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르바초프를 사로잡은 고려인과 한국

초급 당 간부 시절, 고려인들의 근면성에서 개혁개방 성공을 확신했다. 냉전 종식의 주역 고르바초프의 상대는 레이건이다. 레이건이 공산주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런 확고한 인식은 젊은 시절 헐리우드 공산주의자들과 대결에서 얻은 것이다.

소련 개혁의 주역 고르바초프 역시 젊은 시절 초급 당 간부로 있을 때의 경험으로 가능하였다. 개혁의 정당성으로 그를 사로잡은 이들이 고려인들이었다.

스타브로폴 지구당 서기 시절이다. 당 사업에서 가장 골칫거리가 농업 문제였다. 사실 공산 체제로는 풀 수 없는 것이 농업이다. 그런데 그 농업 문제를 해결한 경험을 한 것이다.

지역 고려인들이 찾아와 양파를 1 정보당 45톤 생산은 국가에 바치고 그 이상은 자유 처분을 요구하였다. 타 지역에서 양파를 수입해야 하는 고질적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과감히 승낙하였다. 자유 처분은 상극이던 이념 시절에 승낙한 자체가 벌써 개혁 기질의 당 간부였던 것을 말해준다.

고르바초프의 승낙을 받은 고려인들은 밭에 천막을 쳐 놓고 숙식을 하면서 밤낮없이 일했다. 하는 둥 마는 둥 하는 집단 농민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당연히 큰 수확을 내고, 그만큼 소득을 챙기게 되었다. 이것을 부러워해 지역 러시아 농민들이 참여하고 싶어 왔을 정도이다. 하지만 일하는 강도에 손사래 치며 일주일도 못 버티고 떠나갔다. 고르바초프는 이때 고려인들의 근면성에 감탄했다.

1985년 기적적으로 소련의 통치자가 되었다. 공산권 라이벌인 중국 개혁 개방의 혁혁한 성과를 모를 수 없다. 특히 공산권 불치의 병, 식량문제를 해결한 것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였다. 1978년 개혁 개방을 선언한 등소평 정책으로 2억 톤밖에 생산 못하던 식량을 4억 톤으로 증산한 것이다.

식량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된 중국에 비해 미국에서 식량을 수입하던 소련. 중국의 성과는 소련에게 조급함을 안겨주었다. 고르바초프가 통치자가 되자 즉시 개혁개방을 선언한다. 초급 당 간부 시절의 고려인들에게서 받은 확신이었다.

차후 계속 확신을 준 것은 그 고려인들의 조국, 한국의 발전상이다. 등소평도 박정희 모델을 잡은 것처럼 고르바초프도 그랬다. 아세아의 네 마리 용 중 용다운 것은 한국인 것이다.

한편 고려인의 조국 중 북한의 낙후성은 소련 체제의 반성을 더욱 촉구하였을 뿐이다. 88 서울 올림픽을 개최할 만큼의 한국을 의심 없이 인정하였다. 그 의지는 김일성의 간곡한 불참 요구를 훨씬 뛰어넘었다.

북한 말대로 헐벗고 굶주린 한국, 쿠바를 내놓고 공산 국가들이 실제로 와보니 헐벗은 것은 자신들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이 확인은 1년 후 공산권 붕괴의 시작으로 이어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냉전 종식, 공산권 붕괴에는 고려인, 한국이 보이지 않은 주인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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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의메아리 2022-09-03 오전 9:08

    그누가 또 어떤놈이든 고르비고 엘친이고 또 푸틴까지 찬양하는 개자식들이 있든데 놈들은 잠시잠간 잠고대하다가 뒤안길로 사라졌다 고르비가 잠시집권하든 시대가 벌서 50년이지나가는데 러시아 아니 쏘련이 뭐 달라졌나 푸틴개자식 거의같은 민족인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고 학교도 아파트도 폭격하고 지금 국제사화로부터 몰리는 쏘련 아니 푸틴 무얼보고 러시아의 한때잠시 개소리하다 쫏겨난 그래도 명은길어 90여세로 엇그제 저승에갔다며 이땅의얼간이들아 칭송할것을 칭송해야지 겨우 고르비냐 알간이들아 정신차리라 이글은 이민복단장님에게 드리는글이아닙니다 88세를살아가는이사람 이 단장님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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