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은 위기의 대한민국을 지켜낸 자유와 평화의 성지(聖地)다. 중앙동(中央洞)은 광복동과 동광동, 남포동과 함께 부산의 심장부로 기록되고 있다. 인접한 부민동(富民洞)과 더불어 행정과 경제, 금융, 치안, 언론기관이 즐비하게 들어섰던 지역이다.
특히 임시수도 1023일간엔 피난민들의 애환(哀歡)이 스며있는 대중가요가 탄생된 현장이기도 하다. ‘이별의 부산정거장’과 ‘경상도 아가씨’를 비롯해서 ‘굳세어라 금순아’ 등의 유행가도 중앙동 일대가 무대가 됐다.
‘경상도 아가씨’에 등장하는 ‘사십계단 층층대’가 바로 중앙동에 있다. 중앙동을 산책하면서 포착된 부산 근현대사의 유적지를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제일 먼저 ‘사십계단’의 풍경부터 ’40계단 소개문’에 기록된 내용을 전재(轉載)한다.
중앙동 사십계단은 오늘의 영주동에서 옛 부산역과 국제여객부두를 왕래하는 편의를 위해 설치됐다. 이 계단은 한국전쟁 당시 피난 중 헤어진 가족들의 상봉 장소였고 피난살이의 애환을 상징하던 곳이기도 하다.
10만 명이 넘는 피난민들에겐 가장 친근한 장소였다. 이 곳이 유명해진 것은 1951년 박재홍이 부른 대중가요 ‘경상도 아가씨’가 크게 유명해지면서 더욱 명소가 됐다. 당시만 하더라도 영도다리를 바라볼수 있었는데 피난민들은 더러 40계단에 기대고 앉아 영도다리를 바라보며 피난살이의 고달픔을 달래었다.
40계단은 4m였던 지난날과는 달리 지금은 폭이 많이 줄어들어 옛모습을 잃었다. 그래서 본래의 40계단에서 남쪽으로 25m 떨어진 계단을 현재는 말하고 있다. 원래의 자리에서 떨어진 계단에 1993년 8월 ‘40계단 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 뒷면에 ‘경상도아가씨’의 가사를 새겨놓았다. 1999년 제작, 방영된 영화 ‘인정사정 볼것없다’의 오프닝 장면으로도 등장됐다. 40계단 중간 부분에는 아코디온을 연주하는 악사(樂士)의 동상도 세워져 있다.
피난 내려와 40계단 층층대에서 허기져 앉아있던 젊은이들을 어루만지고 보살펴 주던 그날의 경상도 아가씨는 오늘은 어느 하늘 밑에서 노후를 보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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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아가씨 (작곡:이재호/작사:손로원)
사십 계단 층층대에 앉아 우는 나그네
울지 말고 속 시원히 말 좀 하세요
피난살이 처량스레 동정하는 판자집에
경상도 아가씨가 애처로워 묻는구나
그래도 대답 없이 슬피 우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고향 길이 틀 때까지 국제 시장 거리에
담배 장수 하더라도 살아 보세요
정이 들면 부산항도 내가 살던 정든 산천
경상도 아가씨가 두 손목을 잡는구나
그래도 눈물만이 흘러 젖는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영도 다리 난간 위에 조각달이 뜨거든
안타까운 고향 얘기 들려주세요
복사꽃이 피던 날 밤 옷소매를 끌어 잡는
경상도 아가씨의 그 순정이 그립구나
그래도 뼈에 맺힌 내 고향이 이북 고향
언제 가려나












1951년 부산의 어느 여학교 교실, 육군 병원이었지, 그곳에 입원했었지, 옆에 두다리가
절단된 부상병, 간호사가 치료 하다가 뭣이 잘못되었는지 목발로 맞는 장면을 봤지.
근데 저 멀리 천막이 있는데 '이화여자대학, 이라 써 있고 여대생들이 공부를 하더라.
아, 1950년대의 비극이여!!!
앗. 저 사진
깔치 장사 아지매가 경상도 사투리로 옆자리 할매와 싸운 끝에
저 계단을 밟고 올라갈 때 박재홍이 구슬픈 목소리로 부르는
'경상도 아가씨'를 들으면 나는 세상 모든 시름이 다 없어지는데....
뻥튀기 아저씨가 뻥 터뜨리기 전에
두 아이가 귀를 막고 있는 동상도 저 계단에 있는 것 같았는데.....
그것도 이젠 귀한 추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