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려면 우선 정치 기득권이 깨져야 한다…국가 차원의 아젠다를 다룰 시대적 통찰력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아니라 지역정치에 나가는 게 맞다.
헌법기관이니 작은 지역대표가 아니라 국가대표여야 하는 건 당연하다. 국가 차원의 아젠다를 다룰 시대적 통찰력이 없으면 국회의원이 아니라 지역정치에 나가는 게 맞다. 젊을수록 디지털노마드가 된 시대다. 전국을 3-4시간 내에 대부분 접근 가능하고 서울에서 충청도 강원도를 오가며 출퇴근하는 시대다. 그래서 젊을수록 생활권이 광역권, 전국, 아니 글로벌하다.
서울 경기 등을 보더라도 "나는 한국인이야"이지 과거 생활권이었던 구(區)나 기초시 등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출퇴근을 위해 잠을 자고 잠시 쉬는 주거지에 불과하다. 지방으로 가더라도 농어촌을 제외한 도시의 경우는 '부산' '광주' '충청도'… 이런 식으로 나뉘지 그 안의 작은 지역사회가 활동반경은 아니다. 전국 어디든 맘 먹으면 갈 수 있고 모든 소식이 실시간 공유된다. 자신의 지역적 정체성이 넓어지고 있다. 부작용도 있지만 이게 시대 흐름이다. 돌아갈 수 없다면 저항하고 역행하기보다 적응하고 긍정적 방향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래서 갈수록 향우회, 종친회.등 지연과 혈연 등 과거 농경사회 식의 공동체는 해체되고 연령대, 성별, 취미별, 관심사별, 이해관계별 공동체로 다시 재구성되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나 러시아 중국 등 국토 면적이 너무 넓어 접근성에 한계가 있는 경우는 다르지만 유럽이나 아시아의 중소면적의 국가들은 대개 다 그렇다. 유럽은 아예 생활권이 유럽 전체가 되면서 정체성의 단위가 바뀌었고, 영국처럼 시대의 흐름에 역행한 국가는 낙오되고 있다.
그래서 행정구역의 단위도, 선거구의 단위도 시대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 더이상 전후 60~70년대의 농경사회, 혹은 70~80년대의 초기 공업화, 후발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시스템으로 지금 글로벌화되고 선진국 사회구조로 변한 대한민국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다. 무수히 다양한 계층과 관심사, 이해관계가 과거 냉전기 혹은 농경사회나 초기산업화 패러다임의 질서로 운영될 수 없다. 잘봐줘야 민주화시대 개발도상국의 패러다임에 머물러서야 되겠나?
그러니 여론조사에서 경제활동이 활발한 50대 이하일수록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심사를 대변할 다당제를 찬성하고 작은 지역의 이해관계가 아닌 전국 대표성이 있는 선거제를 찬성하고, 은퇴 후 노년으로 갈수록 소지역 대표성이 크고 지역공동체 밀착형인 과거 패러다임에 맞는 소선거구제를 더 찬성하는 것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예컨대 소상공인만 하더라도 전통시장 상인, 상가 상인, 지하도 상인, 온라인 유통업자, 중대형 유통업자, 대기업 프랜차이즈 등 무수히 다른 이해관계가 있는 시대 아닌가? 그런데 그 거대 정당들이 그런 문제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수준으로 하는 '척'만 하고 국회에선 체포동의안, 특검…이런 이슈만 난무하고 검찰이 정치의 주인공이 돼 실시간으로 언론 플레이를 한다.
당 지도부가 합의되지 않으면 상임위도 못 여는 게 말이 되나? 정책을 시대에 맞게 세부적으로 조정해 나가는 것만 해도 바쁜 시대에 우리는 양 패거리로 나뉘어 대통령과 당대표를 둘러싼 유치하고 끝없는 싸움에 온 나라가 권력투쟁중이다. 정의의 실현도 권력기관의 독립과 전문성 확보, 권력의 수평화와 분산을 통해 가능한데 이대로면 설사 한쪽이 투쟁에서 이겨도 사람만 바뀌어 반복될 뿐이다.
이태원 참사도 글로벌 축제가 자생적으로 발생하는 메트로폴리탄 서울이란 곳에서 용산이라는 과거 패러다임의 소동네 하나로 그런 일을 책임지는 영세한 단위의 기초행정 패러다임 문제, 지역경찰이 자치단체가 아닌 중앙의 명령을 받고 재량이 주어지지 않은 채 대통령 입만 쳐다보는 후진적 패러다임의 문제가 근본 원인이었다.
그러니 행정구역도, 선거구도 광역화되고 전국화되어야 한다. 지역 차원의 문제는 지방의원들에게 맡기고 국회의원들은 자기 것도 아닌 공천권을 휘두르며 그들을 앵벌이시키고 노예화하며 때로 대가까지 주고받는 추잡한 관행에서 손을 떼고, 헌법기관다운 일에 몰두해야 한다. 시장통을 다니며 지역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은 지방자치 일꾼들에게 넘기고 국회의원들은 대한민국의 국가전략, 즉 국가개혁 과제, 지역균형발전전략, 선진국으로서의 외교전략, 대북안보관리, 미래산업전략…이런 걸 논해야 한다.
생활정치도 전국의 공통된 이슈, 출퇴근족의 광역교통망, 서민들의 공공주택 문제, 교육에서의 공정한 기회, 민생치안을 위한 자치경찰제, 하청노동자의 임금문제, 은퇴 후의 노동문제, 80 이후의 삶의 문제…이런 걸 고민할 때다. 그래야 기존 정치권에서 훌륭한 대통령감도 생기는 거다.
언제까지 바깥의 준비되지 않은 벼락 스타를 대통령감으로 꿔오고 후회하는 일을 반복할 건가? 언제까지 비열한 수법으로 상대를 죽이고 올라온 사람들이 성공하는 정치를 볼 건가? 언제까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부를 축적하고 성공해온 사람들의 지배를 받을 건가? 이제 선진국 패러다임, 적어도 20~50대들의 시대를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정치 기득권이 깨져야 한다. 그러려면 선거제 정당제 등 정치에 진입장벽이 무너져야 한다.
20~50대, 평범하게 살아온 사람들이 정치를 해야
- 이언주(前 국회의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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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2-15, 16:04












그러한, 정상적인 삶을 살아온 사람은 정치 소굴에 발을 안들여놓지라.
기존 정치권은 어떤 사람들 이었나에 대한 반성이 없다. 사실 이 나라 정치를 혁신하려면 기존 정치인들을 모두 퇴출 시키고 새로운 인물들로 채워 넣어야 한다. 역사도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퇴출시킬 것인가에 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한다. 국민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계속 계도해야 한다.
나이 차별은 헌법 위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