경의 도서시장은 엄청난 규모였으며 중국은 세계적인 서적 수출 국가였다. 요약하면 중국은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영국에 비해 조금도 뒤지지 않은 전통적 강대국이었다.
그러나 1900년대에 이르면 중국의 국민소득은 1700년대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상태에 있었다. 영국에 비하면 비참할 정도로 낮은 수준에 있었다. 천하의 강대국이 列强(열강)에게 물어뜯기는 수모를 당하고 있었다. 중국에서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다. 중국은 영국이나 서부유럽 국가처럼 기계문명 국가로 도약하지 못하고 여전히 前근대적인 농업국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까지도 대량생산이 특징인 기계문명의 대열에 끼지 못하고 현대문명의 낙오자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르(Joel Mokyr) 교수는 중국에서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못하여서 산업혁명이 일어날 수 없었던 이유를 아래와 같이 들고 있다:
1. 지배계급의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직업은 관직뿐이었다. 귀족들은 과거시험에 합격하여 관료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평생 白面書生(백면서생)으로 지내야 하였다.
2. 교육열은 높았지만 학교에서는 공자와 그 제자들인 맹자 荀子(순자) 등의 유교사상만 가르쳤다. 과거시험 과목은 이들이 남긴 四書五經(사서오경) 같은 고전뿐이었다. 물리, 화학, 생물 등 자연과학 과목을 가르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3. 常民(상민)이나 노예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은 하층계급만이 과학기술에 종사하였기 때문에 생산성 향상이나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인센티브가 없었다.
4. 실험과 관찰 등 과학적으로 검증이 가능한 지식, 물자를 생산하는데 유용한 지식보다는, 주자학 등 유교사상의 관념적 지식, 실현 불가능한 환상적 지식이 주도하는 문화풍토였다. 사실보다는 환상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5. 계몽시대의 서부 유럽과는 달리 창조적 파괴가 불가능하였다. 고전은 신성불가침의 존재였고 난공불락의 대상이었다. 진실에 대한 최종적 準據(준거)는 고전이었다. 고전을 보다 더 잘 인용하고 보다 더 정교하게 해석하는 것이 학문의 궁극적인 목표여서 혁신적인 지식이나 사상이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1500년에서 1700년의 기간에 서구 국가들은 上述(상술)한 바와 관념적 지식보다는 유용한 지식을 추구함으로써, 사실을 神처럼 신성하게 생각함으로써, 합리주의적이고 과학주의적인 문화를 형성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산업혁명의 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인류 역사상 전례가 없는, 수렵시대나 농업시대와는 차원이 전혀 다른, 기계문명 시대를 열어서 경제는 물론 문명의 모든 분야에 있어서도 중국은 물론이고 세계 어떤 나라보다도 월등히 앞서 가게 되었다.
계몽시대를 거치면서 西歐(서구)와 중국이 이렇게 크게 갈라지게 된 현상을 학자들은 大分岐(대분기, Great Divergence)라는 용어로서 定議(정의)한다. 대분기는 앞으로 수백 년간은 그대로 존속될 것 같다. 한 번 형성된 문화의 행로는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 년이 흘러도 문화의 기본적 패턴은 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이 앞으로도 수백 년간 중국의 미래가 밝지만 않는 이유이다. 그리고 서구는 이변이 없는 한 중국보다 월등히 앞서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累代(누대) 부자, 누대 가난은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참고:
Joel Mokyr (2017), 'A Culture of Growth'.
The Economist (2013.2.9.), 'Nomencracy'
최고의 보수주의자 버크(Burke)-Ⅲ, 중국의 운명적 停滯(정체)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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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20, 09: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