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 紙幣의 人物들이 갖는 共通點이 ‘近代化’라면, 韓國 紙幣의 人物들이 갖는 共通點의 하나는 ‘奴婢’다.
<2021. 10. 26. JB Press, 펀드빌더>
文在寅 대통령은 2021년 3·1節 및 光復節(8월15일) 記念辭에서 日本을 향해 이렇게 言及했다.
‘過去에 발목 잡혀 있을 수는 없습니다…未來志向的인 發展에 더욱 힘을 쏟아야 합니다.’(3·1節)
‘韓日양국은, 國交正常化 이후 오랫동안 民主主義와 市場經濟라는 共通의 價値를 基盤으로…經濟成長을 함께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양국이 함께 가야 할 方向입니다.’(光復節)
韓國은 틈만 나면 日本을 향해 ‘未來志向的 發展’을 强調한다. 하지만, 韓國이 실제 보여주는 行動은 ‘過去志向的 退行’이다. 文在寅 대통령은 同年 10월15일 韓·日 頂上 電話通話에서 기시다(岸田) 總理에게 이렇게 要求했다.
‘1965년 韓·日 請求權協定의 適用範圍에 대한 法的 解釋의 差異가 存在한다. 外交的 解法을 摸索해야 한다. 生存해 있는 (慰安婦) 被害者 할머니가 13명이므로 解決할 수 있는 時間이 많지 않다’
韓·日 請求權協定과 別個로, 日本은 慰安婦問題와 관련해 韓國의 被害者들이 滿足할 때까지 끊임없이 謝罪하고 補償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請求權協定(1965년), 고노(河野)談話(1993년), 慰安婦問題合意(2015년)에도 불구하고 또 慰安婦問題를 거론한 것이다. 韓國은 수시로 國家 간의 約束을 깨고 問題를 擴大·再生産한다.
韓國이 過去指向的 國家라는 점은, 韓國의 紙幣에 登場하는 人物만 봐도 알 수 있다. 日本과 比較하면, 이 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日本의 紙幣를 보자. 1000엔권의 人物은 세균학자 '노구치 히데오’(野口英世, 1876~1928)다. 매독균인 '스피로헤타' 배양 硏究를 통해 世界的으로 認定받았다. 5000엔권의 人物은 女流 小說家 '히구치 이치요오’(樋口一葉, 1872~1896)다. 女性의 삶과 고뇌를 묘사한 秀作들을 發表했다. 10000엔권의 人物은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다. 啓蒙 思想家로서 近代化의 象徵的 存在다.
2024년부터는 紙幣 디자인이 바뀐다. 새로운 1000엔권의 人物은 近代日本醫學의 아버지로 불리는 '기타사토 시부사부로’(北里柴三郞, 1853~1931)다. 페스트菌을 發見하고, 世界 最初로 파상풍균 배양에 成功했다. 5000엔권의 人物은, 女性敎育의 先驅者 '쓰다 우메코’(津田梅子, 1864~1929)다. 日本 最初의 女性 留學生으로서 ‘쓰다주쿠(津田塾)大學’을 設立했다. 10000엔권의 人物은 日本 資本主義의 아버지로 불리는 '시부사와 에이이치’(澁澤榮一, 1840~1931)다. 第一國立銀行, 東京證券去來所, 一橋(히토쓰바시)大學, 東京經濟大學, 理化學硏究所 등 다양한 企業과 學校, 硏究所를 設立했다.
現行 혹은 次期 日本 紙幣의 人物은, 科學者가 두 명이며, 小說家, 啓蒙家, 敎育家, 事業家가 各 한 명이다. 全員 19世紀中盤에 出生했다. 아울러, 24세로 夭折한 ‘히구치 이치요오’(樋口一葉, 1872~1896)를 除外하면, 20世紀 初盤에 生을 마감했다. 대부분 20世紀경에 活躍했다. 따라서, 日本 紙幣의 人物들이 象徵하는 것은 ‘近代化’ 혹은 ‘開化’라고 볼 수 있다.
韓國 紙幣 1000원권의 人物은 ‘李滉’(1500~1570)이라는 性理學者다. 5000원권의 人物 역시 ‘李珥’(1536~1584)라는 性理學者다. 10000원권의 人物은 ‘世宗’(1397~1450)이라는 王이다. 50000원권의 人物은 ‘申師任堂’(1504~1551)이라는 女性 藝術家다. 性理學者가 두 명이며, 王과 女性 藝術家가 各 한 명이다. 科學者나 技術者는 全無하다.
