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능한 아버지가 싫었다

어느 순간 나는 아들에게서 반항을 느꼈다. <“네, 아버지”>

돌이켜 보면 아버지에게 나는 나쁜 아들이었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항했다. 그리고 무시했다. 아버지의 사는 모습이 싫었다. 다른 아이들의 아버지가 번쩍거리는 자가용을 탈 때 아버지는 양철 도시락이 든 서류봉투를 들고 초조하게 만원버스를 기다렸다. 친구의 아버지가 임원인 회사에서 아버지는 주눅이 든 말단사원이었다. 아버지는 저녁이면 퇴근길에 소주에 순대국 한 그릇도 마음 놓고 먹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나는 그런 무능한 아버지가 싫었다. 그런 아버지가 정년퇴직을 하고 절대고독 속에 있는 걸 보고는 가슴이 아렸다. 중풍에 걸려 몸까지 움직이지 못할 때 면도칼로 긋는 것처럼 가슴이 쓰렸다. 중환자실에서 아버지의 임종을 보고 아버지의 시신을 이동침대로 들어 옮길 때였다. 살이 빠져 뼈만 남은 앙상한 몸을 보고 나는 죄를 진 것 같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다. 이제 나는 영정사진 속의 아버지보다 일곱 살이나 더 먹은 형뻘이 되어 있다.

요즈음은 이상하게 어린시절 아버지의 추억이 새록새록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내가 서너 살 때였을 것 같다. 한밤중에 아버지가 세발자전거를 사가지고 왔다. 나는 잠에 취해 눈도 뜨지 못한 채 자전거에 올랐었다. 아버지가 활짝 웃는 모습이 기억의 사진첩에 남아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고 어린이 놀이터의 유리집에도 갔고 창경원의 비행기도 태워줬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내가 받은 교과서들을 표지가 찢어지지 않도록 은박지로 싸주었다.

아버지는 휴일이면 나를 데리고 야구장에도 가고 스케이트장에도 갔다. 중학교 일학년때 더러 아버지의 회사로 찾아갔다. 아버지는 지하의 레스토랑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카레라이스를 사 주었다. 반짝거리는 은도금한 그릇에 담긴 노란 카레를 보고 나는 황홀했었다.

아버지는 법대를 가려는 나를 말렸다. 작은 마당에 심은 보라색 나팔꽃이 아침이슬을 머금은 걸 보고 즐길 수 있는 소시민이 되라고 했다. 나는 반항했다. 무능을 대물림하려고 하느냐고 속으로 화를 냈다. 아버지의 말에 복종하지 않았다.

내가 장교훈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아버지는 내 머리맡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군복에 새로 받은 중위 계급장을 달아주고 있었다. 노인이 된 아버지는 담배 가게를 했다. 고급담배와 저급의 담배들을 일정량 함께 받아와야 했다. 고급담배는 금세 팔리고 저급의 담배는 재고가 쌓였다. 아버지에게 들를 때면 아버지는 슬며시 내 차의 뒷좌석에 고급담배를 놓아두곤 했다. 그걸 보면 나는 안 팔리는 저급의 담배로 바꾸어 놓았다. 다시 가보면 어느새 담배는 다시 고급으로 바뀌어 있었다. 모든 게 사랑이었다.

그때 나는 그걸 몰랐다. 아버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나도 아들을 키웠다. 나는 아들을 일찍 유학 보냈다. 집에 돈이 없던 어린 시절 나의 꿈이었다. 엄마도 따라 보냈다.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이 있었다. 유학비용을 벌어 대기가 만만치 않았다. 십대에 보냈던 아들이 삼십대가 되어 돌아왔다. 낯설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른이 된 아들의 속에는 귀여웠던 아이의 모습이 없었다. 나를 원망하는 눈빛의 낯선 타인이 앞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아들에게 나는 나는 같이 볼을 한번 차 주지도 않은 무심한 아빠였다.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있을 때 옆에 있지 않았던 투명인간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집처럼 돈이나 사업체를 물려줄 능력이 있는 아버지도 아니었다. 자기만 아는 철저한 이기주의적인 아버지였다. 아들과의 마음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나는 반항을 느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제사도 싫다는 것이다. 가족은 기도에서 마당 구석에 키웠던 보라색 나팔꽃 얘기도 듣기 싫다고 했다. 나는 곰팡내 나는 꼰대가 됐다. 지금 내가 아들에게 진심으로 바라는 게 뭘까? 제사든 추도식이든 추모든 형식이 아니었다. “네 아버지” 하고 겉으로라도 순종하는 말 한 마디를 듣고 싶다. 아마 나의 아버지도 그러셨을 것이다. 그걸 몰랐다.

반항보다 아버지에게 복종하는 것이 자기를 발견하고 인생을 아는 지혜인 줄을 이제야 깨닫는다. 성경 속의 예수는 자기를 낮추어 죽기까지 복종했다. 하나님에게 복종하여 그 아들이 됐다. 니체처럼 반항해서 하나님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다. “네 아버지” 하면서 순종하지 못한 것을 인생 칠십고개에 올라 알고는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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