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코로나 대유행으로 주춤했던 북중 간 해상밀수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공해상에서 ‘선박 대 선박’ 즉, 환적을 통해 중국에서는 철근과 용접봉 등 건축자재를, 북한에서는 몰리브덴과 텅스텐 등 광물을 주고받는데, 유엔 대북제재 위반 품목이 적지 않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환적을 통해 제재 위반 품목이 거래되는 것에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면서도 완전한 통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 랴오닝성과 허베이성 경계에 있는 판진(반금)의 한 물류창고. 지게차와 기중기가 쉴 새 없이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트럭에 옮겨 싣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커다란 흰색 자루(톤마대)는 두 명의 인부들이 겨우 감당할 만큼 양과 무게가 상당해 보입니다.
트럭에 실린 물건은 배가 있는 인근 항구로 옮겨져, 대기한 선박에 적재됩니다. 기중기가 한 번에 6~7개씩 들어 올리는데, 이미 배 안에는 수십 개의 자루가 실려있습니다. 짐 위에 올라선 작업자의 모습이 작아 보일 정도로 양이 상당합니다. 이 배는 곧 항해에 나서는데 북한 선박과 환적, 즉 해상 밀수를 위해섭니다.
중국의 한 대북소식통이 최근 RFA에 제공한 동영상(2021년 11월 촬영)에 고스란히 담긴 북중 간 해상 밀수를 준비하는 중국 선박의 모습입니다.
직접 배를 운항하는 중국인 선장에 따르면, 지난해 9월께부터 북중 간 해상밀수가 다시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비루스의 대유행 이후 북중 국경의 봉쇄로 인적∙물적 교류가 전면 차단되면서 사실상 중단되다시피 했던 해상 밀수가 되살아나고 있다는 겁니다.
‘톤마대’라 불리는 수십 개의 흰색 자루 싣고 바다로으로 양측 선박이 만나 물건을 환적하는 방식입니다. 적발을 피하고자 작업은 대부분 한밤중에 이뤄집니다. 북한 선박은 모두 국가 기관 소속이지만, 중국 선박은 민간인 소유인데 이는 북한 측이 밀수를 합법적인 ‘해상 무역’이라고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의 에릭 펜턴-보크 조정관은 (2월 1일) RFA에 북한이 석유 제품을 흰색 자루에 담아 수입하는 활동을 익히 알고 있다며 환적을 통한 밀수 행위는 유엔 대북제재 위반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에릭 펜턴-보크 조정관] (RFA가 제공한) 사진과 내용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 패널은 주로 북한의 석탄 수출을 주의 깊게 살펴봅니다. 그리고 흰색 자루에 석유 제품을 담아 수입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는데요. 그 안에 담긴 물건 중에는 제재를 위반하는 것도 있고, 아닌 것도 있겠죠. 사진 속 중국 배가 바다로 나가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으로 물건을 옮기는 거라면 대북 제재를 위반하는 것이고, 이것이 밀수행위인 것도 알 수 있습니다.
북한의 불법 해상밀수를 추적하고 분석하는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 (RUSI)의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도 (1월 31일) RFA에 북중 국경 봉쇄 조치 속에도 해상을 이용한 교류는 계속돼 왔다며 이 가운데 밀수 품목이 있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 북한 청진 등 일부 동부 항구에 선박이 드나드는 것도 종종 볼 수 있고, 지금은 남포 등으로 선박 교통량이 많기 때문에 때로는 (선박들의 입항이) 밀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밖에도 북한 항구의 화물 터미널에 선박이 많이 드나드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사진과 유사한 흰색 자루를 내려놓는 것을 목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식료품과 생필품일 수 있지만, 제한된 범위의 밀수품도 있습니다. 어느 정도 일상화된 사업인 셈이죠. 또 코로나 국면에 이전보다 교통량은 줄었지만, 앞으로 중국 항구에 더 많은 선박이 드나들 것으로도 예상합니다.
중국인 선장에 따르면 북한 선박과 환적에 나서는 선원들은 코로나비루스의 확산 방지를 위해 반드시 방역복을 착용해야 하는데, 이를 소홀히 할 경우 북한 측 감시 요원의 지시에 따라 환적은 즉각 중단됩니다. 또 선박은 일반 어선이 아닌 밀수를 위해 개조한 배로, 환적을 위한 기중기 설치가 필수라고 이 선장은 덧붙였습니다.
이 중국인 선장에 따르면 최근 북중 간 해상밀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품은 건축자재입니다. 구체적으로 철근과 전기용접봉을 비롯해 건축 내장재가 많은데, 알루미늄 창문과 전기 조명제품 등 종류도 다양하다는 것이 이 선장의 설명입니다.
