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지키면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모든 게 흐르는 강물같이 지나갑니다. 섭리인데 분노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바드리나트’로 간다>

피고인인 그는 재판을 받으면서도 판사를 무심하게 바라보는 것 같았다. 법정에 끌려온 사람들은 높은 법대 위에서 저승사자 같이 검은 옷을 입고 있는 판사를 무서워한다. 실제의 형벌을 선고하는 그들은 하나님보다 더 공포감을 주는 존재다. 그런데 그가 판사를 대하는 태도는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무시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마치 예수가 빌라도를 보듯 그런 태도라고 할까. 그렇다고 그가 민주화 투쟁을 하는 정치범 같은 존재도 아니었다. 그는 단체의 돈을 횡령한 사실로 기소된 파렴치범이었다. 검사도 그를 아주 건방진 인간으로 본 것 같았다. 그의 수사 내용을 보면 검사 앞에서 벌벌 떨지 않았다는 괘씸죄가 적용된 것 같았다.

그는 죄를 짓지 않았다. 오랫동안 변호사를 해 온 직감이었다. 그는 전혀 잘못했다는 의식이 없었다. 개결한 자존심을 가진 그는 누명과 오해 앞에서 철저히 침묵했다. 그가 속한 단체의 회원들이 그의 횡령 보도를 보고는 그를 엄벌해 달라는 진정서를 검찰과 법원에 제출했다. 그가 소설가협회의 회장이었던 정을병 선생이었다.

그는 단 한 사람의 회원도 면회를 오지 않는 감옥에서 의연히 버티고 있었다. 나는 그가 쓴 영성(靈性) 소설 ‘우리는 바드리나트로 간다’를 읽었다. 그는 오랜 세월 인간의 내면을 탐구한 것 같았다. 감옥으로 찾아간 나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래 전부터 내면 깊이 들어가는 명상을 하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세상사에 대해 무심한 상태가 되려고 했죠. 지금의 이 상황에도 무심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모든 게 흐르는 강물같이 지나갑니다. 섭리인데 분노하거나 슬퍼할 필요가 없어요.”

그의 시선은 세상 밖을 향해 있는 것 같았다. 몸의 모든 지체는 각자 자기의 용도가 있듯이 사람들도 역할이 다르다. 변호사인 나는 진실을 알아보았다. 그의 밑에 있던 사무직원 두 명이 공금을 횡령해 차도 사고 아파트도 청약받은 것 같았다. 회장이었던 그는 내부 살림은 직원들에게 맡기고 작가들의 복지를 위해 밖으로 나돌기도 바빴던 것 같았다. 이상한 건 사실이 왜곡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검사와 진짜 횡령범 사이의 거래가 있었던 것 같았다. 검사는 진짜 횡령을 한 사무 직원들이 모든 책임을 회장에게 넘기도록 유도했다. 사무 직원들은 회장이었던 그가 일을 할 때 만나는 사람들과 식사를 하고 교통비로 쓴 돈들을 전부 횡령금으로 진술을 했다. 그렇게 진술한 대가로 자기들의 범죄 사실을 축소하는 거래를 한 것 같았다. 검사의 입장에서는 피라미보다 거물급을 기소하는 게 공명심을 충족시키기에 맞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검사 앞에서 뻣뻣했다. 그렇게 그는 법의 제단에 번제물로 바쳐졌다. 그는 감옥에서 변호사인 내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침묵을 지키면 저절로 해결될 겁니다. 예수도 유다를 데리고 다녔고 간디도 누명을 쓰고 오해를 받으면서 아무 소리 하지 않았습니다. 남의 평가나 판단에 연연할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독특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상의 경계를 넘어선 구름 위의 인물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냥 하는 소리라면 관념의 유희라고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직접 몸으로 법의 십자가를 경험한 사람이었다. 오일육 혁명 후 그는 강제노동 현장에 직접 잠입해 그 체험을 하면서 고발 소설을 썼었다. 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그는 보안사령부에 끌려가 독한 고문을 당하고 간첩 누명을 쓴 채 징역을 살았었다. 한번 불에 덴 경험을 한 사람은 붉은 색만 봐도 공포에 떤다. 그런데도 그는 감옥의 삶을 그에게 주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본질이 궁금해서 물었다.

“문학을 하신다고 하면서 그 대가로 평생 가난과 투옥을 스스로 맞아들이셨습니다. 그 문학에서 어떤 걸 얻으셨습니까?”

“신학대학 삼학년 때부터 하나님을 떠나서 문학을 우상으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몸으로 고통으로 글을 써 왔습니다. 나름대로 많이 썼는데도 아직 진리를 얻지 못했어요. 문학으로는 구원을 받지 못한 거죠.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써왔던 글들은 모두 휴지 조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감옥에 와서야 조금 진전이 있는 것 같다고 할까. 깨달음이 있고 그걸 바탕으로 글을 써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그는 석방이 된 후 칠십대 중반의 나이에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 소설 한 편을 썼다. 그는 내게 이제야 단편소설 하나를 처음으로 완성했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세상은 그의 소설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얼마 후 저세상으로 건너갔다. 그게 소설가 정을병 선생과 변호사의 짧은 인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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