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이 북한에 끊임없이 당하는 것은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 계속 집적대는 것이다
<어릴 적 싸움에서 의지력으로 본 대북 자세>
"이민복 학생이 아니면 학부형 회의에서 할 말이 없다."
인민학교(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의 나에 대한 평이다.
장난꾸러기에 골목대장이었다.
하지만 나보다 크고 싸움 술이 높은 아이들도 분명 있었다.
이들과 싸움 하여 기가 죽지 않은 두 가지 실례를 든다.
첫째로 <홍 알리>란 아이가 있었다.
홍씨 성에 세계적 권투선수 알리의 이름을 합성할 만큼 권투를 잘했다.
권투선수 형에게서 매일같이 배운 것이다.
평산에 살다가 내가 있는 서흥에 이사 온 아이였다.
우리보다 크지는 않은데 걔의 주먹에 다 떨어진다.
그가 내가 있던 동네를 평정하려 왔다.
사실 나도 읍 학교 씨름 선수였다.
하지만 샅바를 잡고 하는 씨름이 아닌 이상
실전에서 권투선수와의 싸움은 어림없었다.
훗날 유술(유도)하는 애와도 씨름으론 안 됨을 알았다.
그럼에도 <홍 알리>가 나타나자마자
바람처럼 달려들어 다리를 걸며 가슴을 쳐버렸다.
얼마나 세게 쳤는지 그도 나도 동시에 반대 방향으로 넘어졌을 정도였다.
이제 그가 일어나면 나는 끝이었다.
그런데 그 <홍 알리>가 친구 하자며 손을 내민다.
권투로 이길 수는 있지만 기가 죽지 않은 나를 본 것이다.
아이들 싸움이란 주먹만이 아니다.
기 죽지 않은 애가 돌이나 몽둥이를 들면
권투도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두 번째 싸움이다.
학급장 김복남이란 아이가 있었다.
학령 차이로 두 살이나 더 먹고 키가 제일 컸다.
육 선수였고 완력이 있어 학급장을 세운 것이다.
학급장 권한과 큰 체격으로 무소불위,
그 애 말을 안 들으면 경을 쳤다.
종일 학교 청소하느라 맥이 빠져 어두운 저녁에
집으로 갈 때였다.
학급장인 그가 나에게 자기 책가방을 들고 가라고 한다.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당연히 거부하였다.
그러자 다짜고짜 나의 면상을 쳐서 코피가 터진다.
내가 <이 XX>하며 달려들자 줄행랑을 친다.
씨름 선수인 나에게 붙잡히면 끝나는 것이기에.
하지만 그날로 끝나는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그의 집은 강가의 하모니카 집 가운데 칸이었다.
어두운 밤에 윙! 하고 돌이 날아간다.
돌은 기와장에 맞아 고요한 밤 공기를 보다 요란스럽게 깬다.
하모니카 집 여러 가정에서 난리가 났다.
하지만 돌은 김복남이네 칸 지붕 기와로만 날아갔다.
어두운 밤에 어디서 돌이 날아오는지 오리무중인데다가
무섭기도 하여 누구도 문 밖에 나서지 못한다.
돌은 주기적으로 한 시간 이상 날아갔다.
기와장이 다 부서질 판이지만 어둠 속에 돌 사격을 막을 자가 없었다.
그런데 <민복아!> 하며 어머니가 등 뒤에서 나를 붙잡는다.
왜 돌이 날아오는지 김복남이 부모께 이실직고하니 -
분명 자기 자식이 잘못이었다.
저 돌을 막을 자는 민복이 엄마밖에 없다고 본
그의 부모의 간절한 부탁으로 저를 말리러 오신 것이다.
그 후 학급장의 무소불위 <악독한 만행>은 누그러졌다.
최소한 나에게는 다시는 그런 일이 없었다.
위 글은 나의 어린 시절 싸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도 북한에 당하는 남한 당국의 처사가
답답하여 실례를 드는 것이다.
남한이 북한에 끊임없이 당하는 것은 의지 문제이다.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적이 없으니 계속 집적대는 것이다.
'홍 알리'와 '학급長 김복남' 이야기
-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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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1-01, 21: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