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기관'의 지조(志操)

한 번은 남 따라 장(場)에 간 지조였고, 한 번은 '사과'라 말할 배짱도 없는 지조였다. 국힘당 초선 의원 10명이 나경원 씨를 해코지하기 위해 돌렸던 이른바 ‘초선 연판장’ 사태에 대해 나경원 씨에게 위로의 말을 전했다는 기사가 있다.

조선시대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많이 접한 구절은 이것이다. '사대부의 지조라는 게…쯧쯧'. 그들은 지조를 생명 삼았던 분들이니 지조를 버린 자에게 혀를 차는 것으로써 욕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요사이 사람들은 “지조가 밥 먹여주나?” 하고, 변절자가 큰소리 치고, 관망자는 박수 친다. 개인이 저러는 것이야 동서고금 어디에도 있던 일이지마는 지금은 ‘헌법기관’이 집단으로 그러니 국가적으로 지조 있음을 비웃는 셈이다.

옛 사람들은 비록 일개 서생일지라도 지조를 생명처럼 고귀한 것으로 간직했다. 때로는 지조를 버리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지조를 버린 것에 죄의식을 갖기는 했다. 그러나 위대한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란 자들은 단 며칠 만에 지조를 버리고도 도리어 떳떳하다 뿐만 아니라, 사과를 사과답게 하지도 않고 도리어 피해자를 '위로'했다고 말했다.

연판장을 돌린 것이 할 만한 일이었든지 아니었든지 간에 수십 명이 모여서 의논을 한 끝에 한 것이라면 어떤 의지와 염원이 담긴 일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나름으로는 장한 일을 하고서 단 며칠 만에 뉘우친 것은 십원짜리 지조도 없는 짓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이로 보아 애당초 연판장을 내는 것에 찬성한 것부터가 자의식도 없이 휩쓸려서 한 짓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내 뉘우쳤다. 두 번이나 지조 없는 짓을 한 것이다. 한 번은 남 따라 장에 간 지조였고, 한 번은 '사과'라 말할 배짱도 없는 지조였다.

사과를 할 것 같으면 남자답게 똑부러지게 사과를 할 일이다. 그러나 사과를 했다고 아니하고 '위로'를 했다고 한다. 사과를 사과라 말하지 못하고 '위로'라고 말한 거기에 지조는커녕 지조의 그림자도 안 보인다. 사과와 위로를 구별도 못하는 자들이 대한민국의 '헌법기관'이란 게 가관이요 모순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를 한다는 말은 들었으되 위로를 한다는 말은 못 들어봤다. 그렇게 위로를 할 정도이면 칼을 물고 엎어져 죽는 것이 진정한 위로가 되지 않을까. 그러지도 못할 것이면서 왜 여자 하나에게 남정네 수십 명이 모여 정신적, 정치적 폭행을 했느냐 말이다. 저렇게 싸구려 지조도 없는 자들이 나라를 이끄는데 나라에 무슨 기백이 있고 무슨 기상이 있으며 무슨 기개가 있으랴.

구경꾼인 내가 다 통분해서 거듭 말하고 묻는다. 단 며칠 만에 사과할 일을 왜 쥐새끼처럼 새까만 눈알을 아래 위로 번득이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나이 많은 여자에게 퍼부었느냐 묻는 바이다. 그것도 5선을 자랑하는 선배 하나에게 초선 나부랭이 수십 명이.

비록 그렇지만 저 자들은 젊은이들 중에서 난다 긴다 했기에 국회의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내노라 하는 자들이 자기가 뿌린 오물을 깨끗이 치우지도 않고 어물쩍 넘어가는데 여타의 젊은이들은 오죽하겠나. 이 나라에 과연 희망이 있는지 묻고 싶고 국가적 지조가 있는지도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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