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도주 宗씨는 대대로 조선조 벼슬을 받았다
오늘 3 •1절 104주년을 맞아 조선조 초기 對일본 외교의 선봉에 서서 큰 공을 세운 李藝(이예 • 1373~1445) 선생이 떠오른다. 그의 傳記(전기)를 읽어보면 그의 주 외교대상이었던 對馬島主(대마도주) 宗(종 • 일본 발음 '소')씨가 조선인 宋씨의 후예로 보인다는 대목이 있고, 대대로 조선에서 벼슬을 제수 받았다고 한다. 워낙 땅이 척박하여 먹을 것이 부족한지라, 우리가 강할 때는 고개 숙여 곡물을 얻어갔고, 약할 때는 왜구로 돌변, 우리 해변에서 노략질을 일삼았다고도 했다.
李藝는 본시 중인 계급인 鄕吏(향리)의 자제였으나, 1396년(태조 5년) 왜적에 의해 대마도로 잡혀간 知蔚山郡事(지울산군사) 李殷(이은)을 찾아온 공을 인정받아 양반으로 신분이 상승되었다.
1401년(태종 1년) 일본 이키(壹岐 일기)섬에 사신으로 가 왜구에 붙잡혀간 우리 백성 50명을 데려옴으로써 左軍副司直(좌군부사직)에 제수되었다. 이후 1410년(태종 10)까지 해마다 통신사가 되어 미시마, 쓰시마, 이키야마 등을 왕래하면서 우리 백성 500여 명을 데려왔다. 1416년(태종 16년) 琉球國(유구국 • 지금의 오키나와)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우리 백성 44명을 찾아왔고, 1419년(세종 1년) 대마도 정벌 때는 中軍兵馬副帥使(중군병마부수사)로서 삼군도체찰사 李從茂(이종무) 장군을 보좌했다. 1422년(세종 4년), 1424년(세종 6년)에는 회례사 朴凞中(박희중), 朴安信(박안신)의 副使(부사)로 일본에 가서 우리 백성 70명을 찾아와 大護軍(대호군)이, 1433년(세종 14년)에는 回禮正使가 되어 일본에 갔다 와서 上護軍이 되었다. 1443년(세종 25년)에는 71세의 노구를 무릅쓰고 왜적에게 잡혀간 우리 백성들을 찾아오기 위해 對馬州體察使(대마주체찰사)를 자청하는 등 모두 40여 차례나 일본에 다녀왔다. 2010년 외교통상부는 李藝를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선정하였다.
조선왕조실록과 李藝의 삶을 잘 연구하면 대마도가 조선 땅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확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겨우 40년간(1905~1945년) 불법 지배한 것을 배경으로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기회만 있으면 주장하는 일본의 코를 누가 납작 눌러줄 것인가 고대해본다.
3•1절에 떠오르는 조선 초기 외교관 李藝 선생
- 趙南俊 전 월간조선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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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3-01, 13:4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