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당(郡黨)지도원 승급 후 첫 과업은 '시체 치우기'…무덤 푯말의 글자들이 빗물에 사라져갔다.
뭘로 위로가 될까(이태원 압사자 장례식장에서)
탈북자는 국회에도, 권투 세계챔피언도, 종합격투기에도, 오징어게임 드라마를 비롯한 각 분야에 들어있을 만큼 이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자리잡았다. 이번 압사 사고에도 탈북자 자녀가 들어있다.
다 커서 이제 막 꽃을 피려는 나이들이다. 그래서인지 영정사진 주변이 화려한 꽃 천지이다. 또 분향소에서는 이쁜 꽃 한 송이를 정중히 놓고 깊은 절을 한다. 하지만 무슨 말로, 무슨 돈으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탈북자에게는 여기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위로 아닌 위로가 있다.
인민군 특수부대 10년간 고생은 공산대학 졸업자로 취급하여 준다. 그 혜택으로 제대 후 모두 다 부러워하는 군당 지도원으로 승급했다. 하지만 첫 과업은 시체 치우는 것이었다. 고난의 행군 때로서 굶어 죽고 병들어 죽은 이들이 수두룩했던 것이다. 북한의 교통은 철도가 중심인데 거기다 세 철로가 교차하는 고원군이다. 언제나 범람하는 역전인데 그만큼 시체도 많아진다.
시체 치우는 인부들은 노숙자나 꽃제비들이다. 이들은 솔선 나서려 한다. 밥에다가 술까지 대접 받기 때문이다. 술 공급은 맨정신으로 치우기 힘든 끔찍한 시체가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술도 어디서 빼먹고 물타기를 했는지 맹물 같다고 호소한다. 굶주려 사람도 잡아먹는 판에 술에 물타기는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군대 성격대로 참지 못해 쌍욕이 저절로 터져 나왔다. 그 쌍욕은 추후 탈북 동기가 되기도 했다.
시체 운반은 소 달구지 있으면 상급이고 손수레이다. 가마니로 시체 덮은 것은 상급이고 대부분 죽은 그대로 담아 묻는다. 그래도 증명서가 있는 사자는 판자 푯말에 이름 석자와 생년월일을 적어 꽂아 놓았다. 증명서가 없거나 청소년 죽은 것은 푯말도 없다.
가을 비가 푸석푸석 내린다. 연이은 시체들을 묻고자 다시 가보니 이미 쓴 무덤의 푯말 글자들이 빗물에 피어서 알아 볼 수 없게 되어 있었다. 한 인생이 저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구나?!
지금까지 무덤덤했는데 저 푯말을 보니 내면에 큰 충격이 일어난다. 이런 세상을 지키려 10년을 보냈단 말인가?! 야! 정말 못해 먹겠다! 이놈의 세상! 콱 무너져라! 나는 간다.
"이놈의 세상! 콱 무너져라! 나는 간다"
-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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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11-01, 21:53












저건 거짓말이겠지, 시체를 명찰도 없이 묻는다니... 그것도 굶어죽는다니....굶어가면서
죽어 가는것 제일 처참한것이다. 6.25전쟁중에도 먹을것 , 참으로 귀했지만 병으로 죽는 사람 봤지만 굶어죽는 사람 보지 못했다. 그런데 세상에 부럼 없어라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도 굶어 죽는다니, 김가 삼대는 결코 용서 할수 없는 악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