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수호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3대 세습 독재 체제 하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생존마저 위협받는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누리게 될 그 날까지 우리의 자유수호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치밀한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였다. 국토의 90%를 북한군에게 빼앗긴 국군과 유엔군이 부산을 지키기 위해 1950년 8월 초~9월 중순까지 결전을 벌였던 곳이 ‘낙동강 방어선’이다. 이 방어선은 ‘워커라인 (Walker Line)’이라고 불려지기도 한다. 월튼 워커(Walton Harris Walker) 장군은 “Stand or die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라고 낙동강 방어선을 지킬 것을 명령하였다. 백선엽 장군은 “여기서 밀리면 바다에 빠져야 한다. 우리가 밀리면 미군도 철수한다. 그러면 끝이다.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두려움에 밀려 물러서면 나를 쏴라.”고 앞장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다.

북한은 1950년 6월 25일 기습 남침으로 시작한 전쟁을 '조국해방전쟁'이라고 이름하고, "조국해방전쟁은 미제의 침략을 물리치고 조국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하기 위한 정의의 민족해방전쟁"이라고 한다. 중국은 한국전쟁을 일컬어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하는데, 2020년 시진핑에 의해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으로 향하는 이정표"로 그 국가적 의미를 격상하였다. 그러나 대한민국을 총과 칼로 무너뜨려 공산화하려고 한 전쟁일 뿐이다.

대한민국은 1947년 제2차 유엔 총회 결의 및 1948년 2월 말 유엔 소총회 결의에 따라 1948년 5월 10일 남한만의 총선거가 실시되어 5월 31일 제헌국회가 열렸고, 7월 17일 「대한민국헌법」을 제정, 공포하고 8월 15일 국내외에 그 성립을 선포하였다.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제3차 총회에서 대한민국을 공식적으로 승인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국제적 지지를 확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엔이 설립되었다. 유엔 헌장 제1조 제1항은 “국제평화와 안전(international peace and security)을 유지하고, 이를 위하여 평화에 대한 위협의 방지·제거 그리고 침략행위 또는 기타 평화의 파괴를 진압하기 위한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취하고 평화의 파괴로 이를 우려가 있는 국제적 분쟁이나 사태의 조정·해결을 평화적 수단에 의하여 또한 정의와 국제법의 원칙에 따라 실현한다.”고 정하고 있다.

북한과 소련, 중국은 유엔의 승인을 받은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공산화하는 것을 시작으로 유엔을 통한 전후 세계질서를 무너뜨리고, 힘에 의한 공산화를 확대, 재생산하려 6·25 전쟁을 일으켰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은 즉각 안보리를 소집하여 "적대행위의 즉각적인 중지와, 북한이 그 군대를 38선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촉구"하였다. 6월 27일 다시 안보리는 "무력 공격의 격퇴와 그 지역에서의 국제평화 및 안전의 회복을 위해 한국에 대해 필요한 원조를 할 것을 회원국에 권고"하였다. 이에 따라 유엔 회원국인 16개 국가가 병력을 보내고 6개 국가가 의료 등 지원을 하여 모두 22개국이 참전하였고, 유엔군 3만7902명이 6·25 전쟁 중 전사하여 피로써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냈다.

유엔의 6·25 전쟁 개입은 유엔 헌장이 정한 집단안보를 본격적으로 그리고 전형적으로 적용한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유엔은 직접 건국을 돕고 승인한 대한민국이 무너져 전후 세계질서 및 평화가 파괴되지 않도록 유효한 집단적 조치를 한 것이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기간 국군 희생자는 사망 13만7899명, 부상 45만742명, 포로 및 실종 8만2000여 명(그 중 송환된 포로는 8343명에 불과함)이었고, 경찰 희생자도 사망 3131명, 부상 6760명, 실종 7084명이었으며, 남한 지역 민간인 사망자는 24만4663명이었다.

국군은 물론 세계 각국에서 참전한 수많은 영웅들이 목숨을 바쳐 공산침략으로부터 대한민국의 자유와 유엔이 이룩한 세계질서를 지켜냈다. 대한민국은 그들의 피로 지켜낸 자유를 바탕으로 1953년 67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내총생산이 2022년에는 32,236달러가 되었고,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다가 거꾸로 다른 나라를 원조하게 된 지구상에 단 하나의 나라가 되었다.

침략자들은 6·25전쟁에 대해 '조국해방전쟁', '항미원조(抗美援朝)'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6·25전쟁은 해방 이후 건국 과정의 이념적 혼란을 종결짓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 ‘자유수호전쟁’이다. 북한 김일성을 앞세운 국제공산주의 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우리의 생명, 재산, 자유를 지켜낸 전쟁이다.

정전 70년, 우리의 ‘자유수호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자유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들과 자유와 인권을 억압하고 힘에 의한 국제질서의 변경을 시도하는 나라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국제정세 가운데 자유와 인권 등 보편적 가치를 선택하고 수호해야 하는 우리에게 아직 자유수호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은 오늘도 3대 세습 독재 체제 하에서 자유를 박탈당하고 생존마저 위협받고 있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누리게 될 그 날까지 우리의 자유수호전쟁은 계속되어야 한다.
이 땅에 피흘려 우리에게 자유를 물려주신 모든 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우리에게 남겨진 자유수호 의무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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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idn 2023-06-25 오후 4:16

    이 땅에 피흘려 우리에게 자유를 물려주신 모든 분들의 희생에 감사하며, 우리에게 남겨진 자유수호 의무를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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