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어요"

"평생을 도둑질을 하다가 좀도둑이 되어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연기를 하는 게 하나님이 내게 준 역할일지도 모르죠." <어둠에서 어둠으로>

방송화면에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좀도둑 전락한 대도 조세형 출소 한 달 만에 또 훔쳤다.’

화면에는 오래 전 출소할 때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가 입고 있는 한복은 내가 준 옷이었다. 그때 나는 그의 변호사였다. 화면은 계속 그의 범죄사실을 쏟아냈다.

“조씨는 용인의 고급 전원주택 단지를 돌며 총 삼십 차례에 걸쳐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는 출소 한 달 만에 또 남의 물건에 손을 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는 삼 년 전에도 성동구 일대의 주택에 침입해 절도행각을 벌이다가 징역형을 살았습니다. 늙은 도둑은 당시 범행 과정에서 동전이 들어있던 저금통을 훔쳐 달아나다 중간에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여든 살 노인의 돼지저금통 절도’는 그에 대한 세상의 압축된 비아냥이었다. 나는 그를 변호할 때 참회를 얘기했었고 노인은 더 이상 도둑질할 체력이 없다고 했었다. 세상은 나의 그런 이상에 대해 현실을 들이대면서 비웃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방송을 보면서 이십육년 전 그와 대화했던 일들이 슬라이드 영상같이 떠올랐다.

“어떻게 도둑질이 시작됐어요?”
“아이 때 거지로 지냈는데 모이면 어떤 물건을 훔쳐왔는지가 자랑이었어요. 어렸던 나는 겁을 먹고 남의 집 부엌에 들어가 은수저를 간신히 훔쳤어요. 그런데 형들은 안방으로 들어가 패물을 훔쳐왔더라구요. 그런 형들이 내게는 영웅이었고 정말 존경스러웠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대담하고 기술 좋은 큰 도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나도 그와 같이 세상에서 버려진 채 추운 겨울날 골목길 쓰레기통 옆 버려진 가마니 속에서 자는 어린 거지였다면 어땠을까. 살아야 한다는 원초적 본능 앞에서 도둑질이 오히려 도덕이고 윤리가 되지는 않았을까. 나는 좋은 어머니를 만나 정직을 배웠다. 좋은 교육을 통해 양심이 아프다는 게 뭔지를 알았다. 나의 도덕으로 그를 함부로 저울질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사는 세계에 따라 도덕이 달랐다. 건달 세계에서는 강한 주먹이 도덕이었다.

일반 세상에서도 도덕은 입장에 따라서 달랐다. 젊은이의 도덕이 있고 노년의 도덕이 있었다. 나의 도덕으로 남을 저울질할 수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반드시 남이 할 일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와 그는 경우가 다르고 유전자가 다르고 그분이 준 은총이 다르기 때문이다. 획일적인 기준을 들이대기 때문에 위선이 만연하기도 했다. 도덕은 상대적이었다.

변호사인 나는 바리새인처럼 높이 올라앉아서 명령을 내리듯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낮게 처하며 구하려는 그들의 입장에서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이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마음이었다. 예수는 사마리아 여인의 불륜을 꾸짖거나 불가능한 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능력에 따라 그녀를 생명의 샘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사람에 따라 그에 알맞은 도덕을 가르치셨다. 도덕은 보다 낮은 곳에서부터 보다 높은 곳으로 인도하는 길이다. 엄한 명령으로만 해석하지 않는다. 엄마같은 사랑이 곁들여야 했다. 도덕공식에 의하지 않고 현실에 따라서 그의 능력의 범위 내에서 그를 도와야 할 것 같았다.

“본능적으로 남의 물건을 가져오면 안된다는 의식이 있었어요?”
내가 물었다.

“솔직히 전혀 없었어요. 세상과 우리들은 전혀 도덕이 달랐어요. 우리 세계에서는 못 훔치는 놈이 병신이고 모자라는 놈이었죠. 도덕이나 윤리를 가진 세상과 나 같은 놈들은 근본적으로 가치관이 전혀 달라요. 사는 세상도 다르고 말이죠. 사람에게 생선을 맡겨 놓으면 안 먹을 수 있어요. 그러나 고양이에게 맡겨 놓아 보세요. 저는 그런 고양이 같은 존재죠.”

변호사는 죄인의 양면성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그 하나는 법정용으로 참회하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내용이다. 다른 하나는 인간 내면에 깊이 박혀 있는 솔직한 감정이다. 그리고 선한 면만을 세상에 말한다. 변호사니까.

“이제는 보통사람들이 사는 빛의 세상으로 옮겨올 생각은 없어요? 다시 도둑질을 하면 변호를 하면서 참회를 운운하고 재범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나는 뭐가 되는 겁니까?”
내가 물었다. 그의 얼굴에 잠시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프로의 세계에는 나이가 없어요. 그리고 평생을 도둑질을 하다가 좀도둑이 되어 감옥에서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연기를 하는 게 하나님이 내게 준 역할일지도 모르죠. 내가 다시 도둑질하면 나쁜 놈 하고 욕하고 잊어버리세요.”

이십육년 전 감옥에서 그가 내게 한 말이었다. 어둠에서 나와 세상이 비쳐주는 밝은 빛을 거부하고 다시 어둠 속으로 가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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