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투방. 1000번당 빵집. 수도산. 철길. 추산골프장. 문신 선생의 집. 신신예식장…그곳의 넓은 신작로와 거기의 바람이 우리를 키워주었다.
'예식장 아저씨'가 가시다니
《“주무시듯 가셨다” 55년간 ‘무료 결혼식’ 신신예식장 대표 별세》이는 어제 조선일보의 한 기사 제목이다. 우리 지역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중앙일간지마다 모두 저 내용을 싣고 있다. 조선일보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된다. “경남 마산에서 55년 동안 예식장을 운영하면서 1만4000쌍의 부부에게 무료로 결혼식을 올려 준 백낙삼 신신예식장 대표가 28일 9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신신예식장’을 모르면 마산 토박이가 아니다. 신신예식장도 처음에는 다른 예식장과 마찬가지로 유료 예식장이었다. 그러나 백낙삼 어른이 뜻한 바 있어 무료로 전환하고 결혼식 스냅 사진까지 찍어 주었다.
우리는 신신예식장을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예식장에서 대여섯 건물 옆쪽에 권투방이 있었으니 이웃이라 정이 안 들 수가 없었고,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밤낮으로 그 지역에서 놀고, 먹고, 자고 하였으니 그 정이 예사롭지 않다. 어디 그뿐인가. 예식장 바로 옆에는 ‘1000번당’이라는 양과자점 곧 빵집이 있었고 거기서 죽치고 지냈으니 신신예식장과 함께 생활한 셈이다. 저 어른의 별세 소식에 마음이 쓰리다.
저 빵집은 짧은 급경사 아래의 모퉁이에 있었는데 그 길을 올라서면 진주로 가는 철길이 있었고 철길 건너서 바로 수도산이다. 수도산은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건설한 정수장이 있었기에 水道山이다. 산이라기보다는 야트막한 언덕인데 산꼬리에 조금 붙어있다고 해서 산이라 불렀다. 간혹 마음 좋은 정수장 경비 아저씨가 정수장 구경을 시켜 주었다. 정수장은 미국 영화에서나 나오는 넓다란 잔디밭에 있었고, 또 정수장이란 것이 왜 그렇게나 사치스러웠던지 한시내에 있는 여느 건물보다 호화로웠다.
조금 더 위쪽엔 청소년용 놀이 시설인 추산골프장이 있었고, 그 옆에는 추산도서관이 있었다. 좀 더 위쪽에는 마산이 낳은 세계적 조각가 문신 선생의 집이 있었으므로 그 일대에 학생들이 바글바글할 수밖에 없었다. 마산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치고, 여학생은 남학생과 같이, 남학생은 여학생과 함께 저 골프장에서 골프 한 번 안 친 사람은 없을 것이다.
권투방. 1000번당 빵집. 수도산. 철길. 추산골프장. 추산도서관. 문신 선생의 집. 신신예식장 그리고 그곳의 넓은 신작로와 거기의 바람이 우리를 키워주었다. 이 지역의 추억이 우리 내면세계의 8할을 차지하는 바 육신만 키워준 것이 아니라 철도 나게 해 준 것이다.
권투방도 사라졌고, 1000번당 빵집도 간데없고, 추산골프장과 추산도서관도 세월 따라 흔적도 남김없이 사라졌다. 정수장도, 철길도, 문신 선생의 집도 없어졌다. 이제 ‘예식장 아저씨’마저 가셨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시각에 조선일보 기사엔 472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어르신을 우러르며 감사하는 내용입니다. 어르신의 이름이 세상 위인들의 이름과 함께 높이 모셔질 것입니다. 백낙삼 어른이시여 극락왕생하소서.
나이가 많아지니 이별도 많아지는데 수도산 너 하나만이 남았구나. 너는 山이니 인간의 서글픔을 모르겠다마는. 사람은 무정물에도 전봇대에도 정을 주고 산다. 그러니 너만이라도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 주어서 너가 없어지는 서글픔을 나에게 하나 더 보태지 말아다오,
'예식장 아저씨'가 가시다니
- 무학산(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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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9, 08:57












인생사 일장춘몽
소풍왔다 가는 인생
구름처럼 바람처럼 미련도 아쉬움도 없음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