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모르겠오?” “내가 할마시를 우째 아요?” “교방동 살았죠?…마산상고를 다녔죠?” “어”
<아…경상도여. 경상도여>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다. 그 전의 이야기부터 하겠다. 60년대에 일본에 사는 외할머니와 이모가 한국에 왔다. 그때만 해도 귀하던 카메라를 나에게 선물했다. 그때는 3C가 마구 횡행하던 시절이었으니 동네 처녀들이 나와 같이 놀러가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곤 했다.
3C란 곧 세 가지 중에 하나라도 있으면 처녀를 손쉽게 꼬실 수 있다는 은어였다. 곧 cash. car. camera다. 이 때에 카메라를 가졌으니, 안 그래도 우리 동네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새끼는 나밖에 없었는데 카메라까지 있으니 그 인기를 알 만하지 않은가.
그 흔적을 어제밤에도 만났다. 조선일보에도 났지만 요사이 아사히 생맥주를 예약하고서도 언제 살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 동네 편의점 아저씨가 자기도 못 마셔봤다고 투덜대면서 예약도 하지 않은 나에게 네 캔을 가져다 주었다. 그것을 단숨에 마시고 더 먹고 싶어서 입맛을 쩝쩝 다시고 있는데 사촌 형수에게서 전화가 왔다.
“대림(도련님의 경상도 사투리). 형님이 대림 안 온다고 짜증을 내쌓는데 와 안 오요?” 내가 답했다 “형수. 내가 가진 것은 시간뿐이니 만날 술에 쩔어 사요. 술에 취해서 어떻게 형님을 뵈러 가것오?” “그래도 오소. 형님이 저래 쌓는데. 담가 논 포도주도 있고” 옳다구나 하고 형님집에 갔다 포도주를 마시다가 성에 안 차서 형님과 형수를 모시고 근처의 횟집에 갔다.
.
들어가자마자 늙수구레한 주인인 성 싶은 여자가 성을 내었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이보소. 할망구. 나는 이 가게에 처음 왔고 우리 형님과 형수는 술도 못 마시니 올 일도 없는 사람이요. 근데 와 우리한테 성을 내요?” 그러자 그 여자의 두 눈에 눈물이 맺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말했다 “나를 모르겠오?” “내가 할마시를 우째 아요?” “그 성깔은 여전하오” “할마시가 나를 언제 봤다고 그라요?” 그가 말했다 “교방동 살았죠?” “마산 상고를 다녔죠?” 내가 “ 어” 하고 있는데 그가 또 말했다. “나는 ‘기름 장사 아지매’ 딸이요” 그 말을 들으니 하늘이 노래지는데 그 하늘이 나를 고등학교 시절로 되돌려 앉혔다
근동(近洞)에서 소문난 ‘욕쟁이 기름장사 아지매’ 그의 딸이 나와 동갑이었는데 공장에 다녔다. 그녀는 작업복을 입고 나는 교복을 입은 이 어쭙잖은 계급 차이로 그 처녀와 한 동네에 살면서도 나는 그녀에게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서로 늙어서야 처음으로 말을 섞게 된 것이었다. 그것도 그녀는 경상도 특유의 까닭없이 성을 내면서였고, 나 역시 그 특유의 고성(高聲)으로 말하는 채로. 아…경상도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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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naidn 님도.
지금도 글을 잘 쓰시는데 고교생일 땐 어련하셨겠습니까.
러브 레터 한 장을 살며시 쥐어 주시지 않고 그러셨어요
그랬다면 두 분 모두에게 마음의 보석으로 남아 있을 텐데
지금이라도 밤새 좋은 문장을 골라 연애 편지 한 장을 쓰시고
내일 아침에 만나면 건네 주십시오.
그분도 틀림없이 그 길을 왔다 갔다 하고 계실 겁니다
백색삼선을 두른 경북고딩 모자를 쓰고 이른아침 등교길 골목으로 접어들면 왼쪽가슴보겠또에 SM을 자수놓은 신명여고 여학생을 자주 자주 만난다 그 녀는 수줍은듯 고개를 숙이고 간신히 내 옆을 지나 학교간다
그 녀를 빵집으로 꼬시지 못한것이 천추의 한이로고. ㅎㅎ,
(좋은 글로 줄기차게 애국하시는 무학산 군에 감사와 응원하는 의미로 소싯적 일을 한 번 욕심스럽게 끄적거려 보았어요,
용서 하시구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