性理學은 孔子와 孟子의 가르침을 根本으로 삼는 學問이다. 朱子學이라고도 한다. 實用的 學問이 아니라, 주로, 心·仁·義·禮·智·情 등 哲學的 槪念을 다룬다. 朝鮮의 500년(1392~1910)은 成理學으로 出發해 性理學으로 끝났다고 해도 過言이 아니다. 性理學 理論의 解釋 方法 등을 놓고 葛藤과 反目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15世紀 中盤부터 勳舊派, 節義派, 士林派, 淸談派라는 4個 派閥이 생겼고, 權力鬪爭이 展開되었다. 이 過程에서, 反對派의 攻擊으로 禍를 입는 '士禍'가 發生했다. 戊午士禍(1498년), 甲子士禍(1504년), 己卯士禍(1519년), 乙巳士禍(1545년)가 잇따라 發生하여 ‘剖棺斬屍’ 등의 피비린내 나는 政治報復이 이어졌다. 權力鬪爭 끝에 士林派가 最終的으로 살아남았다.
1000원권의 李滉(1500~1570)과 5000원권의 李珥(1536~1584)는, 性理學 理論의 解釋 差異로 인해 서로 對立했다. 李滉은, 四端(惻隱·羞惡·辭讓·是非)과 七情(喜怒哀懼愛惡欲)이 各各 별개의 槪念으로 存在한다고 主張한 반면, 李珥는 四端이 七情에 包含되는 槪念이라고 主張했다. 결국, 16世紀 後盤에 士林派는, 李滉의 性理學 理論에 同調하는 東人派과, 李珥의 性理學 理論에 同調하는 西人派로 分裂되었다. 東人派는 재차 南人派와 北人派로 分裂되었다.
1659년에 孝宗이 死亡했는데, 母親(趙大妃)이 몇년 동안 喪服을 입어야 性理學 禮法에 附合하는가를 놓고 南人派와 西人派가 對立했다. 南人派는 孝宗이 王位를 繼承했기 때문에 長子로 認定되므로 母親이 3년 동안 喪服을 입어야 한다고 主張했고, 西人派는 王位 繼承과 無關하게 孝宗은 仁祖의 둘째 王子로서 결코 長子의 禮를 適用할 수 없기 때문에 母親이 1년 동안 喪服을 입어야 한다고 主張했다. 論爭 끝에 西人派의 論理가 優勢하여 孝宗의 母親은 1년 동안 喪服을 입게 되었다.
1674년에는 孝宗의 妃가 死亡했는데, 孝宗 母親(趙大妃)의 喪服 着用 期間을 놓고 재차 南人派와 西人派가 격돌했다. 南人派는 몇가지 名分을 내세워 1년을 主張했고, 西人派는 별도의 名分을 내세워 9개월을 主張했다. 甲論乙駁을 통해 이번에는 南人派의 論理가 優勢하여 孝宗의 母親은 1년 동안 喪服을 입게 되었다.
이후, 西人派는 老論派과 小論派로 또다시 分裂되었고, 老論派는 재차 時派와 僻派로 分裂되었다. 朝鮮의 指導層은 性理學 理論과 政治的 性向에 따라 이런 式으로 分裂을 거듭했고, 時間이 갈수록 性理學은 鎖國과 衛正斥邪 등 時代錯誤的 退行을 合理化하는 理論的 背景으로서 存在했다.
性理學·朱子學을 향한 朝鮮의 病的 執着을 잘 보여주는 事例가 있다. 1876년 朝鮮修信使 일행이, 發展한 日本의 모습을 視察할 目的으로 訪日했을 때의 일이다. 日本帝國 初代 博物館長이며 駐美日本大使를 歷任한 哲學者 ‘구키 류이치’(九鬼隆一)는 朝鮮修信使 一行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修信使 代表 金綺秀가 말끝마다 性理學과 朱子學을 言及했다. 이에, ‘구키 류이치’(九鬼隆一)는, 金綺秀에게 ‘貴國(朝鮮)의 學問은 全的으로 朱子만을 崇尙하는가, 아니면 다른 學問도 崇尙하는가?’라고 물었다. 이에, 金綺秀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 朝鮮은 500년 동안 朱子만을 崇尙했다. 朱子를 어기는 사람은 亂賊이라는 罪目으로 處斷했다. 國法이 嚴重하여 上下貴賤이 朱子만을 崇尙해왔을 뿐이다.’
