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명(自明)한 상식을 정치의 규범으로 삼아야

그가 불안정한 정권의 초기에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고 청문회 통과와 부패수사를 바꿔먹기 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좋은 정치의 모델>

한 일간신문에 난 컬럼을 봤다. 윤석열 새 정부의 지지율이 오십 퍼센트 아래로 밑돌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어떤 정부도 국민들의 기대 때문에 정권 초에는 칠십 퍼센트를 넘는데 새벽부터 검은 구름이 끼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을 찍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냉소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새로운 대통령이 야당의 벽을 넘으려면 국민들의 지지가 필수적인데 빈손으로 싸움터에 나가게 된 꼴이라고 했다. 곧 있을 총리 장관의 인사청문회가 어떻게 될까 궁금하다.

나는 정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살아왔다. 투표에서 기권을 한 적도 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맡기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는 예수의 정치관이라고 할까. 경제관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걱정하지 말라는 예수의 경제관을 따른다. 처음 변호사를 시작했을 때 국회의원 사무실에서 보좌관 비슷한 일을 한 적이 있다. 지역구민의 취직 부탁 인사청탁 사건청탁으로 질식할 지경이었다. 뭐라도 하나 이익이 있어야 표를 팔지 훌륭한 사람을 찍는 나라가 아니었다. 무리한 청탁들에 대해 해줄 듯한 태도로 사기를 치는 게 대응 방법이었다. 정치는 돈인 것 같았다. 국회의원이 정치가 아니라 돈을 구하러 다니기 바쁜 것 같았다. 어느 날 내가 모시던 국회의원이 이런 말을 했다.

“국회의원은 연예인이나 비슷한 거야. 동시에 이 국회의원이란 자리는 로마로 가는 길이기도 하지.”

인기와 권력욕을 압축한 말이라고 생각했었다. 어떤 나라를 만들고 싶다는 열정은 발견하지 못했다.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나의 관념일 수 있었다. 그후 어쩌다가 대통령 직속 기구의 지휘부에서 몇 년간 일을 했다. 통치권자의 두뇌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어떻게 하면 손아귀 속에 들어온 천하를 움직일 수 있는 정권을 놓치지 않을 것인가였다. 그 목적을 위해 민중을 휘어잡을 이벤트 구상을 하고 언론으로 하여금 북치고 장구치게 하는 게 일이었다. 어떤 수단을 쓰더라도 선거에 이겨야 했다. 지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들이었다.

가만히 살펴보면 그들은 경제공동체인 것 같기도 했다. 작게는 지역의 아파트 개발에서 얻은 불법한 돈들이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재벌의 돈들이 들어왔다. 석유 무기 등 굵직굵직한 이권들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들을 나누어 먹고 방어하는 경제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정권이 바뀌어도 그런 행태는 배우는 바뀐 채 계속되는 것 같았다. 대장동개발사건도 그런 공식에 대입해 보면 추리가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일조 원이라는 큰 돈이 생겼다. 그 돈은 대통령이라는 꿈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정치는 돈이기 때문이다.

그런 돈들을 독식하는 건 바보다. 차의 뒷트렁크에 현찰 뭉치를 넣고 수십 명의 정치인에게 배달이 될 수 있다. 당권이든 대권이든 그런 씨를 심어놓아야 얻을 수 있는 게 정치의 생리다. 예상치 못하게 권력의 칼자루를 빼앗겼다. 경제공동체가 된 그들은 힘을 합쳐 방어를 하게 됐다. 세상은 검수완박의 이면에는 검찰수사를 무력화해서 그들의 비리를 덮으려는 꼼수가 있다며 들끓는다. 꼭 그런 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부패수사는 계속 검찰이 가지기로 한 게 여야 합의안이다. 칼자루는 검사 출신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그가 불안정한 정권의 초기에 부패와의 전쟁을 벌이지 않고 청문회 통과와 부패수사를 바꿔먹기 할 가능성도 있어보인다. 첫 국무총리부터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스타일을 구기기 때문이다.

그런 뒷모습들을 상상하면서 정치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국민과 국토 위에 자기가 품고 있는 이상을 그려놓는 게 아닐까? 나는 성경을 보면서 정치를 배우기도 한다. 윤석열의 선대위원장이라는 분이 기자들에게 후보자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는 말을 한 걸 기사로 읽은 적이 있다. 성경은 그런 짓들을 속임수와 사기로 보고 그런 짓을 한 자들을 늑대 독사 이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이런 부분을 읽었다.

‘그가 주님의 심부름꾼이라는 심정으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고 자신의 정권 안보만을 생각하고 악의적인 살상을 감행했기 때문에 망하고 말았다’

나는 성경에서 좋은 정치가를 본다. 모세에게서 정직한 건국자의 모습을 봤다. 솔로몬에게서 정교한 공약과 정책수행을 발견했다. 이사야는 정치적 견해를 용감하게 펼쳤다. 우국지사는 예레미야이고 믿음을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는 이는 다니엘이었다. 이상적인 국가의 모습은 계시록에 나와있었다. 성경에서 국가를 지탱해 나가는 이는 정치가들이 아니라 의인들이라는 걸 알았다.

정치는 단순하고 명백한 인간의 도리를 국가에 적용하는 것이라고 하면 너무 순진한 말일까? 링컨은 특별한 정치적 테크닉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냥 자명한 상식을 정치의 규범으로 삼았다. 그러나 인생 그 자체를 알고 있었다. 겸손했다. 그렇기 때문에 큰 정치가가 될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도 그렇게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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