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파스텔화처럼 부드러워졌다. 우주는 넓다. 남과 한 가지를 놓고 싸울 필요는 없다.
<경쟁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중학교 이학년이 된 손녀가 경쟁의 태풍 속으로 들어간 것 같다. 목표로 한 고등학교를 가기 위해 쉴새없이 공부한다. 손녀를 보기 위해서는 학원 앞에서 기다리다가 용돈을 주고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주는 게 나의 일이다. 평생 경쟁 속에 살아온 나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손녀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그렇게 말하면 당장 반발이 온다. 할아버지가 손녀의 앞날을 책임지시겠느냐고. 그러면 머쓱해진다.
내가 손녀만한 중학교 이학년 때의 일들이 떠올랐다. 시험만 치면 일등에서 꼴등까지 등수가 적힌 성적표가 교실 벽에 붙었다. 모두에게 일등이 목표였다. 늘 하위권에 머무는 내 능력으로는 노력해도 상위권으로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머리도 나쁘고 공부하기도 싫었다. 나는 방향을 백팔십 도로 틀어버렸다. 한 번 꼴등을 해보자는 각오였다. 꼴등을 한다고 나태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의 에너지를 운동과 음악 그리고 문학에 쏟아보기로 했다.
꼴등을 위한 실천계획을 세웠다. 가방에 교과서를 넣지 않기로 했다. 공책에 필기도 하지 않기로 했다. 수업시간에 소설을 숨겨서 읽고 선생님의 말에는 귀를 닫기로 했다. 시험 시간이 되면 이름만 써놓고 십분 안에 교실을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실천에 들어갔다. 영어시간에 소설책을 읽다가 걸렸다. 화가 난 선생은 들고 있던 출석부로 머리통을 사정없이 두들겼다. 이미 각오한 일이었다.
시험 기간이 다가오면 아이들은 긴장상태에 돌입했다. 꼴등을 하기로 마음 먹으니까 걱정이 없었다. 시험장에서 이름만 써놓고 바로 교실을 나왔다. 모두가 초 긴장상태에서 시험을 치르는 교사를 뒤로 하고 햇빛이 비치는 운동장을 나 혼자 천천히 걸어 교문을 나설 때면 원인 모를 푸근한 평안함이 가슴에 느껴졌다. 나는 꼴찌가 가지는 자유로움을 깨달은 것 같았다. 나는 나태하기는 싫었다. 에너지를 운동과 음악과 독서에 쏟아부었다. 이광수의 소설부터 시작해서 한국문학을 읽었다. 태권도장을 다니면서 유단자가 됐다. 그리고 음악학원을 다녔다. 청계천에 가서 벤처스 악단 비틀즈의 곡들이 실린 해적판 엘피 레코드를 사서 듣고 또 들었다. 삶이 즐거워졌다.
내신 성적으로 대학을 가는 지금 같으면 나는 대학은 꿈도 못 꾸었을 것 같다. 나의 시대는 대학도 고시도 단 한번 치르는 본시험만 통과하면 됐다. 당시 일등들이 목표로 하는 대학을 포기하고 차선책을 택했다. 중학교 시절 일탈의 후유증일지도 몰랐다. 운 좋게 합격했다.
일등을 하고 상위권을 차지하던 동창들중 여러 명이 재수, 삼수에 돌입할 때 나는 미팅을 즐기는 대학생이 됐다. 나름대로 일류를 포기하면 인생이 파스텔화처럼 부드러워지는 면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이 다시 경쟁의 소용돌이에 잠시 빠졌다. 영어에 등한하니까 대기업에 가기가 불가능했다. 변호사 자격증을 따는 고시를 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살벌한 경쟁의 최고의 장면은 사법시험장이었다. 눈에 핏발이 서고 머리에 결사대처럼 띠를 맨 수험생들이 시험장 안에 가득 들어차 있었다. 모두들 쨍하고 깨질 것 같은 얼음장 같은 모습이었다. 모두들 어려서부터 나름대로 공부 선수들이었다.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하고 십년 이십년이 된 고시 낭인들도 있었다. 다른 분야로 갔으면 벌써 성공했을 사람들이다.
그들의 모습을 보고 나는 기가 죽었었다. 도저히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걸 감지했다.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매일같이 나무에 물만 주기로 했다. 때가 되어 열매가 맺히면 다행이고 아니면 그만두기로 했다. 그러다 포기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하늘의 그분에게 간절하게 빌었다. 인생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운이 더 작용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나님인지 행운의 여신인지 눈을 찡긋 해 준 것 같다. 나는 합격했다. 다시는 어떤 경쟁 속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우주는 넓다. 남과 한 가지를 놓고 싸울 필요는 없다. 세상은 치열한 경쟁이었다. 회사원끼리 공무원끼리 군인끼리 진급 경쟁이었다. 상인들은 돈벌이 경쟁이었다. 권력을 놓고 대통령 후보들이 죽기살기로 경쟁했다. 싸우는 걸 보면 인간은 동물로 퇴화하는 것 같았다. 세상에 어리석은 것 치고 경쟁 같은 것은 없다. 스스로 경쟁하지 말고 남이 경쟁을 걸어오면 피해야 하지 않을까. 경쟁은 남을 넘어뜨리고 자기도 넘어지는 것이다. 백 사람이 한 가지 목표를 가지지 말고 백 가지 목표를 가진다면 남을 돕고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봤다.
꼴등을 목표로 삼자 일어난 일들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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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1-30, 16:08












이런 경우도 있었군요 ㅋ 그래도 머리 나쁜 사람은 이런 경우는 꿈도 못
꾸지요...ㅋ .... 본인도 수업 시간에 시집을 꽤 많이 본 경험이 있답니다...
그래서 그런가 나름 시를 곧잘 쓰기도 해요....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