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한 세계에 대한 허무주의적 음울한 비전

FREEDOM 교양영어(149): King Lear/리어왕의 세계는 末世다. 부모 형제 자식들이 서로를 속이고 서로를 죽인다. The audience understands that Lear’s other two daughters, the deceitful Goneril and Reagan, are the antagonists to Lear’s desire to hold onto his power, and the rising action of the play see these two characters actively thwarting their father and hastening his downfall. After dividing his kingdom between Goneril and Reagan Lear continues to demand that his daughters care for him, expecting to retain the privileges of the crown without the responsibilities. Lear has never recognised the role power plays in his family, so he expects his daughters to treat him exactly as they did when he was their king. Instead, Regan and Goneril treat Lear according to his new status as a powerless old man. Lear is deprived not only of the loving care he expected from his daughters, but also of his attendant knights, and finally even the shelter of their roofs. Meanwhile, the subplot reverses the structure of the main plot: while Lear mistakenly believes that power plays no role in his family, Edmund is all too aware of the role power plays in his. Angry that his illegitimate status makes him powerless, Edmund schemes to banish Edgar and take his place as Gloucester’s heir.

In keeping with its mirrored plot and subplot, “King Lear” has two simultaneous climaxes where a protagonist comes in direct conflict with an antagonist. For Lear, this moment comes when he is denied shelter by his daughters and forced to wander in the storm, a reversal of fortune that drives him mad. He tries to make the storm obey him, and the result is that he is deprived of the few comforts he has left.

관중은 Lear의 다른 기만적인 두 딸 Goneril과 Reagan이 Lear의 권력유지 욕망에 反(반)하는 적대자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극에서 일어나는 행위는 이 두 인물이 그들의 아버지를 좌절시키고 전락을 재촉하는 것을 보게 된다. 왕국을 Goneril과 Reagan에게 분배한 후에 Lear는 책임지는 일 없이 제왕(crown)의 특권을 계속 유지하기를 기대하면서 딸들이 그를 돌보아 주기를 계속 요구한다. Lear는 권력이 가정 안에서 하는 역할을 결코 인식한 적이 없기 때문에 딸들이 그가 그들의 왕이었을 때 그들이 하였던 것과 똑같이 그를 대우해 줄 것을 기대한다. Regan과 Goneril은 그의 새로운 지위에 따라 권력이 없는 노인으로서 그를 대우한다. Lear는 딸들로부터 기대하였던 사랑의 보살핌을 박탈당했을 뿐 아니라 그를 수행하는 騎士(기사)들과 결국에는 비바람을 가려줄(of roofs) 거처마저도 박탈당한다. 동시에 부차 줄거리는 本(본) 줄거리의 구조를 역전시킨다: Lear는 권력이 가족 내에서 아무런 역할도 가지지 않는다고 잘못 믿는 반면에 Edmond는 가족 내에서 권력이 하는 역할을 너무나 많이 알아차리고 있다. 庶子(서자)의 지위가 그를 힘이 없도록 만드는 데 화가 난 Edmond는 Edgar를 쫓아내고 Gloucester의 후계자로서의 Edgar의 지위를 빼앗을 음모를 꾸민다.

'Lear王'은 반사(mirrored) 줄거리와 부차 줄거리를 계속 유지함에 있어서 한 주인공이 적대자와 직접 충돌(conflict)하게 되는 두 개의 동시 클라이맥스를 가진다. Lear에게는 딸들에 의해서 거처가 거절당하고 쫓겨나서(denied) 폭풍 속에서 헤매야 하는 이런 순간이 오고 이것은 그를 미치게 하는 운명의 역전이다. 그는 폭풍이 그에게 복종하게 하려고 시도하며 그 결과는 그가 그에게 남아 있는 소수의 안락함도 빼앗긴다는 것이다.

* 해설

2000여년 전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 전에 제자들에게 말세에 나타나는 몇 가지 징조를 예언하셨다: 말세가 되면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시키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고, 사람들이 사람들을 환란에 넘겨 죽일 것이며, 사람들이 서로 미워하겠고, 불법이 성하여 사람의 사랑이 식어질 것이다. 예수는 또 자식과 부모가 서로 대적할 것이라고도 하였다. 자식과 부모가 서로를 살해한다는 말이다.

'King Lear'의 세계도 말세이다. 부모형제 자식들이 서로를 속이고 서로를 죽이려 하고 죽인다. 딸들이 아버지를 죽이고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려고 한다. 형제가 형제를 죽인다. 죽일 수밖에 없게 된다. 선악의 기준도 없어서 죄 있는 자도 죄 없는 자도 죽임을 당한다. 무의미한 죽음이 언제나 일어나고 있다.

오늘날의 세상도 말세라고 하겠다. 기근과 살해가 만연되어 있다. 어디에서나 증오와 약탈이 넘쳐나고 있다. 최선을 다해도 결과는 파멸인 경우가 너무 많다. 최악의 악인이 권세와 부를 누리는 경우도 너무 많다.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무차별적으로 병들고 사고를 당해서 고난을 당하고 목숨을 잃는다. 선에 대한 보상도 거의 없고 악에 대한 징벌도 거의 없다. 자연은 결함이 너무나 많고 우주는 가치 중립인 것 같다. 자연은 죽이기 위해서 생명을 창출한다. '최선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고 차선은 나자말자 죽는 것이다.'라는 Schopenhauer의 狂言(광언)이 떠오른다. 세상은 언제나 말세였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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