崔틀러(崔秉烈+히틀러)에 대한 한 가지 추억

순간 판단 빠르고 효율 중시 1979년, 필자가 朝鮮日報(조선일보) 사회부에서 동대문경찰서 라인(동대문, 청량리, 태릉경찰서, 서울지방검찰청 북부지청)을 출입할 때의 일이다. 어느 날 점심 무렵, 회사에서 찾는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朴正熙 대통령의 지시로 하루아침에 경찰서 기자실이 없어졌다. 기자들이 이 방 저 방 차지하며 업무를 방해(?)하니까 경찰서에서 간부숙직실을 임시 기자실로 쓰게 했다.) 콜백했더니 崔틀러(崔秉烈+히틀러)가 흥분된 목소리로 물어왔다.
“나 부장인데, 중앙일보 봤나?”
“아직 신문이 안왔습니다.”
“중앙일보 맨 하단에 이만저만한 1단짜리 기사가 실렸는데, 보충 취재해서 들어와 쓰라우.”
내용인즉, 태릉경찰서 관내에서 출근길의 만원 시내버스 운전사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순간, 누군가 브레이크를 밟아 버스를 세움으로써 위험을 모면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부장이 시경캡에게, 시경캡이 경찰기자에게 지시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부장은 효율성을 중시한 듯,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 시경캡이던 徐淸源(서청원) 선배에게 보고하고 취재에 들어갔다. 버스기사가 모셔진 장례식장에 가서 안내양에게 자세한 전말을 들었다. 본네트에 앉아 있던 중위 계급의 군인이 브레이크를 밟았다는 것이었다. 왼쪽 어깨 동그라미 견장 속에 ‘육사’라는 마크가 찍혀 있었다고 했다. 필자는 국방부 출입하는 鄭運成(정운성) 선배의 도움으로 육군사관학교에 찾아가 교관으로 있는 주인공을 찾아냈고, 간단한 인터뷰를 마친후 歸社(귀사)했다.
시경 캡의 도움을 받아 “아찔한 순간이었다”를 리드로 하는 기사가 작성됐고, 다음날 아침 사회면 톱을 장식했다. 육사교관 인터뷰는 인물사진과 함께 배꼽기사로 들어갔다. 특종은 아니었지만, 어떤 특종이 이보다 더 기쁠까 싶었다.
이건 순전히 崔틀러의 빠른 판단 덕분이었다. 그 뒤 필자는 그가 편집국장이었을 때 ‘誤報(오보) 기자’라는 말도 들었고, 경제부에서 다른 부서로 쫓겨 가기도 했다. 그와 얽힌 이야기를 다 쓰려면 원고지 수십 장이 필요하다. 2001년 필자가 月刊朝鮮(월간조선)에서 일할 때, 趙甲濟(조갑제) 대표의 지시로 ‘최병렬과 서청원’이라는 제목으로 그 중 일부 쓴 적이 있다.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가 일어나자, 서울시장에 취임한 그는 시청 1진 출입기자이던 필자에게 깍듯이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2일 별세한 그분의 명복을 빈다.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