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놈은 개를 꾸짖지 못한다

소리쳐 꾸짖었다가는 사람들이 잠을 깨서 나와 볼 텐데 어떻게 꾸짖겠는가. <그들에게 배달사고는 낙전에 불과했다>

대장동 사건이라고 말하면 듣는 이가 성을 왈칵 낸다. 대장동 사건이라 안 하고 1조 원을 빼먹었다고 말하면 성을 내다 못해 부들부들 떤다. 자꾸 들으면 암 걸릴 것 같으니 더 말하지 말라고 하는 이도 있다. 이 분노의 아수라판에서도 웃음을 참지 못할 일이 터졌다. 그러나 시작에 불과하다.

대장동 분양대행업체 대표가 김용과 정진상 또는 이재명에게(?) 갖다주라며 남욱에게 12억을 맡겼더니 남욱이 4억을 꿀꺽하고 8억만 김만배에게 주면서 전달하라 했다. 김만배는 4억4천만 원을 잘라먹고 3억6천만 원만을 유동규에게 주었다. 유동규는 2억1천만 원을 떼어놓고 1억5천만 원만 갖다주되, 일억은 김용에게, 5천만 원은 정진상에게 주었다. 12억이 1억5천으로 마사지된 것이다. 그러면 김용과 정진상은 1억5천만 원을 고스란히 갖다 바쳤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김용과 정진상 또는 이재명이가, 업자가 1억5천만 원만을 주었다고 생각했을까? 그랬다가는 행사머리 더러운 이재명이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1억5천만 원만을 주었다고는 생각 안 할 것이다. 그럼 왜 배달사고를 알고도 눈 감아 주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너덧 개만 논해 보겠다.

첫째. 도둑놈은 개를 꾸짖지 못한다. 개가 아무리 짖어도 소리쳐 꾸짖었다가는 사람들이 잠을 깨서 나와 볼 텐데 어떻게 꾸짖겠는가. 그래서 '도둑놈 개 꾸짖듯'이란 속담도 생겼을 터이다. 배달사고꾼에게 꾸지람을 했다가는 그들이 에라이 깽판을 치면 산통이 다 깨질 텐데 어떻게 꾸짖겠는가. 또 김용과 정진상이 이재명과 같이 일을 안 할 것이라면 모르되 그렇지 않은 다음에야 배달사고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배달사고를 내는 돈은 다만 떡밥일 뿐이다. 떡밥은 너희들이나 나눠 먹고 대신에 시키는 일을 잘하라는 미끼인 것이다. 그래서 일억오천만 원이라도 갖다주니까 속으로 “허. 기특한 놈들. 다 안 먹고 남겨왔네” 했을 듯하다. 그들에게는 ‘배달사고꾼’ 모르게 챙기는 더 큰 무엇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을 감추기 위해서 작은 배달사고는 있어야만 할 양념이 된 것 같다. 반면에 배달사고꾼은 자기들의 죄가 있으니 또 그 죄를 덮기 위해서 불철주야 충성경쟁을 했을 것이다.

셋째, 김용과 정진상 또는 이재명이가 배달사고를 막으려 했다면 몇 손을 거치는 단계를 두지 않고, 직거래를 하거나 두어 단계만을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잡한 유통구조를 굳이 두었다. 이는 배달사고를 묵인한 것이기도 하고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논 것이기도 하다.

넷째. 김용과 정진상 혹은 이재명에게 떨어진 돈은 다 해야 일억오천만 원이다. 이 정도 돈에 입이 쫙 벌어지는 사람들일까. 그 정도 사람이었다면 그 꿀맛인 경기도 지사 자리를 내놓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라를 통째로 들어먹을 생각도 안 했을 것이고, 대통령 선거에도 안 나왔을 것이다.

다섯째, 남욱. 김만배. 유동규가 돈을 잘라먹은 것은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다. 그리고 90%나 간 크게 잘라먹은 것은 눈먼 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먹어봐야 배탈이 안 난다는 확신이 섰기에 할 수 있는 짓이다. 돈을 고스란히 운반해 주고 공범이 되느니 잘라먹고 공범이 되자는 계산도 섰을 것이다. 법자도 이 계산은 한다.

땅 속에 묻힌 문화재도 하나가 발견되면 따라서 줄줄이 발견된다. 배달사고꾼들이 배달사고를 낸 것도 파면 팔수록 더 나올 것이다. 그러고도 유동규는 의리를 기대했던 듯하다. 그는 일 년 넘게 감옥을 겪고서야 비로소 “이 세상에 의리. 그런 것은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배달사고를 내고도 의리를 논했으니 더 큰 무엇이 있다는 말이다.

‘토사구팽’이란 말이 있듯이 의리란 애초에 피지배층에만 존재하는 언어이다. 이재명이도 토사구팽하는 지배층의 위치이니 의리는 자기의 언어가 아니었던 것이다. 자기 수하가 조사를 받거나 구속되면 천지사방에 대놓고 “나는 그를 모른다”고 외쳤다.

유동규는 신학을 공부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범죄 세계에는 의리란 없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다른 일당들은 못 깨닫고 있다. 모르지 속으론 이미 깨닫고도 안 깨달은 척하는 건지. 그렇다면 그들이야말로 뛰는 자 위의 나는 자이다.

“거지는 논두렁 밑에 있어도 웃음이 있다”고 했다. 가난하더라도 마음의 화평이 낫다는 말이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가르친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너희 것이다.” 신학을 공부한 유동규가 범죄에는 의리가 없다는 것을 이제라도 깨달았으니 그는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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