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이북사람 같았던 김동길 교수

녹슬다 죽느니 닳아 죽는다는 그분이 다 닳아 가셨다. 일제시기 경평 축구경기는 평양팀이 항상 이겼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만큼 북쪽 사람들이 축구라는 대명사로 모든 면에서 강했다는 것이다. 지금은 정반대로 되었지만 골격도 컸다고 한다.

탈북 후 모스크바 망명 시절이다(1992-1994). 소련 유학 출신 반 김일성 인사였던 허진 선생의 집에 은거하고 있을 때 남한 유지를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은 특유한 전라도 억양으로 <학계, 교계, 군계, 재계, 정계 전부다 니북 사람들이야요>. 남한의 모든 분야에서 이북 출신의 역활이 지대했다는 뜻이다.

그 니북 사람의 대표적 얼굴이 김동길 교수로 느꼈다. 평안도 박치기 같은 직설과 박달나무 같은 의지가 유머와 함께 우러나왔다. 한 마디로 학자이면서도 조폭 두목 저리 가라 할 정도로 상남자다웠다.

한번 만나봐도 영광인데 여러 번 만났고 자택에도 초대되었다. 그 중 인상깊은 것은 제3회 <이승만 상>(1회 상은 조갑제)을 받았을 때이다. 또 그분의 저택에서 냉면초대를 받았을 때이다. 악수를 하며 으쓱하신 신사적 제스처 - 사실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너무 멋지셨다. 녹슬다 죽느니 닳아 죽는다는 그분이 다 닳아 가셨다. 그 정신의 바턴을 이어받아 나도 다 닳도록 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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