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DOM 교양영어(148): King Lear/우주를 창조하고 운행하는 神은 세상이 요동을 치든 말든 구경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King Lear' is a play about blindness – blindness to others’ motivations, blindness to one’s own true nature, blindness to the emptiness of power and privilege, and blindness to the importance of selfless love. Lear’s only desire is to enjoy a comfortable, carefree old age, but he fails to see the role his absolute power has played in shaping his relationship with his daughters, whom he expects to take care of him. Once he loses his power Lear gains insight into his own nature and realizes his shortcomings, admitting “mine eyes are not ‘o th’ best.” (V.iii) Tragically, this self-knowledge comes too late, at a point when Lear has forfeited the power that might have enabled him to change his fate. He finally sees the world as it really is, but is powerless to do anything about it. He dies after saying the final words, “look there, look there,” (V.iii) a literal command that the others look at Cordelia, but also a symbolic plea that the survivors see themselves, and the world, more accurately.
The play opens with a glimpse of the subplot that mirrors the main action, as Gloucester explains that he has two sons, one legitimate and one illegitimate, but he tries to love them equally. They discuss Lear’s plans to divide his kingdom, suggesting that he has already decided to share equally among his daughters, and his love test will be just a show, and actually won’t decide anything. Lear then announces his intention to divide his kingdom, admitting that Cordelia is his favorite. He clearly expects all three daughters to try to outdo each other with declarations of their love, for which he will reward them with portions of land. But Cordelia refuses to flatter him, and humiliates him publicly with her disobedience. Enraged by Cordelia’s stubbornness, Lear disowns her, and divides the kingdom between the remaining two daughters. Lear’s inability to understand that despite Cordelia’s reluctance to publicly flatter her father she actually loves him best is the tragic mistake that incites the action of the rest of the play.
〈Lear王〉은 맹목에 관한 극(劇)이다―타인의 동기에 대한 맹목, 자기 자신의 진짜 본성에 대한 맹목, 권력과 특권의 공허함에 대한 맹목, 無慾(무욕)의 사랑에 대한 맹목이다. Lear의 유일한 욕망은 안락하고 근심 없는(carefree) 노년을 즐기는 것이지만 자기를 돌보아 줄 것으로 기대하는 딸들과의 관계를 형성함에 있어서 그의 절대 권력이 해온 역할을 인식하지 못한다. 권력을 상실했을 때 Lear는 자신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획득하게 되고 그의 결함을 깨닫게 되고 “내 눈은 아주 좋지 못해.”라고 인정한다. 비극적이게도, 이 자기 인식은 Lear가 그의 운명을 바꾸는 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도 있었을 권력을 상실한 시점에 너무 늦게 온다. 그는 마침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되지만 그것에 대해서 뭐라도 하기에는 권력이 없다. 그는 그의 마지막 말 “저곳을 보라, 저곳을 보라.”고 한 후에 죽는데, 이 말은 다른 사람들이 Cordelia를 바라보라라는 엄밀한 명령이지만 또한 살아남은 자들이 자기 자신들을, 그리고 세계를 더 정확하게 바라보라는 상징적 호소이다.
극은 Gloucester가 적자와 서자 아들 둘이 있지만 그들을 동등하게 사랑하려고 노력한다고 설명하면서 극의 주된 행위(main action)를 반영하는 부차적 줄거리에 대한 一見(일견)으로 시작된다. 그들은 Lear가 이미 세 딸들에게 (국토를) 공평하게 분배하기로 결정하였으며 그의 사랑시험(love test)은 단지 쇼에 불과하며 실질적으로 어떤 것도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암시하면서 Lear의 왕국 분할 계획을 논의한다. 그러고 나서 Lear는 Cordelia가 그가 가장 사랑하는 딸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왕국 분할 의사를 발표한다. 그는 분명히 세 딸 모두가 그들의 사랑의 선언에 있어서 서로 능가하려고 노력하기를 기대하고 있으며 그것에 대해서 그는 국토의 일부로서 보상할 것이다. 그러나 Cordelia는 그에게 아부하기를 거부하고 불복종을 가지고 공중 앞에서 그를 모욕하게 된다. Cordelia의 고집에 격노한 Lear는 그녀를 義絶(의절)하고 왕국을 나머지 두 딸에게 배분한다. Cordelia가 아버지에게 대중 앞에서 아첨하기를 거부함에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아버지를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Lear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극의 나머지 행위를 일으키는 비극적 실수이다.