性理學·朱子學을 信奉했던 學者를 두 명이나 紙幣의 人物로 選定한 오늘날의 韓國人들은, 朝鮮의 滅亡이 性理學·朱子學에 대한 病的 執着 때문이라는 事實을 언제쯤 自覺할 것인가? 申師任堂(50000원권)과 李珥(5000원권)는 母子關係이며, 李滉(1000원권)은 이들과 同時代를 살았다. 世宗(10000원권)은 훨씬 以前의 人物이다. 네 명의 出生年度를 平均하면 1484년이 된다. 平均 死亡年度는 1538년이다. 15世紀後盤에 出生하여 16世紀初中盤에 生을 마감한 것이 된다. 日本 紙幣의 人物들이 19世紀中盤에 출생하여 20世紀初盤에 生을 마감한 것에 비해 무려 4世紀(400년)나 過去의 人物들이다.
10000원권의 世宗은 한글(朝鮮의 文字)을 만들었다는 理由로 韓國人으로부터 상당한 尊敬을 받는다. 하지만, 奴婢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主人을 告訴할 수 있는 法的 權利를 剝奪한 奴婢告訴禁止法(1422년)을 만든 人物이 바로 世宗이다. 아울러, 從母法(1432년)이라는 것을 制定하여, 아내가 婢일 경우 남편이 아무리 良人이라도 子息들은 무조건 奴婢가 되도록 만들어 奴婢의 增加를 초래한 것도 世宗이다. 이로 인해, 17世紀中盤 朝鮮의 人口 약 1200만명 중, 30~40%가 奴婢로 전락했다. 당시 首都 漢陽의 戶籍을 보면 過半이 奴婢身分이었다.
10000원권 紙幣의 뒷면에는 혼천의(渾天儀)라는 것이 印刷되어 있다. 앞면의 人物 世宗(1397~1450)과 同時代에 活躍한 科學者 蔣英實(1390~1442?)이 同僚들과 함께 製作한 天文時計의 一種이다. 蔣英實은 朝鮮으로 歸化한 中國人 男性과 官妓였던 朝鮮人 女性 사이에서 태어났다. 母親이 官妓일 경우 父親의 身分에 상관 없이, 딸은 官妓가 되고 아들은 官奴가 되는 것이 당시 朝鮮의 法이었다. 이런 식으로 蔣英實은 賤한 身分이었지만, 科學的 才能을 認定받아 1423년, 王室의 物品을 製作하고 修理하는 ‘別坐’라는 官職에 오르게 되었다. 以後, 혼천의(渾天儀)를 비롯해 自擊漏(물時計), 仰釜日晷(해時計) 등을 製作함으로써 科學分野에서 크게 活躍했다.
韓國이, 蔣英實 같은 科學者를 紙幣의 人物로 選定했다면, 紙幣 人物의 性理學者 偏重도 막을 수 있었고, ‘科學을 重視하는 韓國’이라는 어필도 가능했을 것이다. 하지만, 中國人과 官妓 사이에서 태어난 點을 勘案하면 ‘체면’과 ‘名分’을 重視하는 韓國이 蔣英實을 紙幣의 人物로 選定할 可能性은 向後로도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1442년을 끝으로 蔣英實은 世宗實錄 등 歷史記錄에서 완전히 사라진다. 이때쯤 死亡한 것으로 推定된다. 死亡 經緯를 알면, 朝鮮社會가 얼마나 科學者나 技術者를 賤待했는지 알 수 있다. 1442년에 蔣英實은 世宗이 타게 될 安輿(乘轎, 가마)를 製作했다. 그런데 安輿는 世宗이 타고 다닌지 10여일 만에 부셔졌다. 이로 인해, 蔣英實은 不敬罪로 官職에서 罷免되었고 罰까지 받게 되었다. 곤장(棍杖) 100대의 罰이 내려졌다. 곤장은 넓직한 몽둥이로 엉덩이를 내리치는 刑罰이다. 살점이 찢어지고 뜯겨나간다. 100대라면 死刑宣告나 마찬가지다. 世宗은 그간의 功勞를 勘案하여 ‘곤장 100대’를 ‘곤장 80대’로 경감해주는 ‘恩惠’를 베풀었다. 蔣英實은 곤장 80대로 인해 즉시 死亡했거나, 後遺症으로 앓다가 死亡한 것으로 推定된다.
