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사건을 비롯한 당시의 반정부 투쟁 사건들은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대와 연결된 남로당의 투쟁이었음은 당시 남로당 간부였던 저의 부친을 통해 명백히 증명됩니다.
<탈북 국회의원 태영호의 제주 4.3 발언에 욕을 먹음을 보면서->
저의 부친 이포구도 1948년 당시 북한 중앙당 파견 김복동 휘하 남로당 간부였습니다. 고을에서 면장감은 이포구밖에 없다고 할 정도로 학식과 명석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포섭한 팔로군 출신 김복동은 <라호대>란 유격대도 조직하였는데 저희 부친은 소대장이었다고 합니다.
전투 경험이 풍부한 팔로군 출신 김복동은 유격대 이름을 전라 라(羅) 자에 호랑이 호(虎) 자를 따서 <라호대>로 명명, 당시 투쟁의 주요 목적은 망국적인 510 단독 정권 수립을 위한 선거를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 일환이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부친 지역인 전북 익산 지구에서도 단독 정부 수립에 동참하는 유지들의 집을 습격하여 달구지 바퀴도 뽑아 없애는 등 행동을 했다고 합니다. 평시 재미 삼아 지하 투쟁을 하던 이야기 중에 - 유지들 집을 습격할 때 게사니(注, 거위)들이 요란스러운데 그때는 칼로 목을 치면서 들어갔다고 합니다. 돌아보면 목 잘린 게사니 대가리들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었다는 것이지요.
전북 익산 지구는 산이 적은 호남 평야여서 아지트를 잡을 만한 곳이 없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으슥하여 사람들이 기피하는 공동묘지 무덤 속을 아지트로 삼았다고 합니다. 평등 사회인 북한 같은 공산국가를 만들자는 부친의 자각 행동이지만 한편 부모님과 형제들은 매우 우려스러워했다고 합니다. 맏형은 손 꼽히는 마을 부자이기에 더욱 걱정이었습니다. 하기에 <너는 불을 보고 뛰어드는 불나비>라고 질책했다는 것입니다.
한편 위험천만한 공산당 활동에서 떼어내기 위해 면에서 가장 미인인 처녀와 결혼시켰습니다. 한창 젊음이 여자에 빠지고 가정이 생기면 공산당 활동에서 떼어낼 수 있지 않겠는 가하는 가문의 전략이었습니다. 부친도 똑똑하고 잘 생겼기에 미인 처녀도 이견이 없이 결혼하여 딸 하나를 낳기도 하였습니다. 차후 유엔군 북진으로 부친은 월북하여 다시 못 본 그 딸은 현재 남한에 살아 있습니다.
멋진 부인에게서 귀여운 딸을 얻고도 부친의 신념은 굽혀지지 않았습니다. 신혼의 달콤한 꿀보다 더 강한 것이 공산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경찰에 꼬리가 잡혀 군산과 리리(이리:裡里) 감옥에 갇혔습니다. 잡혔을 때 가장 엄벌이 무기 소지 여부였다고 합니다. 유격대 대장은 소련제 떼떼권총, 소대장인 부친은 칠성자(권총)를 소지하였는데 마침 잡혔을 때는 몸에 지니지 않았다고 합니다.그래도 추궁을 벗어나기 위해 묘략을 꾸몄다고 합니다.
감옥 바깥 동지들에게 나무 권총을 만들어 어느 호숫가에 돌 달아 던져 놓아라 하면 우리는 가짜 권총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저 호숫가에 있다고 강변했다는 것입니다. 정작 경찰도 호숫가에 조사해 건져낸 것이 나무 권총이기에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변명 작전으로 고생은 좀 했지만 석방될 수 있는 여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고문 자리가 몸 곳곳에 남아 있습니다. 부정적인 철학인 공산당은 자기들끼리도 의심이 병적입니다. 부친이 차후 월북하여 간첩으로 의심받을 때마다 고문 자리를 보여주며 아니라고 증표하였다고 합니다.
아무튼 제주 4·3 사건을 비롯한 당시의 반정부 투쟁 사건들은 북한에서 파견한 공작대와 연결된 남로당의 투쟁이었음은 당시 남로당 간부였던 저의 부친을 통해 명백히 증명됩니다.
남로당 간부였던 부친의 단정(單政) 수립 반대 활동
-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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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5, 14: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