* 해설
〈Lear왕〉은 무의미한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적 음울한 비전을 제시한다. 〈Lear王〉세계에는 정의와 질서와 가치가 무참하게 붕괴된다. 삶은 아무런 목적이 없는 되는 대로이고 폭력적이며 잔인하다. 우주도 자연도 폭력적이다. 神은 인간이 당하는 무의미한 죽음과 고통에 대해 무심한 것처럼 보인다. 죽음에 대한 선악의 기준도 없다. 무심하고 무의미하며 공허하고 파괴적인 세계에서 인물들은 분투하다가 허망하게 죽는다. 〈Lear왕〉의 우주에는 선악의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선에 대한 보상도 없고 악에 대한 징벌도 없다. 우주는 가치의 중립지대인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삶이 의미를 제공하거나 혹은 재생의 가능성을 제공한다고 암시하는 곳은 〈Lear왕〉 어디에도 없다. 극의 비극적 결말은 어떠한 교훈도 제공하지 않는다. 살아남은 소수의 인물들이 그들이 보아온 것에 대해 절망감을 표현할 뿐이다. 극의 결말은 허무주의의 음산한 여운만 남긴다.
〈Lear왕〉의 악인들은 그들이 무자비한 야만성 때문에 특별한 혐오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들의 악에는 선의 요소가 거의 섞여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소름끼치는 악령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난다. 이들 악령들은 무서운 악을 다량으로 생산한다. 악의 인물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번창할 수 있다. 그들은 불행하지 않고 비참과 파멸을 사방으로 퍼뜨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지고 있다.
〈Lear왕〉의 악은 단지 파멸적이다. 이 악은 아무것도 건설하지 않고 오로지 악의 반대자들이 이룩한 바탕 위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악은 또 자기 파괴적이다. 악은 선한 사람 뿐 아니라 악인들도 원한과 증오의 대상으로 한다. 〈Lear왕〉의 악인들은 공동의 급박한 위험에 대항해서 거의 단합할 수가 없다. 위기가 지나가면 즉각 서로의 목에 비수를 들이댄다. 심지어 리어왕의 사악한 딸들은 위기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서로를 죽인다. 마지막으로 이 악인들 5명(Goneirl, Regan, Edmund,Cornwall, Oswald)은 처음 나타난 후 몇 주 지나서 죽는다. 적어도 3명은 젊어서 죽는다. 그들 자신의 악의 폭발이 그들에게 치명적이 된다. 〈Lear왕〉의 사악한 인간들은 반대자들을 파멸로 몰아가면서 자신들도 대부분 죽음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악이 나타나는 세계는 적어도 악에게 우호적이지는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인상은 〈Lear왕〉세계의 동란은 사악한 인간들의 악 때문에, 또는 보다 선한 인물들의 결함이나 실수 때문에 일어난다는 사실에 의해서 확인된다. 선은 넓은 의미에서 세상의 생명과 건강의 원칙인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악은 적어도 최악의 경우에는 독인 것처럼 보인다. 세상은 악에 격렬하게 반응하고 악을 축출하려는 투쟁에서 스스로를 황폐하도록 내몰린다. 비극 〈Lear왕〉은 세상을 요동시키고 황폐화하는 악을 세계가 왜 생성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이 비극에서는 악이 세상을 요동치게 하고 세상은 악을 거부하고 결과적으로 악인은 물론 악에 대항하는 선한 사람도 피를 흘리게 된다. 우주는 선악의 구분 없이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파리를 죽이듯이 사람들을 죽인다. 우주를 창조하고 운행하는 神은 세상이 요동을 치든 말든 구경할 뿐인 것처럼 보인다.
*참고:A.C. Bradley, Shakespearean Tragedy
무의미한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적 음울한 비전
- 朴承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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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2, 09: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