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은 묘지였다”

말없이 엎드려 있는 땅을 좋니 나쁘니 하는 게 말이나 되나? 다만 사람이 좋고 나쁠 뿐이다. <(유머) 굿이나 한 번 해주고 치아라>

지금은 과학이 없는 시대라고들 한다. 과학이 어떠한 놀라운 발명을 해도 그닥 놀라지 않는 시대이니 이런 역설이 나오고도 남을 것이다. 이 시대에 조선일보는 산의 기운을 말하고, 길지를 말하고, 명당 자리를 논하는 칼럼을 지난 주에 또 실었었다. 산의 기운이 있다면, 백두산 정기를 타고났다는 김정은은 어째서 트럼프가 하노이로 오라 하니 하노이에 쪼르르 달려가며, 어째서 트럼프의 말 한 마디에 왔던 만리 길을, 빈 손으로 터벅터벅 되돌아가나 말이다.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길지가 어디 있으며 안 좋은 터가 어디 있겠나.

이태원 압사 사고가 터지자 오만 잡소리가 다 나온다. 하도 그러니 죄다 좌파가 만들고 양산하는 유언비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중에서 압권은 “이태원은 묘지였다”는 주장이다. 묘지였던 데라서 사고가 났다는 말인가. 묘지 위에 집을 짓지 않은 데가 몇 군데나 되겠나. 옛사람의 무덤 위에 지금의 사람이 밭을 간다고 했다(古人塚上 今人耕田).

묘지라서 좋지 않은 터이고 그래서 압사사고가 터진 것이라면 묘지 위에 학교를 짓고 거기서 배우는 학생들은 무어란 말인가? 마산합포고등학교는, 일정 시대에 지어져서 80년대까지 쓰였던 마산 화장막 자리에 세워졌다. 운동장은 공동묘지였다. 그 운동장에서 여러 체육을 하고 각종 경기가 열리지만 사고로 죽은 학생은 한 명도 없다. 같은 묘지였는데 이태원에는 사고가 있고 합포고등학교에는 없다. 말없이 엎드려 있는 땅을 좋니 나쁘니 하는 게 말이나 되나? 다만 사람이 좋고 나쁠 뿐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이태원 사고에 감정을 넣어서 보면 묘지가 보이고, 이념을 넣어서 보면 미군 주둔지가 보이고, 풍수를 넣어서 보면 안 좋은 터가 보인다. 그리고 국과수가 사고 원인조사를 하는데 부질없다. 거기가 묘지라서 안 좋은 터이니 일어날 사고가 일어난 것이고, 시집 못 가고 죽은 처녀귀신이 화풀이를 한 것일 뿐이다. 차라리 굿이나 한 번 해 줘라. 산의 정기를 말하고, 산의 기운을 말하고, 묘지 탓을 하고, 미군 주둔지 탓을 하는 저자들에게 굿만큼 좋은 게 또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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