찔찔 짜는 공수처장을 어디다 쓸 것인가

사과를 하느니 찬송가와 자기 믿음을 받들어 그딴 공수처장 감투를 던져버릴 일이다. 조갑제닷컴에는 감명 깊은 글월이 수두룩하다. 나에게 잊히지 않는 문장이 한둘이 아닌데 그중에서도 다음 글이 인상적이었다. 일본 유치원생이 지진으로 옆에서 땅이 쩍쩍 갈라지는데도 대오를 맞추어 차분히 걷더라는 구절을 읽고 “이것이 일본의 민족 정체성이구나” 생각했다. 일본 교육의 핵심은 남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것과 울지 말라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저런 모토로 후세를 교육시키는 관리도 무언가 속에 품은 뜻이 있어 보이지만 교육 받은 대로 울지 않는 아이들도 대단하다. 그들이 자라나서 일본을 끌 것이매 왜 아니 조심성이 생기겠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이름만 들어도 정의의 화신 같기도 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하고, 무시무시해 보이기도 하다. 저런 어마어마한 기관의 장은 남다른 강단(剛斷)을 지녔으리라 믿었다. 목에 칼에 들어와도 울지 않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라 믿었던 것이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읽던 ‘삼국지’ 표지에는, 의원들이 장비의 등에서 화살을 뽑아내고 있는데 그는 한가하게 바둑을 두고 앉았는 그림이 있었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은 그런 사람일 것이라 믿었던 내가 부끄러워졌다. 처장이 시무식 때 울었기 때문이다. 왜 울었는지는 몰라도 온 국민이 보는 데서 울었다. 누구라도 비록 무능하거나 나태할지라도 고위 공직자는 어딘가 독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을 숫기라 해도 좋고 객기라 해도 좋고 의기(意氣)라 해도 좋다. 그래야 조직의 이름값을 한다. 고위공직자에게는 울지 않아야 할 도의적 의무와 담대해야 할 책임 원칙이 있는 것이다.

시무식 때 찬송가도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계는 공수처장의 찬송가를 들어 사퇴를 요구했다. 나 같이 외진 곳에 사는 촌로도 공식행사인 시무식에서 찬송가를 부르면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항의가 있을 것이라는 것도 예견한다. 처장이 왜 그걸 몰랐겠는가. 알면서도 찬송가를 불렀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이다면 사과를 하느니 찬송가와 자기 믿음을 받들어 그딴 공수처장 감투를 던져버릴 일이다. 치기(稚氣)로써라도 말이다. 그러나 그는 사과를 택했다. 불교계가 크리스챤을 어떻게 보며 어떻다 하겠는가. 또 그 찬송가를 어떻게 여기겠는가. 여기서 성경 한 구절이 생각난다. “주님 안에서 그분의 강한 힘을 받아 굳세어지십시오.” -에페소서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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