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네가 국군인 줄 먼저 알고 있었다!"…총을 내리고 몸을 함께 녹인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6·25 참전 남북한 군인에게서 들은 이야기>
목사님이시지만(김포) 6·25 때는 국군으로 참전하셨던 분이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의를 잃은 인민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전장을 수습하는데 다 보이는 바위돌 위에 인민군 군관이 앉아있다.
국군이 와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주변에는 부하 대원들이 줄비하게 쓰려져 죽어있다.
정신줄 놓은 군관을 국군도 무덤덤하게 바라보며 지나간다.
하지만 어린 국군 병사 하나가 이 무덤덤을 마침내 깨어버린다.
<야 이 새끼야! 얼른 내려와!>
그래도 미동도 하지 않자 꽝! 하고 방아쇠를 당겨버린다.
군관은 썩은 고목 쓰러지듯 굴러 떨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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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포농업대학 연구소 시절이다(1980년).
과학자 백설희 숨은 영웅 따라 배우기 운동이 한창일 때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변변히 먹지 못하고 너무 열심이다 보니 능막(늑막염)에 걸렸다.
연구소는 남포 특별시에 있었지만 시험포는 온천군이었기에
군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입원하면 무료하기 짝이 없기에 인생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옆에 있던 군 간부 한 분이 6·25 참전 인민군 출신이었다.
가을비로 으슬으슬 춥고 밤이 길어진 때 국군과 전투가 벌어졌다.
피아식별이 안될 만큼 혼전 속에서 밤이 깊어갔다.
얼마나 피곤하고 추운지 폭탄 구덩이 속에 은신했다.
총에 맞아 죽는 것보다 먼저 추워 죽을 것 같아
모닥불을 지폈는데 그 온기에 잠들어버렸다.
인기척에 보니 한 군인이 자기 곁에 와서 자는 것이다.
얼핏 군장을 보니 적인 국군이었다.
하지만 경각심보다 잠이 더 무거워 눈이 감겼다.
아침이 가까이 올 무렵 갑자기 옆에 자던 자가
폭탄 구덩이 밖에 뛰어 올라가 <손들엇!> 한다.
아마도 그는 이제야 같이 잔 군인이 인민군임을 안 것이다.
잠을 잔 덕에 그래도 기운이 생겨 정신이 번쩍 든 것이다.
하지만 인민군 군인인 자신은 끄떡도 하지 않는다.
국군은 거듭 <손들엇!> 하며 총을 쏠 듯 으름짱을 놓는다.
그래서 게스르츰하게 눈을 뜨고
<뭔 손들엇이냐! 내려와 불이나 쬐!
난 네가 국군인 줄 먼저 알고 있었다!>
너무나 천연스러움에 신경을 곤두세운 자가 더 머쓱해져
총을 내리고 도로 내려와 몸을 함께 녹인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해가 떠 따스해지자 서로 알아서 자기 부대를 찾아 헤어졌다.
같은 병실에 군 농업과장이 입원해 있었다.
교사 하는 딸이 가끔 병문안 오는데 착하고 이뻤다.
딸자랑을 입에 달고 사는데 결혼 상대로 소개하고 싶어했다.
백설희 과학자를 모델로 숨은 영웅이라고 한창 내세우는 국가적 분위기에서
연구원인 젊고 <잘생긴> 나를 맘에 들어했다.
더우기 우리 부친같이 의용군으로 북으로 간 남 출신이어서
보다 친근했다.
이 분의 6·25 참전 이야기이다.
치열한 전투 후 어느 전장을 지나는데 백인 여군들이 쓰려져 있다.
누군가 <이 양코배기 엠나새끼들!>하며 따발총을 휘두른 것 같다.
시체이지만 양코배기 여자를 가까이서 처음 보았는데
나도 모르게 만져 보고 싶을 정도로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총에 맞아 피가 빠져 나가서인지 더욱 백옥처럼 아름다웠다.
죽인 것이 너무 아까울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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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병실의 또 한 분의 6·25 참전 이야기이다.
후퇴하는 길에 비가 내려 비옷을 쓰고 가다가 큰 게 마려워
대오와 떨어져 볼일 보고 있었다.
얼마나 거친 것을 먹었는지 변비로 한참이나 씩씩 대고 있었다.
그런데 등 위에 뭔가 꾹 꾹 찌르며 손들엇! 한다.
놀랍게도 권총을 든 국군 여군 장교였다.
휘하에는 간호사로 모집한 수십 명의 처녀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무장은 여군 장교만 하고 있었다.
꼼짝 없이 북으로가 아니라 남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얼마 후 강이 나타나자 수심을 알기 위해
먼저 건너 보라고 밀쳐버린다.
마지못해 강물에 쓰러지듯 들어서면서 비옷 안에 메고 있던
따발총을 재빨리 격발하여 여군장교 위로 연발사격을 해댔다.
기겁을 한 여군장교는 권총을 든 채 손을 번쩍 들고 사시나무 떨듯했다.
장교라고는 하지만 전투 경험이 전무하니 포로의 몸수색부터
해야 하는 기초 원칙도 몰라 되당한 것이다.
이제는 남으로가 아니라 북으로 이들을 끌고 가게 되었다.
애 되고 포동포동한 처녀들이 대부분이다.
성에 극도로 굶주려 있지만 성욕을 누릴 겨를이 나지 않았다고 한다.
또 혼자서 적군인 수십 명을 통솔해 가자니 감감하였다.
아닌 게 아니라 이탈하려는 눈치가 곳곳에 보인다.
하여 한두 명을 시범으로 쏘아 죽이니
이에 넋이 나가 모두 죽었소하고 따르더라고 한다.
다행이도 본 부대를 인차 따라잡아 이들을 넘겼다고 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처녀 몇 명을 더 죽일 뻔했다고 한다.
또 한 분의 인민군 6·25 참전자 이야기이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청천벽력을 맞아 후퇴하게 되었다.
북한의 선전에는 조직적, 전략적 후퇴라고 하지만 천만에이다.
전의를 상실한 인민군은 오합지졸이었다.
숙천, 순천 지구에 낙하산 미군 부대를 겨우 피해 청천강에 이르렀다.
다리가 파괴되어 헤염쳐 건너야 했다.
강변에는 인민군 여군들도 함께 있었다.
옷을 벗지 않으면 물에 빠져 죽는다고 급하게 소리쳤지만 머뭇거리기만 한다.
따꿍! 따꿍! 적의 총소리는 가까이 오고 있으니
할 수 없이 남자들만 물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
멀어지는 강변의 여군들은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적에게 잡혀 죽는 것보다 창피하여 옷을 못 벗는 저 여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다 잡혀 능욕당하거나 죽었을 것이다.
*사실 유엔군은 포로를 함부로 죽이지 않았다.
죽음과 같을 만큼 창피한 것은 여성의 본능인 것 같다.
소독(蘇獨) 전쟁을 다룬 수기를 보면 –
소련 여군이 넓적다리에 총상을 입었는데
죽어가면서도 그곳을 가리려 한다는 기록을 보았다.
또 2000년 9·11테러 당시 그 높은 쌍둥이 빌딩에서 떨어지는
여성들이 죽음의 나락 과정에서도 치마를 가리는 것으로 증명된다.
"뭔 손들엇이냐! 내려와 불이나 쬐!"
- 이민복(대북 풍선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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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6-24, 20: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