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보니 보고 듣고 배울 것이 더 많더라(1부)

1983년, 생애(生涯) 첫 외국 방문지는 미국과 유럽이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English version is below)

*나는 이런 꿈같은 세상에서도 살 줄은 상상도 못했다.
*내가 가장 축복받은 세대라고 생각하는 이유.

때는 1983년:생애(生涯) 첫 외국 방문지는 미국과 유럽이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았다. 비행기를 탄다는 것도, 하늘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운 자연(自然)과 도시(都市)를 보는 것도(서울, 워싱턴, 뉴욕, 구름, 산과 바다…등), 기창(機窓)을 통해 바라보던 그 감동(感動)의 연속! 영어 교과서 표지(表紙)에서나 보았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자유의 여신상, 링컨 기념관 등을 볼 때도 그랬고, 귀국(歸國)길에 들른 이태리 로마도 그랬다. 상상(想像)으로만 그려보던 그 역사(歷史)의 현장(現場)들! (“부르투스, 너마저도.” “주사위는 던져졌다.” 카타콤베(Catacombe), 성베드로 성당(St Peter's Cathedral), 콜로세움…등).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직접 만나 나누었던 실감(實感)나는 대화(對話)들! 그 순간 순간의 놀라움과 기쁨과 보람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꿈같은 세상(世上)이 이미 내 앞에 펼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 뒤 나의 본격적(本格的)인 세계여행(世界旅行)은 계속(繼續)되었다. 기회(機會)가 오면 놓치지 않았고, 기회가 안 오면 만들어서 나갔다. 어느덧 세계 여행은 내 삶의 가치목록(價値目錄)에서 1순위가 되었다. 생업(生業)은 문자 그대로 생업의 수단(手段)이지 결코 목적(目的)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인간은 일할(돈 벌) 때가 가장 보람 있고 행복하다는 고정관념(固定觀念)에서 벗어난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일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줄 알고 살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우물 밖 세상, 즉 세상 사람들과 문물(文物)을 접하고 보니 인생관이 확 바뀐 것이다. 환경(環境)을 바꾸니 가치관(價値觀)도 바뀐 것이다. 결국, 2순위로 밀린 일(生業)은 1순위의 종속개념(從屬槪念)이 됐다. 내 삶의 방향을 요즘 말로 하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바꾼 것이다. 참으로 현명(賢明)한 선택(選擇)이었다. 덕택에 지금까지 나의 여행길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셀프 축하를 하는 이유이다.

나는 지금도 여전히 비행기를 탈 때마다 기창(機窓)을 통해 변화무상(變化無常)한 자연의 신비(神祕)를 가능한 한 많이 보려고 한다. 낯선 문물(文物)을 접하고 세계인들과 대화를 나누며 무언가 알려고 애쓴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으로. 천학비재(淺學菲才)한 나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이런 큰 행운을 놓칠 순 없었다. 내 분수(分數)에 넘치는 이 복(福)덩이는 언제 어디서든 갑자기 잘 있어(bye~bye)라며 사라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窓(창) 측에 앉아 있을 땐 별문제(別問題)가 안 되지만 아내 혹은 남이 그 자리에 있을 땐 실례를 무릅쓰고도 창밖을 보려고 애를 쓰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또 있다. 나는 세계인을 만나면 국적불문(國籍不問), 십중팔구 내가 먼저 다가가 말문을 연다. 이 때문에 아내에게 핀잔을 들을 때도 있다. 당연하다. 내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없으니까.

그 속마음이란 다름이 아니다. 한국전쟁(韓國戰爭) 이전(以前)의 세대(世代)라면 누구나 겪었을 보릿고개, 즉 초근목피(草根木皮)의 세대라는 점. 그 질곡(桎梏)의 상처(傷處)와 흔적(痕迹)은 지울 수 없다는 것. 아니, 지우기 싫다는 것이 솔직한 나의 심정(心情)이다. 그것을 지우는 순간, 현재 내가 누리고 있는 분에 넘치는 자유와 축복(恩惠)에 대한 감사(感謝)하는 마음이 반감(半減)되거나 아예 사라지기 때문이다. 곧 불행의 시작이란 뜻이다. 각골난망(刻骨難忘).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진짜 소중(所重)한 자산(資産)이다. 이는 나의 경험법칙(經驗法則)이기도 하다.

1950년대 말(末), 마포:초등학교 5학년 때다. 전차요금(電車料金)이 없어서, 아니 있어도 아까워서 청량리에서 마포까지 걸은 적도 있고, 종로나 서울역에서 신촌까지 걷는 건 일상사(日常事)였다. 어쩌다 운(運)이 좋아 강냉이 배급표(配給票)를 한 장 얻으면 그것을 가지고 종로 3가의 성당(聖堂)까지 걸어가서 받아왔다. 미국이 보내 준 밀가루, 분유(粉乳)로 수제비를 만들어 끼니를 때우고, 분유(粉乳)를 쪄서 씹어 먹으며 학교에 다녔다. 엿장수에게 받은 강냉이튀김을 버킷(양동이)에 담아 물에 불린 뒤 친구들과 배를 채웠다. 꽁보리밥에 왜간장(당시엔 고급재료)만 넣고 비벼 먹어도 별미(別味)였다. 운이 좋아 여기에다 조미료(調味料-아지노모토)나 마가린을 첨가하면 그야말로 천상(天常)의 맛이었다. 그 절대적(絶對的) 행복감을 어찌 잊으랴. - 2부 계속 -

감사합니다.

The most blessed story of my life 1

*I never imagined existing in such a wonderful world.
*The reason why I am the luckiest guy in my generation.

In 1983, my first tripsabroad were to the US and Europe, a mysterious and unexpected experience. I enjoyed flying and admiring beautiful scenery, visiting historical sites like the Lincoln Memorial, the Statue of Liberty, and the Empire State Building. In Rome, Italy, I visited historical sites like the Catacombs, St. Peter's Cathedral, and the Colosseum, feeling the excitement of meeting people from various countries. The experience began with an infinite, dreamlike world in front of me.

My fully world travelstarted after that. When the opportunity presented itself, I did not pass it up, and when it did not, I mame it and went out. World travel has risen to the top of my bucket list. Because my job was never more than a means of subsistence for me, my values shifted as my surroundings did. Finally, my job has become a secondary means to globe travel. I shifted my life's ultimate goal from hardware to software. It was a wise decision. Since then I've enjoyed my globe travels so long.

I still make an effortto observe as many of nature's marvels through the window each time I fly. By conversing with individuals from various cultures, I strive to learn something new. I cherish every second because I know that if I miss it, I won't get another chance. Regardless of their nationality, I approach them I encounter from around the world and strike up a conversation. As a result, my wife sometimes blames me. However, I can explain why I'm doing that.

The reason for thisis that the generation preceding the Korean War shared a common memory of being impoverished. I can't undo such terrible wounds and traces. In fact, it is my sincere desire not to erase it. Because I have sad recollections of that period, I can feel thankfulness and happiness now. This is another rule I've learned via experience.

In the 1950s,I was in fifth grade in Mapo, walking 20 kilometers to reach the school due to lack of a train ticket. Fortunately, I received a corn ration ticket and went to a church to receive corn. I ate meals and went to school while making food with flour and powdered milk from the USA. I really enjoyed soaking fried corn in water and savoring the delicious taste of soy sauce and barley rice. The happiness I experienced is hard to forget. -be continued-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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