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력·기상·도전정신이 실종된 나라

지금도 한번씩 밤중에 공동묘지에 다녀오곤 한다. 걱정거리가 나를 괴롭히면 공동묘지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는다. 이 글은 부끄러운 개인사(事)입니다 이걸 글이랍시고 써놓고 여기에 올릴까 말까 며칠 동안 망설이다가 멋쩍지마는 한번 올려 봅니다. 너무 나무라지 않으시면 다행이겠습니다. 꾸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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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갑제 선생의 말씀을 통해서 배운 귀중한 말이다. “역경을 이기는 사람이 100이라면 풍요를 이기는 사람은 하나이다.”는 칼라일의 명언이 있듯이, 풍요한 지금 세대는 가난했던 우리 세대에 비해 담력이 부족하다. 부족한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부족한 것을 채우려 하지 않으니 왜 안타깝지 않겠나. 담력뿐만이 아니다. 기상(氣像)도 씩씩하달 수 없다. 그래선지 남의 씩씩한 기상을 잘 믿지도 않고 도리어 이상하게 본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마산 앞바다를 ‘마산만’이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요즘 세대가 부르는 이름이고 우리 세대는 ‘합포만’이라 불렀다. 이 마산만을 가운데로 해서 이쪽은 마산이고 저쪽은 창원이다. 저쪽은 매립을 조금만 했지만 이쪽은 엄청나게 매립하여 마산만이 우리 어릴 때보다 3분의 2 정도로 좁아진 느낌이다.

우리가 어릴 때는 마산 선창가에서 헤엄을 치고 놀았다. 마산에서 제일 큰 배가 '천신호'라는 연안 여객선이었는데 그 배가 드나들면 큰 파도를 일으킨다. 물 밖에서 쉬다가도 그 배가 들어오거나 나갈 때 거기에 때맞추어 바다에 뛰어들기도 했다 파도를 타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헤엄치고 놀다가 “야. 우리 구실 포도밭에 가자”고 한다. 그러면 아이들이 우 몰려서 마산만을 헤엄쳐 건너 구실 포도밭(지금의 두산중공업 자리)에서 포도를 먹고 놀다가 헤엄쳐 돌아온다. 이 마산만의 폭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마산만이 확 줄어든 지금도 두산중공업이 점으로 보인다.

청년기가 되어서도 그렇게 마산만을 헤엄쳐 건넜다. 이 사실을 우리 세대 사람에게 이야기하면 상대가 이렇게 말한다. “야 임마. 니만 그랬나? 나도 그랬다”고 말한다. 비록 그렇게 헤엄쳐 건너지 않았던 사람도 마산만을 헤엄쳐 건너곤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 우리 세대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 수긍을 한다. 그러나 지금 세대 사람들은 “에이. 거짓말하지 마소” 하는 눈치들이다. 심지어는 내 자식들도 안 믿는 것 같다. 內子와 연애할 때 내자가, 내가 헤엄쳐 건너는 것을 다 보았고 본대로 말해 주어도 자식들은 “그런 짓을 왜 했느냐?”는 눈치를 보인다.

이렇게 이 시대 사람들은 우리 시대 사람들보다 담력이 태부족하고, 그 담력을 기르려 하지도 않고, 씩씩한 기상도 모자라고, 도전 정신도 없어 보인다 .이 개체들이 모여서 국가를 이룰 것이니 국가도 강건하지 못할 것은 뻔하.다 풍요가 개인을. 국민을. 국가를 이렇게 만들어 버렸다. 안타깝고 불안하다.

2. 우리가 중학교 2학년일 때 성함이 윤충민이라는 서울 출신 체육 선생님이 전근왔다. 그분이 시시때때로 “담력을 키워라. 그러려면 등산을 하고 밤에 공동묘지를 다녀와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 내가 “에이. 선생님. 밤에 공동묘지 가는 것을 어찌 담력 키우기라 할 수 있겠습니까?”라 말했다. 선생님이 “임마. 너네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내 대답이 “화장막 아랫 동네입니다” 그러자 선생님이 “응. 그래. 너에게는 담력 키우기가 아닐 수 있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죽은 사람 굽는 것을 수도 없이 보면서 컸다. 구경거리가 귀하던 시절에 심심해서 사람 굽는 것이나 보려고 화장막에 가면 火夫(시신을 태우는 사람을 화부라 불렀다)가 적적하던 차에 우리가 오니 반가이 맞아주곤 했다. 그리고 “부자가 오래 탄다. 아마 기름기가 많아서일 게다”는 말도 해주었다. 그분의 집은 화장막에 딱 붙어있는 관사다. 말하자면 공동묘지 한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그에게 공동묘지가 담력 키우는 장소일 수는 없다.

이 화장막은 일제 시대에 일본인이 만든 것이다. 80년대 말에 이 화장장을 들어내고 그 자리에 마산합포고등학교를 세웠다. 물론 화장막 주변은 일본인의 공동묘지였고 그 너머에는 조선인의 공동묘지였다. 요즘의 공원묘지처럼 잘 꾸며진 곳이었는데 넓은 잔디 광장도 있고 예쁜 석물들도 여럿 있었으며 마산만이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곳이다. 그러니 갈 데 없던 시절에, 청춘 남녀들이 밤낮없이 연애하는 곳이 아니 될 수가 없었다. 저런 사람들에게 공동묘지가 담력 키울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면 저이들은 “아니다 데이트하는 곳이다”며 픽 웃고 말 것이다. 이곳이 아름답기에 시청도 근린공원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자란 덕분에 무학산은 지금도 한번씩 밤중에 공동묘지에 다녀오곤 한다. 그리고 걱정거리가 나를 괴롭히면 공동묘지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묵는다. 이튿날 아침. 마산만을 붉게 물들이며 떠오르는 태양을 마주하고 앉아 명상을 한다 그리고 사도 복싱(Shadow Boxing)을 한번 하고 내려온다. 下山하는 발걸음이 그렇게 가벼울 수 없다. 걱정거리가 소낙비처럼 종적부지(蹤跡不知)로 사라진 것이다.

“담력을 키워라. 그러려면 등산을 하고 밤중에 공동묘지에 다녀오라”고 가르치던 체육 선생님이 통영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찾아뵈리라 마음 먹었지만 잘 안 가진다. 가겠다는 동창생이 없어서이다. 추석에는 나 혼자라도 가리라. 이런 선생님이 떠난 자리에 노동자로 자처하는 교사들이 들어섰다. 이들이 학생에게 두들겨 맞기도 한다. 이럴진대 어찌 학생들에게 담력과 기상을 기르라 말할 수 있겠는가. 국가나 개인이나 좋은 것은 평생 간직해야 하는데, 우리도 간직하고 있는지 자주 自問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풍요를 가져다 준 담력과 기상과 도전 정신을 내버리고 말았다. 이 좋은 풍요도 잃을 것만 같아 안타깝고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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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idn 2022-09-14 오후 5:42

    담력, 기백, 도전정신이 실종되고
    부랄이 업서저뿟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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