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앞에서도 겸손을 모르는 우리 국회

‘이태원 참사 원인 조사특위’를 ‘정쟁을 넘어설 의원들’과 안전, 건축, 방재, 행정, 구급의학 전문가 중심으로 꾸려야. 11월 9일 야 3당이 제출한 국정조사 요구서는 "참사 근본적 배경으로는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따른 경호·경비인력 과다 소요, 당일 마약범죄 단속 계획에 따른 질서유지 업무 소홀 등이 지적된다"며 당당하게 답정너 고백을 했습니다. 안전관리에 대한 기본지식도 전혀 없는 사람들이 참사 원인을 미리 정해놓고 정쟁도구로 활용하겠다는 선언입니다.

젊은 목숨들이 그렇게 스러져갔는데, 우리 안의 무엇이 문제였는지 근본적으로 들여다보고 고칠 의무는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욕하면서 보는 정치극장’을 개설해놓고, 세월호 이후 8년 동안 각종 음모론으로 나라를 찢어놓은 조사쇼를 다시 길게 늘여갈까봐 참 걱정입니다.

제대로 된 국회였다면 진상조사와 재발방지 대책을 국민이 믿고 맡겼겠지만, 이번 국정조사 요구서의 오만하기 짝이 없는 답정너 문구만 봐도 기대할 것은 없어 보입니다. 그렇다면 악다구니 정치극장을 만들어 뭘 하던, 지금 공동체로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하는 곳도 있어야 합니다.

지난 며칠, 동아, 중앙, 한겨레 등 여러 매체가 일본과 독일 등 대규모 압사사고 이후 고통스럽게 문제점을 파악해 제도를 개선한 내용을 실었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DJ 폴리스도 20년 전 효고현 압사사고 이후 전문가 조사와 제도개선 과정에서 고안된 장치라 합니다.

사고당일 경찰이나 소방, 관련 공무원이 주어진 법규와 절차를 따르지 않은 것은 수사와 처벌의 대상이 돼야 하지만, 기존의 법규와 절차가 시대 변화와 국민 욕구를 어떻게 놓쳤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당일 대응의 문제점은 극히 일부일 뿐 재발방지와 별 관련이 없으며, 정쟁화되는 순간 사고 예방은 물건너간다는 공통 교훈들이 보입니다.

우리나라는 시대가 변하면서 ‘혼잡관리’가 얼마나 국민 안전에서 중요해졌는지 인식하지 못했고, 각종 제도와 절차도 진공상태였습니다. 계절마다 공무원들은 떼를 지어 해외로 연수를 다녔지만, 안전문제에 몰입해 고민할 인력도 없었고, 공직사회 전반에서 국민안전에 대한 우선순위가 낮았습니다.

지금도 출근길 주요 지하철역은 매일매일이 이태원 참사를 겨우 요행으로 피하고 있지만, 어떻게 돈과 시간을 써 대비하고 국민의 안전의식을 높일지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습니다. 겨우 몇몇 언론만이 ‘이제 제발 좀 들여다보자’고 목놓아 외칠 뿐입니다.

참사의 1차적 책임이 행정부에 있는 이상, 국회가 주체가 돼 문제를 파악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호통쇼로 범인을 이리저리 지목하고 나라를 찢어놓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놔서는 안됩니다. 국회의장 직속의 ‘이태원 참사 원인 조사특위’를 ‘정쟁을 넘어설 의원들’과 안전, 건축, 방재, 행정, 구급의학 전문가 중심으로 꾸릴 것을 절박하게 요구합니다.

일본은 압사 참사 후 11일 후에 전문가 위원회를 꾸려 6개월간 정치로부터 독립적인 조사를 통해 보고서를 만들어냈습니다. 그게 이후 20년간 최고 수준의 인파관리를 가능하게 한 상세 매뉴얼의 기초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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