운임은 품목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톤당 중국 돈으로 약 3천~5천 위안. 가벼운 대신 부피가 큰 것은 비용이 비싸고, 무게는 무겁지만, 부피가 적은 물건은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됩니다. 또 북한에서 중국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순물을 제거하고 순도를 높인 몰리브덴과 텅스텐 등인데 모두 유엔 제재 품목입니다.
[에릭 펜턴-보크 조정관] 건축자재 가운데 몇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건축자재에 대한 제재는 없지만, 철강류 같은 것은 대북제재 위반입니다. 북한이 건설 중인 건물이 대량살상무기 프로그램과 관련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북한에서 텅스텐과 몰리브덴 정광 등이 중국으로 수출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또 설탕, 식용유, 조미료, 냉동 쇠고기 등 식자재도 들어가는데, 이는 일반 주민용이라기보다 북한 고위층과 간부들에게 공급되기 위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식품과 의약품 등은 유엔 제재 품목이 아니지만, 사치품에 버금가는 고가∙고품질의 식자재는 제재 위반입니다.
에릭 펜턴-보크 조정관은 흰색 자루에 담아 주고받는 환적 활동이 잠재적으로 대북제재를 위반할 수 있는 심각한 행위라고 지적했습니다.
[에릭 펜턴-보크 조정관]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 패널은 매우 심각하게 이것이 잠재적으로 대북제재를 위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흰색 자루 안에 건설 자재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핵 벙커를 짓거나 미사일 부품이 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말린 도라지와 같은 북한 농산물이 밀수 배를 타고 넘어가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북한 측 밀수 담당자가 따로 중국에 판매하는 용도일 것으로 추정돼 국가와 개인 차원의 해상밀수가 동시에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북중 간 해상 밀수가 자주 일어나는 곳은 비교적 단속이 느슨한 랴오닝성의 반금이나 후루다오, 또는 산둥성 지역입니다. 이전에는 북한과 거리상으로 가장 가까운 단둥 동강에 밀수 선박이 자주 드나들었지만, 코로나 대유행 이후 해상 밀수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면서 지금은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활동 무대였던 대련과 장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대북제재 국면에도 기승을 부리는 해상 밀수에 대한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단둥의 한 무역업자는 중국 당국도 해상 밀수 활동을 알고 있지만, 오히려 모른 척 눈감아주고 있다고 말합니다. 뇌물을 준 중국 선박에 한해 밀수 활동을 단속하지 않는 대신, ‘한꺼번에 너무 많은 양을 하지 말라’는 지시만 내린다는 게 이 무역업자의 설명입니다.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도 해상 밀수 단속이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 밀수품 환적이 국제수역이나 북한의 배타적 경제수역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통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또 중국에서 밀수를 용인하는 사람들끼리 연결돼있고, 밀수를 조장하는 부패한 관리들이 있기 때문에 국제사회가 이를 확실히 단속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북중 국경이 개방돼도 해상 밀수가 둔화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않습니다.
또 정상적인 거래로 위장한 선박들을 처음부터 단속하기가 쉽지 않고, 위성 등의 단속을 피하려고 한밤중에 활동하는 데다 거래 물건에서도 제재 위반 여부가 모호한 영역이 있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알레스테어 모건 전 유엔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 조정관도 (1월 24일) RFA에 “전 세계적으로 아직 해상 밀수에 대한 완전한 근절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털어놨습니다.
국제사회는 북중 간에 환적을 통한 석유와 석탄 등의 밀수를 주시하고 있다고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은 강조했습니다.
[제임스 번 선임연구원] 국제사회가 북한의 해상 밀수에 관해 가장 우려하는 것 중 하나는 연간 50만 배럴이라는 유엔 안보리의 정제유 수입 상한선을 위반하는 겁니다. 이미 북한은 성공적으로 그렇게 해왔습니다. 또 석유와 무기 프로그램, 사치품 비용을 지불하기 위한 석탄, 아연, 철광석 등을 수출하는 행위도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 국면에서 위축했던 선박들의 활동이 다시 활발해지고,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북한 당국이 계속 제재 회피의 틈을 노린다면 북중 간 해상밀수는 더 성행할 전망입니다.
미국은 북중 간 해상 밀수에 관해 “북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를 위반하는 제재 회피 노력을 통해 불법 대량살상무기와 탄도미사일 프로그램에 대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며 “미국 정부는 모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들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결의안에 따라 중국 정부가 의무를 이행할 것을 촉구한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는 대북제재 이행에 관한 최종보고서를 준비 중으로 오는 3월께 발표할 예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