同時代를 살다가 惡緣으로 끝난 世宗과 蔣英實은, 600년 後에 10000원권 지폐의 앞면과 뒷면이라는 因緣으로 또다시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蔣英實이 紙幣의 人物로 登場할 수 없는 決定的 理由는, 出生背景(중국인 남성과 조선여성 관기의 자식)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의 죽음이 科學者를 천대하고 괄시했던 朝鮮의 無知蒙昧에서 비롯되었다는 點을 韓國이 감추고 싶어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日本 紙幣의 人物들이 갖는 共通點이 ‘近代化’라면, 韓國 紙幣의 人物들이 갖는 共通點의 하나는 ‘奴婢’다. 10000원권의 世宗은 奴婢告訴禁止法과 從母法을 만들어 奴婢制度의 틀을 마련했다. 덕분에, 50000원권의 申師任堂은 친정으로부터 물려받은 奴婢 30여 명을 120여 명으로 4倍나 불리는 것이 가능했다. 그리고, 5000원권의 李珥 등 申師任堂의 자녀들은 母親이 불린 奴婢들을 遺産으로 相續받았다. 아울러 1000원권의 李滉은 360명 以上의 奴婢를 所有했다. 이런 식으로 長期間에 걸쳐 大規模로 자국민(同族)을 奴隸로 만든 朝鮮의 非情한 奴婢制度는 人類歷史上 類例가 없다.
日本 등 世界主要國이 近代化와 富國强兵에 拍車를 加하던 重要한 時期에 여전히 性理學을 固執하며 우물안 개구리 신세로 지낸 것이 朝鮮이었다. 性理學的 禮를 遵守한다는 名分을 내세워 喪服을 입는 期間조차 長子 與否 등을 따지면서 論爭을 하느라 허송세월한 한심한 國家가 바로 朝鮮이었던 것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韓國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끝난 慰安婦問題에 대해, ‘憲法裁判所 判定이 새롭게 나왔기 때문에’, ‘大法院 賠償 判決이 추가로 나왔기 때문에’, ‘被害者 中心主義 實現을 해야 하기 때문에’라는 등의 트집잡기式 名分을 계속 만들어가며 問題를 일으키고 葛藤을 助長한다. 性理學的 名分을 내세워 對立과 反目을 反復했던 朝鮮時代의 行態를 21世紀에도 이런 식으로 韓國이 그대로 踏襲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面에서, 오늘날의 韓國은 확실히 過去志向的 習性을 지닌 國家라고 볼 수 있다.
紙幣의 人物만 봐도 알 수 있는 韓國의 過去指向的 習性
- 펀드빌더(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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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8, 22:33












펀드빌드님 말이 맞습니다
서울의 얼굴 광화문만 해도 조선 천지.
세종로라는 이름, 세종 동상, 이순신 동상, 점점 거대해져가는 광화문 담벼락..
다 걷어치우고 대한민국 국부의 동상 세우고
국기게양대는 9.28.수복 당시 국군 해병대가 중앙청에 태극기 올리는 모습을 형상화해서
만들면 멋있고 의미있을 텐데..
이놈은 궤변이 능수능난하여 깊은 지식이 없으면 옳은가보다 할 수 있다. 거의 문재인과 같은 수준이다.
과거지향적인 나라는 일본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매국노 펀더의 존경향인 아베이고 아베 이놈도 동맹국과 국제정치의 근간을 흔드는 수준은 문재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 4대 첨단 소재를 통하여 한국의 반도체 산업을 파괴하고 대만과 같이 공동의 목표로 대한만국의 적이 되려 자청하고 있다. 일본이 행한 대한 정책에 따르면 문재인이 저렇게 나오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물론 문재인이 훌륭한 국가지도자라고 보지 않는다. 조선 5000년 역사 중 최악의 인물이다.
그리고 성리학이 어쩌고......웃기지 마라 세계에서 제나라 여성을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아먹은 놈은 일본일 뿐이다. 한국이 오늘날 어지러운것은 인의예지신이 무너진 까닭이다. 시대에 따라 3년 상을 하든지 10년을 하든지 그 시대상이고 문화이다. 그게 미개나 선진의 척도는 아니다. 오늘날 3년상은 없어진지 오래이다. 과거 농경시대일때다. 이놈의 비유는 기가 차다.
너의 조국 일본 성문화는 일명 성진국이다. 알간 .....네 딸이나 며느리 일본 긴자로에 보내서 돈 벌어오라고 해라......효도 많이 할것이다.
다시 돌아와 요즘 소학과 대학 다시 공부한다. 손자병법이나 한비자도 새로운 시각에서 분석도 한다........거기에는 온갖 지혜가 있다. 살아가는 방법에 관한 글들은 새롭게 보인다. 문재인과 조국 그리고 빨갱이들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다시 공부한다.
물론 펀더같은 매국노들과 빨갱들에 대한 공통점들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놈들의 특징은 금수와 다를바 없다는 것이 특징이다. 사람으로 대우한다는 자체가 어불성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