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한 빌딩主

“저는 과거에 한 자리 했다고, 그리고 돈 있다고 턱없이 오만한 저런 새끼를 제일 싫어합니다.” 이십여년 전 분당에서 서울로 이사를 했었다. 대로의 빌딩 뒤에 붙은 골목집이었다. 동네에서 그 빌딩 주인이 고약하다는 소문이 나 있었다. 그 빌딩에 붙어 있는 골목을 막아서 사람들이 몇백 미터의 길을 돌아서 대로로 나가기 때문이었다. 자기 땅을 자기가 막아놓았으니 할 말도 없었다. 그런데 이웃이 된 내가 운이 나쁘게 걸려버렸다. 내가 산 집의 기둥 하나가 그의 땅을 침범한 것이다. 어느 날 그가 나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빌딩을 증축해서 같이 공유로 합시다.”
그가 제의했다. 그와 공유로 하는 순간 소수 주주같이 나의 권리는 없어질 게 분명했다. 욕심을 감춘 허울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둥 부분만 저에게 파시면 안될까요?”
내가 제의했다. 이상하게 마주앉아 있는 그에게서 오만이 느껴졌다. 그는 약점을 잡고 나를 압박하는 것 같았다.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그와 엮이면 고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근처 은행 VIP 고객실에서 우연히 그를 지켜본 이웃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그 빌딩 주인 예금액이 워낙 많은 분이라 그런지 VIP실 담당 직원에게 별별 심부름을 시키더라구요. 절절매면서 일을 해 주던 은행 여직원이 나중에는 울상이 돼서 저는 은행원이지 개인비서가 아닙니다라고 말하는 걸 들었어요. 뒤에서 우연히 봤지만 정말 오만하더라구요.”

그런 사람이면 가급적 피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음날 내가 사무실에 없을 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고 직원이 알려주었다. 나는 그냥 가만히 있었다. 이틀 후에 그의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내게 말했다.

“전화 답신도 없다고 하면서 한번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그러세요.”
‘본때를 보여 준다’는 말이 특이했다. 그가 세상이 무서워하던 고위직 검사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나의 속에서 원인 모를 투지가 솟아올랐다.

며칠 후 내가 공직에 있을 때 모셨던 상관이 자기의 사무실에 잠깐 들르라고 했다. 나는 잠시 후 그 사무실로 갔다. 엉뚱하게 앞의 빌딩 주인인 그가 앉아 있었다. 나의 상관이던 분은 그가 선배라고 했다. 나는 상황을 알아챘다. 그는 내가 복종할 전의 상관을 움직여 자기 말을 듣게 하려고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나의 기분을 모르는 전직 상관은 일을 좋게 해결하라고 권유했다. 내가 옆에서 팔짱을 끼고 앉아있는 그를 보면서 전직 상관에게 말했다.

“저는 과거에 한 자리 했다고 그리고 돈 있다고 턱없이 오만한 저런 새끼를 제일 싫어합니다.”

내 말을 듣는 순간 전의 상관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했는지 용수철 같이 튀어나가 사라져 버렸다. 옆에 앉아 있던 그가 얼굴이 벌개져 말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하여튼 당신하고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 마음대로 해.”

나의 그런 과격한 성격이 힘들고 난감한 운명을 만들곤 했다. 오만한 권력자나 부자를 싫어하고 정면으로 부딪치는 성격이 평생 고질이었다.

그 얼마 후 법원에서 소장이 내게 날아왔다. 내 집의 기둥을 철거하고 그 부분을 인도하라는 소송이었다. 그 기둥을 빼면 집 전체가 무너질 상황이었다.

재판중이던 어느 날 나의 사무실로 작달막한 남자가 들어섰다. 앞의 빌딩 사무실을 빌려 행정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있는 사무실의 빌딩주와 소송을 한다는 걸 알고 왔습니다. 그 빌딩주 정말 나쁜 놈입니다. 전에 공직에 있으면서 뭘 했는지 재산이 엄청납니다. 그러면서 탈세도 어마어마해요. 제가 십년치 빌딩의 임대료 탈세 부분만 뽑아봤어요. 그 외에도 여러 비리가 있는 걸 압니다. 자기는 그렇게 많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남에게 고통을 주려는 그 심보를 고쳐주고 싶습니다.”

그는 내게 빌딩 주인의 탈세 자료를 주고 갔다. 그 빌딩의 다른 임차인들도 와서 나를 돕겠다고 했다. 그는 철저하게 인심을 잃은 것 같았다. 임차인들이 법원에 그런 사실들을 알렸다. 재판장 앞에서 그는 원고로 나는 피고로서 재판을 받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나한테 본때를 보여주겠다고 했죠? 그렇게 하십쇼.”

‘망하면 망하리라’는 마음이 내게 있었다. 일이 어떻게 되기를 바라기보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내가 사는 방법이기도 했다. 법은 그의 소유권을 볼 수는 있어도 그의 오만은 보지 못할 것 같았다. 각오했다. 재판이 끝나고 법정 앞 복도를 걷고 있을 때였다. 그가 내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나 엄 변호사와 싸우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그는 한풀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그 후 법원의 판결이 선고됐다. 기둥을 그대로 두라는 내용이었다. 법은 그가 권리를 남용해서 남을 압박하려는 소송을 허락하지 않았다. 이게 뭔가 나중에 곰곰 생각해 봤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에게 그 찌꺼기를 없애주기 위해 불을 통과하게 한다고 했다. 어쩌면 내가 그 불 역할을 맡았는지도 모른다. 나를 포함해서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을 먼지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적은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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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atkat 2022-08-27 오후 5:13

    마음 속으로는 그렇게 하고 싶어도 과감히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저도 그 중 한 명) 무소처럼 두려움 없이 부닥쳐 가는 변호사 님의 기개와 용기가 부럽습니다.

  • 골든타임즈 2022-08-27 오후 4:43

    私有재산 보호가 중요하다. 변호사가 감정을 앞세워 사물을 보면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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