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왜 떠들고 다닙니까?>
변호사를 한 지 몇 년 안 됐을 때였다. 냉기가 도는 감방 안에서 홑겹의 얇은 죄수복을 입은 그가 내게 물었다.
“변호사는 사회 정의를 위한다고 규정에 나와 있는데 그 사회 정의라는 게 뭡니까?”
나는 엉뚱하게 죄수한테서 근원적인 질문을 받았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 옆방에 있는 죄수가 아프다고 문을 두들기면서 소리쳤어요. 그랬더니 교도관들이 밤에 그를 데려가서 때려죽였어요. 그리고 교도소 근처 야산에 매장했죠. 담당 의사는 심장마비라고 엉터리 진단을 했어요. 분명히 온몸이 시퍼런 멍투성이였을 텐데 말이죠. 검사는 사건을 눈감아 주고 시신을 매장하라고 지휘했죠. 아무리 죄인이라고 하지만 국가가 이래도 되는 겁니까?”
그 죄수는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으로 나를 지그시 보면서 덧붙였다.
“변호사는 권력에 굽실거리고 로비를 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죠. 골치 아픈 현장을 보면 외면을 해야겠죠. 그런 변호사가 어떻게 사회 정의를 이룬다는 겁니까?”
그의 말에는 변호사에 대한 빈정거림이 들어 있었다.
“변호사가 어떻게 하는 게 사회정의라고 보십니까?”
내가 되물었다.
“내가 지금 변호사님께 고발을 합니다. 국가권력이 한 인간을 때려죽이고 암매장을 했다구요. 국가는 그걸 철저히 은폐할 겁니다. 판사들도 외면할 겁니다. 내가 증언을 해도 죄인이 하는 헛소리라고 할 겁니다. 그런데 감옥 안의 이 원한 맺힌 일을 변호사가 듣고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하는 게 사회 정의를 실현시키는 일일까요? 정의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최소한 세상에 대고 소리라도 쳐 줘야 할 거 아닐까요?”
나는 그 죄수의 말을 듣고 귀중한 깨달음을 얻었다.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했다. 진실이었다. 작은 분식점을 하는 죽은 사람의 형에게 연락해서 무덤에 가보게도 했다. 소시민인 가족은 권력에 대항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법조기자실에 알렸다. 저녁 무렵 한 기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어떤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보도는 나가지 않을 거라고. 정부에서 협조요청이 와서 언론이 침묵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는 앵커가 오히려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날씨가 더워지니까 별 헛소리가 다 나온다고 빈정댔다. 그는 후에 국회의원이 됐다. 나는 언론사를 찾아다니면서 사실을 알렸다. 메이저 신문에서 나를 비난하는 기사가 나왔다. 공명심에 들뜬 변호사라는 것이다. 어느 날 검찰청에서 나에게 직접 전화가 왔다.
“왜 떠들고 다닙니까? 증거가 있어요? 변호사를 계속할 생각이 있는 거요?”
그건 노골적인 협박이었다.
“변호사 자격을 검사가 줬습니까? 증거는 검사가 찾아서 진실을 밝히는 게 수사 아닌가요? 왜 변호사한테 수사를 하라고 하죠? 검사가 뭐하는 사람이죠?”
얼마 후 장관이 대한민국 전체 교도관의 명예를 위해 입을 다물어 달라는 부탁이 왔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내용은 그 반대였다. 나와 친한 사람들을 통해서 회유가 들어오기도 했다. 진실을 보고 외치는데 사방이 꽉 막힌 벽이었다.
나는 마지막에 내가 보고 들었던 걸 글로 써서 한 시사월간지에 기고했다. 유일하게 그 잡지에서는 내 글을 받아주었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라는 게 생겼다. 그리고 내가 잡지에 썼던 글이 근거가 되어 의문사규명위원회의 일호 판정으로 그의 억울한 죽음이 뒤늦게나마 세상에 알려졌다.
그 경험을 하면서 나는 많은 걸 깨달았다.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보다 강하지 못하다.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한다. 권력이 두려워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겁쟁이다. 그들이 나를 짓밟으면 하나님이 그들을 짓밟으실 것으로 믿었다.
살인자인 교도관 다섯 명의 그 후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이상하게도 모두 죽어 있었다. 세월이 흘렀다. 나를 협박하던 사람들은 사라져서 자취 없는 그림자가 됐다. 작은 권력을 내세우던 그들은 바위틈으로 들어간 두더지나 박쥐가 된 느낌이다.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은 유령을 두려워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은 겁쟁이
- 엄상익(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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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2-02, 09: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