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륜아도 착한 사람으로 변할 수 있나?

극강(極强)의 후회로 인간이 변한다, 윤리와 인간을 알아 참회하고 새로이 태어난다면 남다른 정인군자(正人君子)가 될 수 있다. <이재명도 쟝발장이 될 수 있으려나>

“내 할 말을 사돈이 한다”는 말은 들었으되 이재명이가 ‘패륜’을 들먹일 줄은 몰랐다. 또 “먼저 인간이 되어라”는 말도 했다. 여기에 이르면 말문이 막힌다. 타인을 향해 인간이 되라 말함은 자기는 인간이 돼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인가? 그가 형수를 뭐 어찌하겠다 했던 말은 차마 맨정신으론 들을 수 없었고 놀란 세상이 그를 ‘찢재명’이라 부르고 있다. 그럼에도 형수에게 용서를 구했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이보다 더한 ‘패륜’이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도리어 윤리를 들어 남을 꾸짖었다. 이를 그냥 놔둔다면 이재명식의 ‘패륜’과 ‘인간’이 표준 강상(綱常)이 될 것이다. 이에 조잡한 글이나마 써서 꾸짖는다. 문사에 능하지 못하다는 것으로 사양할 일이 아닌 것이다.

“도둑이 달릴까 했더니 우뚝 선다”는 속담이 있다. 이재명이가 지금 딱 그 쪼다. 패륜이란 말 앞에서 고개를 못 들어야 마땅한 사람이 도리어 남에게 패륜이라 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패륜’이란 말로써 자기의 패륜을 극복하자는 심리다. 그리고 마음속에 가득차 있던 것이 말이 되어 불쑥 나온 것이다. 예수도 이렇게 가르쳤다.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이다. 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

이재명이 패륜과 ‘인간’을 말한 것을 통해 그의 마음을 볼 수 있다. 그의 후회가 마침내 극에 이른 것이다. 여기서 다른 생각이 든다. 극과 극은 상통하는 법이고 극강의 후회로 인간이 변한다. 이 후회가 패륜아도 착한 사람으로 변하게 하는 모티브인 것이다. 이재명이 ‘패륜’을 아직 잊지 않았고 ‘인간론’에도 기웃거렸으니 가능성이 남아 있는 사람이겠다. 수하들이 자살을 하기도 하고 잡혀가기도 하니까 공포와 번민에 사로잡혔을 테고, 그래서 윤리와 인간에 대한 채무의식에서, 자기도 몰래 저런 말이 튀어나왔을 수 있다. 아니면 석씨(釋氏) 제자들의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는 말씀처럼, 이재명의 마음 어딘가에 숨어있던 불성이, 그로 하여금 패륜과 인간을 말하게 함으로써 패륜과 인간을 곱씹어 보게 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므로 해서 윤리와 인간을 알아 참회하고 새로이 태어난다면 남다른 정인군자가 될 수 있다. 기국(器局)이 큰 사람은 천하의 악인에서 천하의 선인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런 사람처럼 이재명도 개심하여 참한 공렬(功烈)을 찬란하게 세울지 누가 알겠나.

도량이 넓은 사람은 저런 이재명이에게도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건만, 우리 같은 길거리 사람은 그렇게 잘 안해진다. 그래서 저런 악다구니는 약으로도, 수술로도 고칠 수 없는 고질(痼疾)로 품평할 수밖에 없다. 화타나 편작이 오더라도 어떻게 손써 볼 수가 없을 것이다. 양심이 허름하니 오늘을 맞지 않았느냐 꾸짖고 싶으나 저 사람도 남의 위에 있고, 아래엔 169명이나 있다.

왜 저런 병에 걸렸을까? 생활습관이 병이 된다. 저 일도 마찬가지로 습관에서 온 것이다. 작은 것을 훔치던 자가 큰 것도 훔치게 되고, 가족에게 욕하던 자가 남에게도 욕하게 되는 그런 습관인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습관일까? “내 속 짚어 남 말 한다”는 그 습관이다. 자기가 무턱대고 패륜을 저지르니 남도 그럴 것으로 아는 것이다. 내가 되는 대로 사니까 남도 나와 같을 것으로 알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사파 천하인 민주당을 이끌어야 하니 더 악바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에 안 하던 말을 했을 수도 있다. 지치기도 했을 것이다

그나저나 이재명의 신세가 딱하게 되었다 자수를 하재도 하지 못하고, 소환에 응하려도 응하지 못할 신세가 되어 제 몸뚱아리 하나 제 맘대로 하지 못하게 되었다. 민주당이 방탄막이 아니라 올가미가 된 것이다. 지금 이재명이가 독기를 품은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정반대일 것이다. 쫓기는 자의 심정으로 거친 척할 뿐일 것이다. 만목수참(滿目愁慘 눈에 드는 모든 것이 시름겹고 참혹하다)의 상태에 들어 좋은 것을 봐도 좋은 줄을 모르고, 밥을 먹어도 단맛을 모르고, 자리에 누워도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善에 습관이 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선에 있고, 惡에 습관이 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악에 있는 법이다. 솔개가 하늘에서 살고 잉어가 연못에서 살듯 사람은 환경과 습관에 매여 살 수밖에 없다 어떻든 죗값은 치러야만 한다. 그런 연후에 새로 출발하는 것도 인간 구제의 한 방법 아니겠나. 쟝발장(Jean Valjean)처럼.

  • 트위터
  • 페이스북
  • ↑위로
Copyright ⓒ 조갑제닷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달기 댓글쓰기 주의사항

댓글달기는 로그인후 사용하실 수 있으며, 내용은 100자 이내로 적어주십시오. 광고, 욕설, 비속어, 인신공격과 해당 글과 관련 없는 글은 사전통보없이 삭제됩니다.

PC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