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원로를 누가 무슨 권한으로 지정하나

‘원로’는 남들이 존경심을 담아 높여서 말해 주는 것이지 제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원로라 할 수는 없다. 국가원로를 누가 무슨 권한으로 지정하나

‘국가원로회의’가 위기 극복과 윤석열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국가원로회의 성명서>를 내었다고 한다.-뉴데일리- 성명서를 읽어보니 원로들의 애국혼이 글자마다에 깃들어 있고 나라 걱정이 문맥마다 넘쳐났다. 어지러운 시기에 이름 그대로 국가원로다웁게 우리가 나아갈 바를 일러주었으니 감사히 받들어 마지 않는 것이 후진의 올바른 자세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에 돌을 하나 던지겠다. 존엄하고 숭고한 원로께가 아니라 ‘국가원로회의’라는 간판에 돌 아닌 돌을 던지리라.

그 누가 매우 거룩한 말씀을 할지라도 겸손한 자세가 없으면 그 소리는 다만 수꽹과리 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시끄러운 잡음에 누가 귀를 기울이겠으며 누가 거들떠나 보겠나?

‘국가원로회의’라는 문패가 문제다. '원로'라는 말은 자기가 스스로에게 쓰는 용어가 아니다. ‘원로’는 남들이 존경심을 담아 높여서 말해 주는 것이지 제 스스로 자기를 가리켜 원로라 할 수는 없다. “나는 원로이다”고 말하면 남들이 웃지 않겠는가. 그러한데 저 어르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모임을 만들고 그 모임을 원로회의라고 이름했다. 한 발 더 나아가 ‘국가’까지 붙여서 국가원로회의라 한 것이다.

원로 자격심사는 누가 했는가? 국민의 동의를 받아서 했는가? 국가원로라고 국민 말고 또 누가 인정할 권한을 가졌는가? 왕조국가도 아닌 국민국가에서 국가원로를 정권이 지정하나? 여기에 답하지 못하면 국가원로회의라는 명칭은 평범한 시민들 앞에서 제 혼자 폼을 잡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달리 말하자면 멀리서만 존경하겠다(敬遠)는 의미다.

거듭 말하거니와 원로란 말은 ‘어르신’과 통하는 말이므로 자기가 자기를 ‘어르신’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듯이 자기가 자기를 원로라고 말하면 잘못된 일이다. 그 회원이 200여 명 된다고 하는데 이 점을 지적한 사람이 한 명도 없으니 국가 원로라 이름한 것이 더욱 민망한 노릇이다.

예나 지금이나 무릇 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르신이 이끈다. 젊은이는 살기에 바쁘고, 공부하기에 바쁘고, 나라 지키기에도 바쁘다. 그래서 그것은 한가하고 사려 깊은 어르신들의 몫이며 어르신이 개발하고 발전시킨다. 그러므로 어르신들은 젊은이들보다 더욱 조심하되, 우선 언어부터 아름답고 점잖아야 하고 곧아야 한다. 그 어르신들이 국가원로회의라고 이름 지었다. 스스로를 높인 것이 아니고 뭔가? 그래서야 젊은이들이 성명서를 읽고 감격하겠나.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는 성경 말씀처럼, 참으로 봉사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자기들의 모임 이름에 ‘봉사’란 말은 넣지도 않는다. 그런데 저 어르신네들은 스스로 국가원로가 돼 버렸다. 자칭 ‘국가원로회의’가 실컷 좋은 일을 해놓고 이런 시비를 당하다니 애석하다.

이 글을 써놓고 며칠이나 지났지만 여기에 차마 올리지는 못했다. ‘국가원로회의’란 문패가 사리상으론 맞지 않더라도 내가 감히 그 명칭을 놓고 옳니 그르니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오늘에야 어떤 분들이 거기의 회원일까 싶어서 인터넷을 뒤적여보니 홈페이지도 없는 모양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다만 이런 구절은 만났다.

‘경찰학 사전’에 이렇게 돼 있다.

국가원로자문회의
[ 國家元老諮問會議 , the Advisory Council on State Affairs ]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기관을 말한다. 설치 당시의 명칭은 국정자문회의였으나 1988년 헌법개정으로 그 명칭을 국가원로자문회의로 변경하였다. 헌법 제90조 제1항은 국정의 중요한 사항에 관한 대통령의 자문에 응하기 위하여 국가원로로 구성되는 원로자문회의를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 조직 및 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법률로 정하며(제90조 제3항), 국가자문원로회의의 의장은 직전대통령이 된다. 다만 직전대통령이 없을 때에는 대통령이 지명한다(제90조 제2항). 그러나 1989년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은 폐지되었고 현재는 헌법상의 규정만 존재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국가원로자문회의 [國家元老諮問會議, the Advisory Council on State Affairs]

위의 글을 읽고 그러면 그렇지 하며 무릎을 쳤다. 국가원로회의 설치 당시의 명칭은 국가원로회의가 아니라 ‘국정자문회의’였기 때문이다. ‘국가’도 안 들어갔고 ‘원로’도 안 들어간 문패이다. 역시 우리의 어르신네들께서는 스스로의 얼굴에 분칠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저 법도 폐지되었다. ‘원로’를 법으로 지정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폐지하지 않았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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