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일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읕 구할 생각조차 못한다.
빈곤으로 삶의 한계선상에 이른 사람들은 대개 복지 혜탹조차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부양의무제로 인해 이미 연락도 끊어진 가족이 쥐꼬리만한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도 제외되기 일쑤고, 갑작스런 폐업이나 장애, 질병 등으로 사채까지 끌어쓰는 등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절망한다. 몇번 이런 저런 도움읕 청하다가도 이런저런 복잡한 제도와 조건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세상의 차가운 시선, 공무원의 퉁명스럽고 귀찮은 듯한 태도에 상처받고 위축되기 쉽다.
갑자기 닥친 가난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자존감도 바닥으로 떨어지고 나면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해서 자꾸 비관적이 된다. 그 많던 기부나 자선단체들 다 어디 갔냐 하겠지만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들일수록 누군가에게 도움읕 구할 생각조차 못한다. 그러니 왜 복지 서비스를 신청하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한다면 그건 현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얘기다.
과거 초선 시절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다. 세 모녀의 유일한 생계원이었던 어머니는 넘어져 팔이 부러졌고 싵직했다. 세 모녀는 서로에게 부양의무자가 되어 제대로 기초생활보장조차 받지 못했다. 빚더미에 고통받던 세 모녀는 복지혜택도 받지 못허고 주변에 변변한 도움조차 청할 생각을 못한 채 월세를 못내 죄송하단 쪽지틑 집주인에게 남기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당시 그 사건을 접한 나는 과거 아버지 사업이 부도나고 어머니께서 보험판매원 등으로 최소생계비는 버셨고 자식들도 다들 알바에 나섰지만 아버지 빚까지 갚기엔 부족했다. 한창 어려운 시절 빚 독촉에 시달리던 우리는 여러 번 극단적 생각도 해봤다. 그만큼 죽기보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였다. 그래도 우리 집은 나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자식들이 다 잘 풀려 그나마 희망읕 갖고 버틸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안은 오죽하랴…
송파 세 모녀 사건이 남 일같지 않았던 나는 그 사건 직후 긴급복지지원법 일명 '송파 세 모녀법'을 밭의했다가 당론 채택되어 통과되었다(당시 당론 채택이 되다보니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던 김한길 안첱수 명의로 법안이 통과되어 때로 그들이 자기가 발의하고 통과시킨 것처럼 홍보할 때가 있는데 정말이지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위기 가구가 찾아서 복지 신청을 하지 않더라도 국가가 적극적으로 위기 가구를 발굴할 의무를 부여했고 긴급한 경우에는 최소한의 긴급 지원이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이번 수원 세 모녀 사건읕 보면 긴급복지 지원제도에도 불구하고 사각지대가 여전히 많음읕 앝 수 있다.
가난과 질병의 고통 속에서 돝아가신 수원 세 모녀의 명복읕 빈다. 시장경제 체제에서 자유로운 경쟁이 보장되어야 한다고 믿지만 적어도 생명권과 인간의 존엄성 같은 천부인권이 가난에 의해 훼손되지 않는 국가여야 한다고 믿는다. 갈 길이 멀다. 샅아있는 우리들은, 세 모녀처럼 가난으로 인해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조차 보장되지 않는 국민듵이 생기지 않도톡 최선읕 다해야 하지 않겠나?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과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건
- 이언주(前 국회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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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8-25, 13:5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